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식씨와 허유씨는 오랜 기간 중국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며 신뢰와 우의를 다져온 친분 깊은 사이다. 최창식 사장과 허유 이사장은 통일이 빨리 오기위해서는 북한 사람들을 잘 이해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서 중국의 북한식당과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탈북자들의 비참한 삶, 통일한국의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외화벌이에 동원된
심양의 북한식당들

군복무식 근무, 북한 문화재도 팔아
탈북 여성들은 숨어서 개같은 삶


장인을 찾아 심양으로 가다


2014-01-22_183335.jpg 일제 강점기에 중국지역에 거주했던 최 사장의 장모는 심양에 살고 있었던 작은 아버지가 주선하여 심양 근처의 무순(撫順)으로 시집을 가게 됐다. 이후 중국에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 최 사장의 장모는 장인과 함께 미군이 인도하는 배를 타고 1943년에 한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 사장의 장인은 몇 년후 한국전쟁 때 군인으로 징병되어 인천항에서 전선으로 떠났다. 당시 최 사장의 장모는 지금의 아내를 임신한 채로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딸인 지금의 최 사장의 아내가 태어난 것이다.
최 사장 부부는 훗날 서울역에서 중국에서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주는 조선족 브로커에게 수소문하여 장인이 중국 무순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최 사장은 장모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1988년 처음으로 중국으로 가서 북경과 심양을 거처 무순에서 꿈에도 그리던 장인을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최 사장은 이후 중국에 자주가게 되었고 백두산에도 세 번 다녀오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동북삼성에 있는 북한식당들, 북한 사람들, 탈북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중국 북한식당, 외화벌이에 동원


북한은 중국을 포함해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네팔 등의 12개국에 110여 개의 북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식당의 운영주체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찰총국 등 공작기관, 당 선전부, 39호실, 재정경리부, 내각의 체육성, 상업성, 인민무력부, 평양시 인민위원회, 만경대 위원회 등으로 다양하다.

2014-01-22_183906.jpg 현재 북한은 해외 북한식당을 ‘외화벌이를 통한 통치자금 마련’과 ‘대남 정보 수집 창구’ 라는 두 가지 용도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해외 식당운영을 통해 연간 500~1,000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소득은 북한 김정은의 통치자금 사금고인 조선로동당 39호실에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해외 북한식당들은 식당에 출입하는 한국인 상사원, 주재원, 관광객으로부터 대남 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하여 대남 공작 부서인 정찰총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 북한식당에는 주로 냉면, 김치, 찌개, 도토리묵, 도라지 반찬, 각종 북한 술 등을 파는데 일반 중국 식당들 보다는 2~3배정도 비싸게 팔고 있다.
중국 심양에는 북한식당이 많이 있다. 중국 심양 시에 소재한 북한식당으로는 평양관, 모란관, 묘향산, 동묘향산, 동명관 식당 등이 유명하다.
최 사장에 따르면 심양의 북한식당에는 여성종업원들을 관리, 통제하는 매니저 격으로 남, 여 각각 1명씩의 관리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부장동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장”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복무 마쳐야 결혼하는 북한식당 아가씨


중국의 북한식당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무대와 음향설비를 잘 갖추고 있어서 그곳에서 여성종업원들의 공연은 화려한 편이다. 북한식당의 여성종업원 아가씨들은 10~15명이 있으며 아가씨들은 가무에 능하고 악기를 두 가지 이상 잘 다룬다.
최 사장과 허 이사장에 따르면 그녀들은 평양에서 일정 교육을 마치고 의무 복무 개념으로 해외 식당이나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관에서 근무를 다하면 그때서야 시집을 갈 자격이 비로소 갖춰진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북한식당의 아가씨들은 평양의 양각도 호텔 맨꼭대기층 라운지의 접대부 아가씨와 동급의 지위를 가진다고 한다.
2014-01-22_183835.jpg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은 합숙생활을 하며 자유시간이 없고 목욕을 갈 때도 같이 가는 등 통제된 단체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각에서 소문으로 퍼진 북한식당 아가씨들의 근무 후 성매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유는 그녀들은 절대로 단체를 떠나 개인행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북한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팔고 아가씨들이 공연을 보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허 이사장은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시기, 올림픽 선수촌 근처의 북한 식당인 규모가 큰 ‘류경식당’의 지하에서 북한에서 가져온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외국인들에게 비싸게 팔았던 것을 목격했다.
북한에선 고구려와 고려 시대 유적 발굴이 활발하고 각종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아서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 진품을 외화벌이를 위해 무작정 팔고 있는 실정이라고 허 이사장은 안타까워한다. 또한 정작 북한 국내의 박물관에는 모조품을 만들어 형식적으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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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종업원들에게 ‘아버지’로 불리다


