[2000년 12월호]

월드컵은 國運상승의 기회

李衍澤(이연택) 신임공동위원장

"88서울올림픽 성공力量(역량) 재현“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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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衍澤 월드컵축구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88올림픽 성공의 얼굴

2천2년 월드컵축구조직위를 이끌어갈 새 선장으로 이연택(李衍澤)씨가 취임했다. 국제축구협회 부회장인 정몽준(鄭夢準) 의원과 함께 맡은 공동위원장이지만 상임직이다. 그러므로 월드컵축구 한일공동 개최의 성공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자리이다.

이 위원장은 얼마전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여 스포츠분야에 낯익은 분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81년부터 서울올림픽조직위 제2사무차장으로 서울올림픽 개최에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국제스포츠계에도 얼굴이 익혀진 인물이다.

또한 2천2년 월드컵조직위와도 98년 10월 마케팅 및 경제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따라서 전임 박세직(朴世直) 위원장 후임으로 이연택 위원장이 선임됐을 때도 결코 낯선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였다.

이 위원장은 지난 10월 10일 취임 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위원장 사무실에 상근한다.

이 위원장은 “일생에 한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대형 국제행사를 두 번씩이나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 말한다. 두 번씩이란 88서울올림픽과 2천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말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월드컵을 국가적 대사라고 표현한다. 또한 국운(國運) 상승의 새로운 기회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역량을 유감없이 쏟아 “모든 것을 국가에 바치겠다”는 소감을 밝힌다.

큰일 맡아 국가에의 봉사 기회

이 위원장은 월드컵대회를 88올림픽 성공 이상으로 모범적인 대회로 추진하기 위해 임직원 모두가 일치 단결되어 있노라고 소개한다.

2천2년 월드컵이 “21세기 최초의 월드컵, 아시아대륙 최초의 월드컵, 그리고 대회 사상 최초의 공동개최”라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축구를 통한 세계와의 우호증진, 인류의 공존과 번영, 그리고 세계평화에의 기여를 통해 우리의 국운도 융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의 스포츠 인생은 80년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픽 유치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서울올림픽 조직위에 참여하고 그 뒤 대통령 비서실 행정수석 비서관으로 올림픽을 지원하는 위치에서 스포츠계와 깊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원장은 88올림픽때 중책을 맡겨준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과 월드컵 중책을 맡겨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께 감사한다고 밝힌다.

“공직자에겐 중책을 맡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이끌어준 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두분께 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들린다. 매사는 물론 언행마다 매너가 듬뿍 담긴 이 위원장이 월드컵공동위원장 직위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걱정이 많고 마음이 바쁘다고 실토한다.

“88올림픽도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습니까. 그러나 개최시기를 앞두고 국민적 에너지가 집결되어 사상 최고의 대회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월드컵은 그때보다 경제상황이나 국민의식면에서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모든 악조건을 성공요인으로 전환시키는데 최일선에 자신이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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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正泰(김정태) 주택은행장(사진가운데)과 행사장에 나란히 선 李衍澤 위원장>

올림픽이 國論분열을 통합

이 위원장은 서울올림픽 회고에서 신바람을 느끼는 표정이다.

“87년의 6·10항쟁과 그 뒤의 6·29선언 이후 민주화과정의 혼란을 기억하시겠지요. 올림픽 유치의 찬반논의가 무성하고 유치방해가 있었고 남북한 공동개최 주장까지 제기되었지요. 이런 국론분열 상태에서 감격스럽게 대회유치에 성공했지만 올림픽개최를 불과 몇 달 앞두고 미국 상원에서 개최지 변경논의까지 나왔으니 얼마나 벅차고 어려운 대회였겠습니까”

이 위원장은 남북한 관계가 동결되어 있을 때 남북공동주최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임종석씨를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의 반대도 거세었다.

이때 정부는 미국정부와의 막후교섭을 통해 협력을 끌어들이고 1노(盧) 3김(金)회담을 통해 정치권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자”고 결의함으로써 국론통일과 국민단합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서울올림픽 성공이 국제질서에도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이 위원장은 해석한다.

