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존경받는 기업의 조건]

이윤추구를 넘어선

경영철학이 살아있어야

글/ 장성근 (LG경제연구원 책임컨설턴트)

‘포천’지 최근호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의 종합 순위와 산업별 순위를 발표했다. 평가기준은 ▲경영관리 수준 ▲제품 및 서비스 수준 ▲혁신성 ▲장기투자가치 ▲재무건전성 ▲우수인재확보/개발/유지 능력 ▲사회적 책임수행 수준 ▲기업자산 활용 능력 ▲세계화 정도 등 9개 항목이며, 이 항목들을 산술평균하여 종합 순위를 도출하였다.

종합 순위는 1위 GE. 2위 시스코 시스템즈, 3위 마이크로 소프트, 4위 인텔, 5위 월마트, 6위 소니, 7위 델 컴퓨터, 8위 노키아, 9위 홈데포트, 10위 도요다 자동차, … , 21위 머크 등의 순이었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들은 규모가 크거나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동일 업종 내에서 경쟁사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며, 오랜 전통 혹은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이 높은 성과를 내며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들의 공통적인 조건을 제대로 파악하여 경영활동에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존경받는 기업의 제1조건은 기업활동의 근거가 되는 차별적인 존재 목적(경영이념)과 기본 원칙(경영철학)의 정립 및 이를 조직 운영에 체화하여,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존경받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영이념이란 조직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존재 목적이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최고의 제약회사인 머크는 “우리의 사명은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향상시키는 데 있으며, 우리의 모든 활동은 이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기전자 분야의 존경받는 기업인 모토로라는 ‘우리 회사는 적정한 가격에 최상의 품질을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여 고객 및 사회에 명예롭게 봉사한다’라고 설정했다. 이를 통해서 모토로라의 구성원들은 ‘품질지상주의’의 기치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세계 제일의 품질을 보증하는 제품 등의 신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생활용품 분야에서 존경받는 기업 1위인 P&G는 ‘최적의 제품군으로 저가격을 실현함으로써 고객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고 구성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다’라는 경영이념을 정립해 실행하고 있다. 그 결과 P&G는 저가격 실현을 위한 과감한 혁신활동과 제품 수를 단축하여 수익성 있는 단순한 제품군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고, 생활용품 분야에서 세계1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경영이념은 비록 그 내용은 다를지언정 모두 이윤추구를 넘어선 그들만의 독특하고 차별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며, 기업 구성원들에게 ‘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거대 조직이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신뢰할 만한 10가지 경영철학

경영철학이란 경영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경영활동의 구체적 기본원칙이다. 시스코 시스템즈는 고객중심, 검약, 기술 지상주의 배제, 더 높은 목표, 고속으로의 변화, 최고의 팀웍, 임파워먼트, 열린 경영, 신뢰라는 10가지 경영철학 하에 조직을 운영하여 네트워크 분야에서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혁신기업의 대명사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분의 존경받는 기업들은 조직 구성원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경영철학을 통해 강력한 고용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즉, 존경받는 기업들은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야말로 경영성과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선 순환을 믿고 실천하고 있다. 특히 존경받는 기업에서는 구성원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사상이 단지 선언적인 의미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인사제도 및 조직운영 메커니즘 전반에 체화되어 규범화된 조직문화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최고의 존경받는 기업인 SAS는 업종 특성상 여성 종업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니즈를 반영한 자녀양육 지원, 탄력 근무제, 재택근무제 등 다양한 ‘Work & Life Balance Program’을 도입·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실시하는 이면에는 조직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인격체로 존중하는 인간존중의 사상이 숨어 있다. SAS의 CEO인 J.Goodnight의 “ ‘Work & Life Balance Program’을 통해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구성원들의 기여 공로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다”라는 말에서도 인간존중의 사상은 그대로 입증된다.

SAS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대우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여, 그들로부터 로열티를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고객만족도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경영의 기본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존경받는 기업의 제2조건은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경영층의 살아있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기본 요건은 성공에 대한 강한 열정,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진실한 애정, 그리고 해당 분야에서의 실력이다. 리더는 이를 바탕으로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의 본질을 규정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솔선수범하는 살아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존경받는 기업 1위를 고수하고 있는 GE의 잭 웰치(Jack Welch)는 살아있는 리더십의 좋은 예이다. 그의 리더십을 연구한 다양한 결과를 통해서 살아있는 리더십의 핵심을 요약하면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래를 읽고 변화에 대한결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웰치는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던 GE의 CEO로 취임하자마자,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를 혁파하기 위해 고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조직 전체를 자신의 의도대로 바꾸어 나갔다. 안정된 수주 잔고에 만족하고 있던 구성원들에게서 고통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터져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1등 혹은 2등이 아닌 사업은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대로 실행하였다.