최 사장은 평소에 심양의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생일에 케이크도 사주고 파티도 자주 해준다.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은 특히 한국 화장품을 좋아하는데, 최 사장은 아가씨들에게 한국화장품과 살색 여성스타킹, 그리고 회식비용으로 1,000~2,000위안 정도의 용돈을 북한식당에 갈 때마다 선물해서 여종업원들 사이에서는 최 사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따라 다닐 정도라고 한다.
북한에 수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최 사장은 북한식당 묘향산의 매니저에게 중국 돈 5,000위안을 수재 의연금으로 전달해 주기도 했다. 이에 북한 사람들은 어려울 때 성의를 보여주는 최 사장을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
최 사장은 이렇게 북한식당의 구성원들과 교류하면서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사람들도 최 사장을 대할 때 신뢰를 가지며 친밀하게 대했다고 전한다. 최 사장은 북한사람들도 한국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고가는 정’이 통했고 누구나 마음을 열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최 사장은 예전 김대중 정부 초기에 고성과 금강산 간 철도의 전기공사를 맡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북한의 관료들과 인민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 식당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 사장은 북한 사람들과 소통할 때 항상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선물도 주고 도왔다고 한다.


태극기와 김일성 배지 교환


최 사장이 최근에 자주 가는 북한 식당은 심양의 몽금포 북한식당이다. 몽금포 식당은 4~5년 전에 개업했고, 현재 사장은 현광철이고 부인은 박영숙씨 이다. 현광철 사장의 아버지는 고향이 서울시 명륜동이고 부인 박영숙씨의 아버지는 북한의 유명작가인 박춘명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 사장은 몽금포 식당 사장과 빨리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한다.
2014-01-22_184214.jpg 최 사장은 몽금포 식당의 현광철 사장에게 한국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최 사장이 어느 날 술자리에서 현 사장에게 달고 있던 태극기 배지를 건네 달아주었고, 현 사장은 최 사장에게 자신이 달고 있던 북한 김일성 배지를 주었다. 서로 달고 있었던 각 체제의 다른 배지를 교환한 것이다.
사실 북한사람 입장에서는 김일성 배지를 남에게 주고 한국 태극기 배지를 교환해 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특히 당시의 술자리에는 북한 외교관리와 공안국장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광철 사장은 거리낌 없이 최 사장과 배지를 교환한 것이다. 그 정도로 최 사장은 북한 식당 매니저들과 신뢰감을 가지고 친하게 지냈던 것이고 북한 식당 사장 역시 그런 최 사장을 믿고 따랐던 것이다.


‘개 같은’ 인생을 사는 탈북 여성들


허 이사장은 이러한 북한사람들과의 소통과 더불어 고통 받고 있는 북한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북한 탈북자들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탈북한 사람들은 중국에서 항상 숨어살아야 하는데, 혹여나 신고라도 당하면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매우 불안하고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신고는 중국 정부의 포상금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숨어 살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정말 ‘개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허 이사장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2014-01-22_184428.jpg 지금처럼 해마다 겨울이 되면 두만강의 강폭이 줄어들어 완전히 도랑과 같이 변하게 된다. 굶주리고 오랜 궁핍한 생활 끝에 북한사람들은 사선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온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조선족들은 그들을 데려가 일단 자기네 집에 지내게 한 후 인신매매를 시킨다고 한다. 탈북자 처녀들은 1인당 15,000위안에, 유부녀들은 1인당 8,000위안에 인신매매로 시골의 중국 사람들한테 팔아넘긴다. 팔려간 북한 여성들은 아이를 가지게 되고 아이를 낳으면 도망을 나와서 심양과 같은 대도시에 가서 탈북한 북한 여자들만 고용하는 중국 술집에 접대부로 들어간다. 그러면 거기서도 사람대접을 못 받고 고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탈북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알아야만 통일을 준비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고 허 이사장은 피력했다.
최 사장과 허 이사장은 한목소리로, 북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면 직접 중국에 와서 북한사람들과 북한과 무역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심양에 거주하는 65세의 중국 한족 여성 기업가 ‘한리’ 여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북한 평양의 제1백화점 물건의 80% 가량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데 북한의 조선업에도 관여하여 많은 선박의 수주를 담당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역가가 중요한 이유는 중국에서 북한과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의 사장들과 회장들에게서는 중요한 북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 이는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더 많은 개방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앞당기는 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북한사람들과 그리고 북한을 경험했던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하면 자연히 북한에 대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대북관을 가지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평화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최 사장과 허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당부하였다.(안경수 기자, helloray@economytal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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