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를 저술한 알렉시스 토크빌은 “자유의 창가에는 평등이 저 멀리 쯤 보이지만 평등의 창가에는 자유도 평등도 보이지 않더라”라고 했다.



새정치와 구정치 합당

공천권은 국민에게

후보난립 대처방안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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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병관(전 서울시 재향군인회장, 칼럼니스트)



자유와 평등이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논리가 있지만 자유가 확대되면 상대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반면에 지나친 평등정책은 자유를 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간 가치충돌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치제도에서 보면 자유는 자유경쟁을 우선시하는 보수주의에 가깝고 평등은 분배와 시혜적인 정책을 우선시하는 진보주의에 가깝다.

보수든 진보든 이념의 공동체가 되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요체인데 같은 정당에서도 이념이 상이한 자들이 잡탕으로 모이다 보니 진정한 정당정치의 가치가 훼손되어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 나올 리가 없게 되었다. 서구의 민주주의 역사를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시대 환경에 따라 시계추처럼 좌우로 이동하면서 집권세력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당이란 것이 미래지향적인 정강정책을 개발하여 국민의 선택을 받기보다는 정당을 권력쟁취의 도구로만 착각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러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당을 만들고 부수기를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눈속임에만 익숙하여 민주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수준에 가깝게 되었다. 지금 126석의 거대 야당이 국회의원 2석의 새정치 연합과 5대5 지분으로 통합을 한다고 야단법석인데 인사를 5대5로 할 것인지 정강정책을 5대5로 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야바위 정치가 선진국은 물론 어느 미개국에도 또 있는지 고명하신 정치지도자 여러분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묻고 싶다. 앞으로 나라가 잘될 것 같으면서도 정치만 생각하면 멀쩡한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보면 정당민주화가 단 1%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공천을 주는 정치 보스들한테 맹종하다 보니 소신 있는 의정활동은 물론 정당이 제모습을 찾아가는 역할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평소에 소신 있는 자들이 정치에 입문만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이다.
몇 해 전 대한민국 국회에 해머와 쇠망치가 등장한 사진이 뉴욕 타임스지에 대서특필된 것을 본 전 미 하원의원 김창준 씨는 언론기고를 통해 “이런 활극은 미국 의회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 의회 의원들은 모두 신사들이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전부 깡패들인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사람으로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제도가 잘못돼 있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의 제도가 계속된다면 한국 의회를 최고의 신사들만으로 채워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요지다.
또 무엇보다 당에서 공천을 주는 제도를 없애고 공천권을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어느 당에서 누가 그 지역 후보로 출마하느냐는 그 지역의 그 당 지지자들이나 유권자들이 정할 문제이지, 당의 간부들이 정할 일이 아니다. 당이 뭐기에 자기들 맘대로 누구는 공천을 주고 누구는 낙천시키고, 이리저리 후보들을 배당하고 유리한 지역구, 불리한 지역구를 골라 공천게임을 하는 것인지, 미국에서 바라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공천권을 당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의원들도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2004년 서울시 재향군인회장 시절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어 정치 선진화의 초석을 만들라는 투쟁을 하다 뜻이 관철되지 않아 무소속 출마까지 강행하여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기초자치단체의 공천을 포기하고 집권 여당은 모든 출마자들이 자유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소위 오픈프라이머리를 실행하는 고로 정치권의 대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야당은 공천헌금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당에서 공천을 포기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정당정치의 기본을 훼손함과 동시에 후보 난립을 어떻게 대처해야 것인지가 최대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번 기회에 선진의회민주주의와 같이 예비선거를 공정한 룰 안에서 후보를 선출하여 본선에 나가게 한다면 한순간에 우리는 정치선진국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당에 헌신한 후보가 당원과 지역주민들의 정당한 평가를 바탕으로 후보가 된다면 경쟁력이 더 강화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여기에도 당심이다 뭐다 해서 지구당 위원장이나 사무국에서 관여한다면 종전의 공천제도나 아무런 차이가 없고 분란만 키우게 될 것이다.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신인이 새정치를 슬로건으로 거대 야당과 함께 새당을 창당하지만 정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정치지도자들이 기득권 내려놓고 선진국처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4류정치가 1류정치로 거듭나는 선거혁명이 될 것이다. (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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