동유럽 공산권이 그토록 빨리 무너지게 된 배경이 바로 서울올림픽이었다는 뜻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교가 없는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를 6·25전쟁 후 거지와 고아가 들끓고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서울올림픽이 TV로 전 세계에 중계되면서 동유럽 공산권이 충격을 받았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한강고수부지의 산책로 등이 마라톤 코스의 배경으로 중계될 때 공산권의 충격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이 하루라도 빨리 공산주의를 버리도록 만든 자극제가 된 것입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택하면 한국처럼 못살던 나라도 짧은 기간에 기적같은 발전을 할 수 있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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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夢準(정몽준) 조직위원장과 환담을 나누는 李衍澤 신임월드컵공동위원장>

그때와 지금 달라진 상황

서울올림픽 개최이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역사성이 있고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배경으로 서울올림픽과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전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지만 올림픽 성공을 뒤에 활용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모처럼 국민의 단합과 열기로 대회에 성공한 후 금방 이완되고 분산되어 언제 사상 최고의 올림픽을 개최했는지 자부심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많은 상황이 변화되어 여러모로 비교되고 염려되는 국면이라고 지적한다.

“88년은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국운의 상승기였을 뿐만 아니라 정권 초반기의 힘도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때 국제적 테러위협이나 질서를 흔드는 불안이나 위험요소는 적은 편이나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력의 결집력도 떨어져 있다고 봅니다”

이 위원장은 바로 이런 비교 때문에 방심이나 태만을 특히 경계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국제행사때는 전력을 쏟아 매진했지만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는데 월드컵쯤이야”라고 생각하면 큰일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주변에서 듣기로도 “월드컵이야 한일간 공동주최인데 대단한 것이 있느냐”는 사람도 있고 “죽기살기로 돈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느냐”고 남의 일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일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위원장은 이 때문에 “좀더 일찍 부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노라고 털어놓는다.

어쩔 수 없는 한일간 비교 기회

“2천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기 때문에 양국이 비교되는 기회가 됩니다. 서울올림픽 때는 우리 혼자 잘하면 되는 절대 평가의 기회였지만 월드컵은 일본과 대비되는 상대 평가의 계기가 됩니다.

일본보다 잘한다든가 못한다는 평가, 일본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미리 대비하고 더 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동경의 나리따 공항을 통해 일본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모습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을 둘러본 관광객들의 객관적 평가가 양국의 대회 개최 성공여부를 판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경쟁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협조하고 보완해주는 상호 협력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기장 건설을 비롯해 수송, 숙박, 등록, 안전, 미디어 지원 등 월드컵 조직위원회 내부 일만 잘해서 월드컵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국민의 각자 자기 직업과 맡은 분야에서 월드컵 개최 특수를 잘 활용해야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참가자들이나 관광객들이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 들러 한국 상품을 사가도록 상인들도 월드컵 특수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월드컵 개최를 통한 국가 홍보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도 크게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어야 함을 이 위원장은 강조했다.

알려졌듯이 월드컵 대회 기간은 2천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31일간이며 대회 개최는 한국 및 일본의 각 10개 도시에서 실시된다.

참가규모는 FIFA 대표단, 선수단 그리고 보도진을 포함하여 1만3천여명이며 경기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 32경기씩 총 64경기가 치러진다.

개막전은 한국 서울에서 열리며 결승전은 일본 요꼬하마에서 각각 열린다. 본선 조추첨은 2천1년 12월 한국에서 실시되며 관람객 수는 연인원 1백6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장 건설 17억달러 투자

텔레비전 시청인원 수는 98년 프랑스 대회의 4백억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Korean Organizing Committee for the 2002 FIFA World Cup) 측은 추산하고 있다.

10개 개최도시는 FIFA의 기준과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스타디움 건설에 착수해 11월말 현재 65%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천1년 5월에서 12월까지는 10개 경기장이 모두 완공될 예정이다. 10개 경기장 가운데 서울 월드컵 스타디움을 비롯한 광주, 대전, 울산, 수원, 전주, 서귀포 등 7개 스타디움은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되고 나머지 부산, 대구, 인천의 3개 스타디움은 종합경기장으로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를 마친 뒤에는 사회운동 시설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은 IMF 관리라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경기장 건설을 위해 범정부적인 지원아래 17억달러 상당의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5월 개최지 경기장을 현장 조사한 FIFA 조사단은 역대월드컵 사상 가장 훌륭한 경기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바 있습니다.”

월드컵대회가 흑자 경기가 되려면 입장권 판매가 순조로워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 위원장은 입장권이 보다 잘 팔리도록 홍보하는데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입장권은 FIFA 공식 지정업체인 Byrom사 등을 통하여 전체 입장권 3백만매의 50%를 해외 판매하며 주최국인 한국과 일본에는 각각 25%인 75만석이 배정되었다.

