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서글픈 영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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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宋貞淑 (송정숙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삿짐 싸놓고 보니…

나이든 부인들이 모여 앉은 자리였다. 그곳의 화제는 ‘늙은 남편’들이 얼마나 구박덩이인지가 화제가 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이삿짐을 다 싸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늙은 영감이 안 보이더란다. 그래서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았더니 이삿짐 트럭에 먼저 올라앉아 있더라는군.”

그 말을 듣고 다른 여인이 물었다.

“왜?”

“왜긴 왜야? 버리고 갈까봐지.”

그러자 다른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그건 옛날 얘기야. 그 다음에 나온 건 이렇지. 이삿짐을 다 싸놓고 났는데 영감이 안 보이더래.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옷장 속에 들어앉아 있더란다. 이삿짐 트럭 위에 올라가 있으면 끌어내려서 버리고 갈지 모르니까 아예 옷장 안에 숨어서 이사가는 집에 무사히 따라 가려는 거지.”

그러자 또 다음 사람이 말했다.

“에이! 그것도 구식이야. 요새 새 아파트에는 붙박이장이 있으니까 옷장 같은 거 아예 버리고 가잖아. 그래서 영감 이야기 시리즈도 이렇게 변했지. 이삿짐을 다 싸놓고 이제 영감은 버리고 가야겠다 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영감이 어느 틈에 마누라가 애지중지하는 치와와를 안고 저만큼 앞서더란다.”

바깥은 철지난 낙엽이 겨울비에 젖어 뒹구는 황량한 날씨인데 젊지 않은 여인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서글프고 황폐한 풍경이었다.

며느리가 “어머니 오시지 마세요”

나의 친구의 친구가 직접 겪은 이야기 한토막.

그는 며느리를 본지가 꽤 되었다. 데리고는 살지 않지만 살림 사는 거며 손주들을 보고싶은 마음에 자기 쪽에서 아들집을 찾곤 한다. 갈 때마다 섭섭하지 않게 해주고 그래서 며느리와 자기는 잘 되나가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날도 아들집엘 들렀다. 찾아간 시어머니를 며느리는 전에 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표정이었다.

“내게 뭐 할말이 있니? 있으면 해보려무나. 들을 만한 것이면 들어 줄 테니…”

시어머니로서는 귀한 며느리가 요구하는 것이니 웬만한 일이 들어주리라, 하는 마음을 먹어가며 물어 본 것이다. 그러자 생글생글 웃으며 조금 머뭇거리던 며느리가 다짐하듯 말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 드려도 괜찮겠어요?”

생글거리던 며느리는 당돌하게 그런 시어머니를 똑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님!! 우리 집 좀 이제 고만 오세요.…전 어머니 오시는 거 싫어요.”

그랬을 때 시어머니가 기절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시어머니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그의 친구이며 내 친구인 우리의 친구에게 한 충고는 이런 것이었다.

“며느리한테 할말이 있으면 들어줄테니 해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였다.

그게 그렇게만 받아들이고 말 일일까?

남편을 돕기 위해 열심히 주식 투자를 해서 한동안 재미를 보았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풀이 죽어서 찾아 왔다. 돈도 많이 벌고 했는데 왜 그렇게 풀이 죽었느냐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어느 날 70만원이나 하는 수입 티셔츠를 사달라고 했다.

엄마는 그 간이 부푼 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셔츠 하나에 70만원이나 하는 것을 사달라니!! 너 돌았니? 이게 무슨 소리니?”

그러자 10대이면서 키가 저희 아버지보다 목 하나는 더 큰 아들녀석은 이렇게 받았다.

“엄마, 엄마는 증권으로 억대 벌었다면서요. 그 돈 불로소득이잖아요. 거저 번 건데 나 70만원짜리 셔츠 하나 사주는 거 그거 새 발에 피 아니어요?”

엄마는 앞이 캄캄해 오며 다리에 힘이 좍 빠져 버렸다. 요즈음은 그나마 곤두박질을 쳐서 원금도 무너진 형편인데 이게 뭐람. 잃어도 너무 잃은 것이 많다고 풀이 죽어 사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백화점 쉬는 날과 동창회날

끝으로 이런 것도 있다.

날이면 날마다 외출을 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무엇을 하느라고 그렇게 돌아다니느냐고 물으면 문화강좌도 다니고 몸매를 위해 수영도 다니고 아이들 공부에 보탬되기 위해 가야 하는 데가 많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보니까 수첩 한 면에 한시(漢詩) 같은 것을 한 편 적어 놓았다.

「現月木新 一中十高」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가?

달이 나타나면 나무가 새로워 보이고 중간의 것이 훨씬 높아진다라는 뜻일까.

그래서 귀가한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좀 체면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 이제 제법인데, 한시를 다 짓구. 그런데 이런 시는 어떻게 해석하는 거지?”

은근히 존경심을 가지고 접근한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참 꿈도 야무지네. 내가 지금 와서 무슨 골 때릴 취미가 생겼다구 한시를 지어? 이거? 이건 현대백화점은 월요일에 쉬고 신세계는 목요일에 쉰다. 그리고 매월 1일은 중학교 동창회구, 10일은 고등학교 동창회다 그런 뜻이어요…. 참네 웃기는 소리두 다 듣겠네.”

남편은 오랜만에 싫것 웃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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