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경제정책에 정답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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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權和燮 편집위원 (권화섭 세계일보 객원편집위원)

다수결과 시장논리의 한계

뉴 밀레니엄 첫해인 2천년은 모든 측면에서 참으로 혼란스러운 한 해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국가의 안정과 생존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경제부문까지도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듯한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 때문에 뉴 밀레니엄 두 번째 해를 맞이하며 필자는 한가지 화두(話頭)를 떠올려 본다. 그것은 “경제정책에 정답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분명히 그 해답을 보여주었다. 경제정책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기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가지 주장을 한사코 굽히려 하지 않으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의 정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제정책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정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각자의 주장이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점에서는 각자의 생각이 그 나름의 정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의견차이와 경제적 이해대립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애용하는 황금률(golden rule)이 다수결과 시장논리다. 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하고, 경제적 이해다툼은 시장의 움직임에 그 해결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즐겨 사용해온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치적으로 다수결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묘미는 소수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하고 반영하는 것이지, 결코 다수결을 내세워 소수 의견을 깔아뭉개는 것이 아니다. 다수가 항상 이기고, 소수가 항상 지는 정치 게임은 결코 민주적 게임이 될 수 없다.

자유경제와 사회복지의 갈등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자유경제)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제2항에는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의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를 통해 경제주체간의 조화와 경제적 민주화(사회복지)를 천명하고 있다.

자유경제와 사회복지는 대립적 개념이다. 2차대전 이후 50년이나 지속되어온 냉전이 바로 그 우열 다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구 소련의 해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확실한 승리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생각도 잘못이다. 비록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자본주의와 시장논리의 근본적 결함인 소득불균형과 경제적 강자의 횡포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정책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경제적 이해대립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의약분업사태는 당사자인 의사와 약사 집단이 각기 서로의 주장을 한사코 정답이라고 고집하기 때문에 그처럼 심한 진통을 치르면서도 진짜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봉합되었을 뿐이다.

우리경제의 최대 취약점인 불안정한 노사관계에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노사관계는 노(勞)와 사(使)가 각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느 한 쪽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상대방을 결코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협력적 노사관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우리의 노사정위원회는 그 3주체가 각기 어떻게 하면 서로를 골탕먹이는가를 궁리하는데 열중이었다. 사용자는 정부의 구조조정을 이용해 근로자를 줄이는 데만 열심이고, 노조는 법적 의무와 상관없이 기업주의 사재출연을 비롯해 무한책임을 강요하고, 정부는 그런 노사갈등을 최대한 이용해 정책실패의 책임을 민간부문에 떠넘기고 외국자본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왔다.

지난해 말 우리는 한전의 발전부문 해외매각을 비롯해 공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양대 노총이 총파업 공세를 전개하는 등 또 한차례 진통을 치렀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노사정 3주체가 다시 한번 각자의 주장이 결코 정답일 수 없다는 현실을 깨우치고 협력적 관계를 복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아무리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일지라도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불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강행하게되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전노조와 농민들 시위

지난해 말 우리사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제적 갈등상황에 놀랐다.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트랙터와 경운기 등을 앞세워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농가부채 경감조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문제는 결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내연해 온 끝에 최근 농가경제가 거의 파탄상태에 이르면서 마침내 폭발하게 된 것이 농민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신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농정”을 펴달라는 정부에 대한 주문이다.

농업정책에 관한 한 지금까지 정부는 쌀 생산비조차 명확히 계산해놓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 정책을 계속해온 끝에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적자고, 크게 지으면 그만큼 큰 적자를 내게되는” 총체적 위기상황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농가부채 경감문제는 이른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라든가 부채경감의 형평성과 같은 형식논리의 차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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