입장권의 해외 판매는 주관사가 합리적인 판매원칙을 정하여 각국에 고르게 판매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 위원장은 전한다.

입장권 가격은 개막전과 준결승전의 1등급은 미화로 5백달러이며 3등급은 미화 1백50달러와 1백75달러이다. 가장 저렴한 입장권은 조예선전 3등급으로 미화 60달러이다.

숙박과 수송, 등록, 안전, 미디어 지원 등의 각 분야도 이 위원장 및 조직위원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점검하고 있는 분야다.

대회 기간중 1일 최대 숙박 수요는 7만명에서 10만명으로 추산된다. 숙박 시설은 관광호텔 4만5천실, 일반 호텔 1만7천실, 여관 24만5천실 등 총 30만7천실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성 살려야 진짜 성공

“KOWOC은 월드컵 대회 참가자에게 편리한 숙박예약과 친절한 숙박 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월드컵 숙박 예약, 운영 업무는 Byrom사를 전담회사로 선정하여 현재 서울에 WCABK 사무실을 설치하였습니다.

전산화된 예약시스템을 통해 월드컵 숙박 예약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FIFA 관계자, 심판, 선수단, 상업권자, 방송권자 등에게는 개최도시에 주요호텔을 지정 운영할 것이며 보도진에게는 다양한 숙박시설이 제공될 것이기도 합니다.”

이 위원장은 관람객을 위해서도 호텔, 여관 이외에 민박시설을 마련하여 한국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안전하고 신속한 교통, 수송망 시스템 또한 월드컵 대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FIFA와의 협약에 다른 수송서비스 제공은 성실히 이행 될 것이라고 한다.

선수단을 위한 전세항공기 운항과 FIFA임원들에 대한 전용차량 제공, 미디어를 위한 공항, 숙소, IMC 연결 셔틀버스 운행을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70년의 월드컵 역사 동안 유럽과 미주의 전유물이었던 월드컵 대회가 드디어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2002 월드컵은 단지 한국과 일본 두 국가만이 아닌 아시아 모든 국가의 행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국이 상호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호를 다지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하고 진실한 선린 우호를 유지하는데에 월드컵 공동 개최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이 위원장은 내다봤다.

일본과의 단순 경쟁이 아닌 생산적, 협조적 관계여야 함을 이 위원장은 거듭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민간 외교관이 되어 대회 기간 중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고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원만한 타협과 조정의 공직자상

공직자로서 이연택 위원장의 경력은 다채롭고 화려하다. 대학 1학년때부터 공직자의 꿈을 키워 35년간을 근속했으니 성공인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 총무처장관과 노동부장관 등 높은 벼슬자리를 섭렵했으니 크게 출세한 직업공무원이다.

전북 고창 출생으로 전주고와 동국대를 졸업한 후 고대대학원 경영학석사, 단국대 대학원 행정학박사, 전북대와 공주대 명예박사 등 숱한 학위를 받아 영국 옥스퍼드대를 비롯하여 경희대, 일본 도쿄대, 중앙대 등의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니 학계에서도 성공을 누리고 있다.

공직자로서 이 위원장은 1961년 재건국민운동본부 조직관리 담당관을 시작으로 국무총리실에서 23년을 근속한 터주대감으로 열세분의 국무총리를 모신 경력이 가장 돋보인다.

총리실은 늘 분주하고 다방면의 업무를 고루 완수해야 하는 집무실이다. 특히 행정조정 업무는 각부처 소관 사항을 조정하고 협력시키는 까다로운 직무다. 권위나 권력보다 항상 원만하고 타협을 중시해야 하는 직책에서 이 위원장의 공직자상은 조각되었었다는 평가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93년 9대 노동부장관을 끝으로 행정부를 떠났지만 한국행정연구원 고문, 광주방송 사장, 정부조직개편 심의위원 등으로 다방면의 봉사활동을 벌여왔고 지금도 5대 행정연구원 이사장과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 분과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대과없이 공직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 위원장은 공직자가 지녀야 할 덕목을 제시했다.

즉 국가와 역사, 국민에 헌신하는 봉사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익을 떠나 국익과 공익에 봉사하는 직책이라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청렴해야 하며 둘째 사명감으로 항상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능력 개발,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하며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해야함을 거듭 강조했다.

이 위원장이 강조한 이런 덕목들은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현대인 누구나 갖추고 실행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글/ 申貞姬(신정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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