둘째, 구성원들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회장 자신이 Work-out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구성원과의 직접적인 대화 및 격렬한 토론을 즐기면서 변화를 설득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셋째, 사람을 경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 믿음대로 실천을 했다. 최근 웰치는 CEO로서 자신의 업무 중 거의 절반을 하위자의 개발 및 육성에 쓰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웰치는 비용 절감을 위해 수많은 인원을 삭감하는 중에도 교육센터의 확충을 위해 4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다.

또한 격주 단위로 연수원을 방문, 사업 리더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했다. 특히 GE의 리더십 엔진 과정을 통해서 능력이 보이는 리더를 빨리 발견해 내고, 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보다 빨리 제공하여 성공경험을 쌓게 하는 특유의 관리방식을 적용했다.

비전과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한다

존경받는 기업의 제3조건은 기업이 미래에 달성하고자 하는 모습(비전)과 사업전개 방향(전략)을 명확하게 설정하여 조직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기업 비전은 미래 특정 시점의 조직의 모습에 대한 구성원들의 열망(Aspirations for the future)이다.

모토로라는 “1대 당 1백79.95달러의 가격으로 첫해에 TV 2만대를 판매하여 이익을 남기겠다”, “6시그마 품질 수준을 달성하라”와 같은 구체적인 비전을 통해 구성원들의 열정을 끌어냄으로써 존경받는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전략방향이란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전개 방향이다. 델 컴퓨터는 기존에 경쟁사들이 활용하고 있던 유통망을 통한 사업방식과는 차별화된 인터넷 등을 활용한 직거래 방식을 통해 컴퓨터 분야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성과와 자율이 조화된 조직운영체제

존경받는 기업의 제4조건은 성과주의와 자율경영이 조화된 조직운영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구조와 평가 시스템을 경영이념이나 철학에 맞게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구조란 업무의 분화 메커니즘으로서, 그 설계의 핵심은 유연하면서도 책임경영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GE의 경우, 부문간 조정의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통제 업무만을 주로 수행하는 기구였던 본사 기획부문을 철폐하고 잭 웰치 회장과 각 사업부 CEO가 직접 접촉하여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월마트의 조직구조는 작은 본사/큰 상점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본사는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비용 통제 및 성과 목표 설정에 대해서만 관여하고, 본사의 제반 경비는 매출액 대비 2% 내에서만 집행되고 있다.

따라서 본사 스태프는 최소 인원만으로 유지되고 있고, 그 역할은 현장 상점의 요구 사항을 당일 내로 처리해 주는 지원자로 규정하고 있다. 현장의 상점들은 상점 운영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갖고 움직이는 이익 중심 단위들로서, 각 지점장과 회장이 직접 접촉하여 의사결정을 한다.

평가 시스템은 조직이 설정한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올바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온 것이 기존의 재무적 측정치 외에 고객의 관점, 조직 내부적 관점, 조직의 혁신 및 학습의 관점 등을 포함하는 ‘균형잡힌 성과 지표(BSC : Balanced Score Card)’이다.

대부분의 존경받는 기업들은 BSC를 도입하여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즉 BSC를 통해 최고 경영자는 재무적 목표의 달성 과정까지도 확인 평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별 사업부나 구성원들이 기업의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목표에 집중해야 하는지, 목표 실현을 위해 어떠한 행동들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레이더 역할로 활용하고 있다.

지속적인 자기 혁신을 추구한다

존경받는 기업의 제5조건은 도전과 자율적 실험 학습을 장려하고 기업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핵심인재들을 의도적으로 개발하여 혁신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실험 학습의 장려한 기업의 경영이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기존 지식이나 편견에 구애됨이 없이 항시 자유롭게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월마트는 끊임없이 실험만이 목표 달성의 지름길이라는 인식 하에 VPI(Volume Producing Item : 판매량 증가 품목) 콘테스트, 경쟁 기업에 대한 관찰 학습 및 ‘그래요, 샘! 우린 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실험 및 학습을 장려했다. 그 결과 샘 클럽의 도입(1992년 매출액 1백억 달러 획득), 운송 프로그램의 개선(연간 50만달러의 절감 효과) 등의 성과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경영의 본질 이해하고 실행해야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1등의 자리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 GE의 잭 웰치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의 길을 다음의 3가지로 요약했다.

“고객/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핵심이여(Speed), 이를 위해 전략과 조직은 무엇보다 단순(Simple)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자신감에 넘치는(Self-confident) 관리자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존경받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는 이러한 경영의 단순한 진리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철저히 실행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LG사보 2000. 11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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