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DJ개혁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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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李成春(이성춘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트르만의 성공사례

1945년 4월 미국 부통령이었던 트르만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미국 국민 정치인 각계지식인들은 의구심 어린 얼굴로 그를 지켜봤다. 몇 년째 2차대전 참전으로 국난(國難)에 처해있는 나라를 과연 3척 단구(短軀)의 경력도 보잘 것 없는 61세의 초노(初老)가 과연 이끌고 구해낼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었던 것이다.

1884년 미주리주 인덴펜더스에서 가난한 노새무역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트르만의 경력은 농부, 은행원, 1차대전참전(소령) 양품점 주인, 카운티(郡)의 판사 등으로 초라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디를 가도 정직·성실·신의가 상표처럼 따라다녔고 이는 나중에 대통령의 임기를 끝낼 때까지 계속됐다.

트르만은 1934년 우연한 기회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는데 정가(政街)에서는 그를 ‘촌사람’이라고 불렀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그는 엄청난 규모의 전쟁비용(국방비)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방조사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근2년 동안 감사 끝에 무려 1백50억달러(현재 1천5백?2천억달러)를 절약케하여 주목을 끌었다.

트르만은 취임다음날부터 각부처장관으로부터 꼼꼼히 상황보고를 받는 한편 저녁에는 한보따리씩 자료를 관저로 갖고가 새벽 1?2시까지 읽고 파악했다. 1주일뒤부터 트르만 대통령은 쾌도난마식으로 가차없이 국책(國策)결정을 내렸다. 취임한지 25일만에 독일이 항복했지만 일본이 여전히 항전을 계속하자 수십만명 규모의 도시를 단 한방으로 날릴 수 있는 원자탄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끼(長崎)에 투하하여 항복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트르만은 유엔창립, 방대한 진시행정기구를 평상체제로 전환, 1천여만의 군병력을 2백여만명으로 감축, 경제살리기를 위한 훼어딜(FairDeal)정책, 귀환장병들의 복지정책, 유럽부흥을 위한 마살플랜, 나토(NATO)창립,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트르만 독트린 선언, 공산군의 한국침략을 분쇄하기 위한 유엔군 파병 등 중요한 사건사안에 대해 단호하고 거침없는 결단을 내렸다.

위기때 탁월한 극복능력 과시

트르만의 성공은 탁월한 결단력과 공정한 인사,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사가 원동력이 됐다. 민주당 출신인 그는 유능한 인재라면 어느 당파(黨派), 어느 지역출신도 가리지 않고 적극 기용했다. 자기사람으로는 고향의 지방언론인인 찰스 로스를 백악관 공보비서로 임명한 것이 유일했다.

화합인사의 대표적인 예가 대공황때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출신 허버트 후버의 기용이었다. 루즈벨트는 선거운동때부터 후버를 미국경제를 망쳐놨다며 국사범(國事犯)처럼 몰아붙였고, 국민들도 그를 왕따시켜 그동안 죄인처럼 지냈다. 트르만은 후버를 전쟁으로 방대해진 행정체제를 대폭 축소 조정하는 행정개혁위원장에 위촉한 것이다. 재선의 임기가 끝나자 트르만은 1953년 1월 부인과 함께 30여년간 애용하던 낡은 가방 하나만을 든채 기차편으로 고향 인데펜덴스시로 귀환하여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정치학자들로부터 “위기를 맞을수록 더욱 탁월한 극복능력을 발휘했다”고 평을 들은 트르만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국가경영의 원칙과 소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비록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평소 고대이래 서양의 많은 통치자들, 특히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에 관해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최고지도자가 정직 성실 신의의 자세로 일하면 어떠한 위기와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 … 지도자가 사심을 갖거나 국민인기에 신경을 쓰게 되면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랑해서는 안되며 오직 훗날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DJ에게 남은 시간 별로 없다

오는 2월 25일이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이 된다. 집권초기 김 대통령이 한국경제를 침몰시킨 외환위기를 일단 극복하고 일부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을 정리한 것은 어느 정도 평가할 만하다. 또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끝에 6·15공동선언으로 햇볕정책을 실천하고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것은 큰 업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분야는 거의 정체(停滯)내지 실패상황이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우선 경제의 경우 이 정부는 외환위기만을 극복한 것을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졸업한 것으로 자랑하고 자만했고 부실기업과 금융에 대해 어설프게 수술했다가 결국 극심한 불황과 제2의 경제위기설에 휩싸이고 있다. 정치는 16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상황속에 야당설득을 통한 화합정치 대신 힘에 의한 정치로 일부 의안의 날치기통과와 함께 여당이 국회의장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일까지 빚었다.

김 대통령은 지난 연말 당정쇄신을 시도했으나 효과는 아직 미지수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김 대통령이 남북문제와 대외관계보다 산적한 내정(內政)·내치(內治)에 전력을 다해줄 것을 고대하고 있다. 아울러 야당을 포용하는 화해정치·상생(相生)의 정치를 이룩하고 지역편중인사지양, 사회안정과 복지증진 역시 중요한 숙제인 것이다.

금년봄?전반기까지가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만큼 김 대통령은 겸손 무사심(無私心)으로 당파(黨派)도 얄팍한 인기도 일체외면하고 오직 역사에 심판받는다는 각오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정직·성실·신의-약속이행은 개혁성공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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