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국방백서 보도 有感(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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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林春雄 편집위원 (임춘웅 전 서울신문 논설주간)

북한은 4개 사단 증강했다는데…

얼마전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마침 필자는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벌써 시작된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한다면서 군대를 4개 사단이나 늘려 놓았는데 우리는 뭘하고 있었느냐” “결국 쌀 퍼주어 북한 군 도와주고 있었지 않느냐” “북한은 군대를 전진배치 하고 전쟁대비를 하는데 우리는 무장해제를 하고 있지 않느냐” “결국 이 정부가 김정일 좋은 일만 하고 있지 않느냐” 대충 이런 얘기들이었다.

점잖은 자리에서 얘기가 왜 이렇게 됐느냐 싶어, 옆사람에게 물었더니 오늘 아침 신문 못 봤느냐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따라 아침신문을 못 보았던 터라 그저 듣고만 있었다. 이날 아침 신문에 ‘2000년 국방백서’가 발표 됐던 것이다. 이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보통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돼서 모처럼 점심 먹는 자리의 분위기가 자못 흉흉했다.

점심이 끝나는 대로 신문들을 들춰보았다. 신문기사를 읽어보니 북한 군사력은 99년 백서와 비교할 때 육군전력이 63개 사단에서 67개 사단으로, 또 북한은 지난해 카자흐스탄에서 새로 도입한 MIG 21 전투기 40여대를 양강도 지역에 작전배치했고 러시아로부터 M18 헬기 여러 대를 도입했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유력지 셋이 공히 이렇게 보도를 하고 있었다. 세 신문은 다같이 이번 국방백서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고 △주적 개념과 장병정신 교육 부분과 △북한 군사력 변화 두 분야를 요약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 군은 무엇을 했는가가 궁금했다. 국방백서니 우리군의 이야기도 당연히 언급됐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신문에도 그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국방백서 자체가 잘못돼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국군도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한 신문을 들추니 제목부터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 신문은 북한의 군사력 추이와 더불어 한국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가 소상히 실려 있었다. 한국군은 북한에 대응, 지상군 장비중 전차와 장갑차 각 1백여대, 야포와 헬기를 각 20대씩 늘렸다. 해군에서는 항공기 10대를 늘린 반면 북측은 지난해와 동일한 전력을 유지했다. 특히 공군 전력에서는 남측이 전투기 20대, 지원기 10대 등 30대를 늘렸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신문은 국방백서에 실린 99년 ‘밀리타리 밸런스’ 자료를 요약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남한과 북한의 국방비 규모는 남한 3, 북한 1 정도다. 남한의 국방비는 99년에 1백29억달러 였으며, 북한의 국방비는 20억달러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북한은 군내 경제활동으로 실제 국방비는 40억달러쯤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자료는 또 94년?98년 사이 세계무기 수입국순에서 남한은 5위를 차지한 반면 북한은 71위로 밀려났다고 밝히고 있다. 국방백서는 한반도 유사시 투입될 미군전력이 최근 대폭 증강된 점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앞의 세 신문을 보면 북한은 계속해서 군비를 늘리고 있는 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잘라 버렸으니 독자가 보면 “쌀 퍼다 북한군 4개사단 늘려 주었다”는 논리가 가능해 질 법도 하다. 그러나 다음 다른 두 신문을 보면 한국도 충분히 대응하고 있어 국방문제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게 돼있다.

冷戰(냉전)사고로 정권 비판이 문제

국방백서라는 하나의 자료를 놓고 보도하는 신문의 태도가 왜 이렇게 다른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 밖에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로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자르가 한말이다. 앞의 세 신문은 보고싶은 현실만 보려고 한 것은 아닌가. 인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의 공기인 신문은 보고 싶은 현실만 보아서는 참으로 곤란하다. 신문보도 최대의 함정은 균형감각을 잃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을 평가하자면 당연히 남한의 군사력과 비교돼야 할 것이고 단순한 수치만이 아니라 실제 군사력도 비교평가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권위있는 군사전문지들은 대체로 한국군의 전력이 70년대 후반부터 이미 북한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흔히 지상군 수를 비교하는데 어디까지를 현역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병사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신문뿐 아니라 독자도 보고 싶은 현실만 보려는 층이 있다. 앞의 세 신문중에도 한 신문은 4개 사단이 늘었다면서도 도표의 전년대비 증감에서는 북한 지상군 수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부대편성을 달리 했음을 알 수 있으나 그것은 보고싶은 현실이 아닌 것이다. 우리사회에 내재돼있는 냉전적 사고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타성적이다. 북한은 항상 위험하고 위협적인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정권을 비판 하기 위해 정책을 의도적으로 헐뜯는 경우다. 이번 국방백서 보도같은 경우도 그 한 사례다. 거두절미하고 보고 싶은 현실만 간추려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계층은 자기불만의 표출로 국가정책을 꼬집는 사람들이다.

우리 다같이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나라가 잘못돼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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