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새해소망]

강한 정부가 필요하다

제때 제일할 수 있는 적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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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裵秉烋 (배병휴)대표편집위원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부

지난해까지 정부가 파악하고 있던 민심은 고약한 모습이었다.

자율을 외치다가도 일이 틀려지면 “정부가 뭘 하느냐”고 따지는 것이 민심이었다.

평소엔 “정부는 빠지고 민간에게 맡기라”고 야단치더니만 잘못되면 다시 정부에게 화살을 돌리니 민심이 고약하지 않느냐고 섭섭히 여겼다.

구조조정이 잘 안돼 경제가 다시 어려워졌다고들 지적했다. 그래서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려 들면 또 관치(官治)개혁이냐고 반발하니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개혁성과가 없다는 여론이 많았다. 그래서 강력한 사정(司正)방침을 밝히니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사정이냐”고들 빈정거렸다. 게다가 야당에서는 정부비판을 막으려는 표적사정이라고 투정했다.

이래저래 정부는 욕먹는 팔자라고 신세를 한탄하며 지난해를 보냈다. 그리고 민심이 고약하여 아무리 노력하고 열성을 쏟아도 성과는 평가받지 못한다고 자탄했다.

정부의 딱한 처지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그렇지만 사실을 제대로 알고 보면 민심이 고약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을 모면하려 요령을 피운 경우가 많았다.

문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언론이 어떻게 논평할까,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를 잔뜩 지켜보는 요령으로 정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정부는 여론을 중시하는 민주정부로 평가되기를 기대했었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문제를 풀려는 의지와 능력이 의심되는 어정쩡한 정부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었다.

답답할 때 정부는 어디 갔나

민생과 관련된 세상만사가 정부와 관련되지 않는 부문이 없다.

정부는 군림(君臨)하는 일이 없다지만 국민의 정부도 여전히 무섭다.

경제사정이 어렵고 구조조정이 잘 되지 않아도 세금이 잘 걷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장사가 되건 안되건 때가 되면 정부는 세금부터 징수해간다.

세무조사 한번이면 수천억원씩 징수된다.

주식을 사고 팔면 세금징수하고 땅을 그냥 갖고 있거나 팔아도 세금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산을 팔아 자구(自救)하라면서 세금을 징수한다. 장사하여 집 짓고 밥 지어 먹는 과정에 정부를 통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거의 없다. 그래서 주식과 부동산이나 벤처에 날리고 심신이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지만 세금내기 위해 일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팔자다.

공기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재벌과 은행은 정부가 호통치니 소유와 지배구조도 뜯어고치고 자산매각도 하고 있지만 공기업은 고친 것이 별로 없다. 민영화나 해외매각 약속은 여러번 했었지만 성과가 없다.

민영화는 재벌에게 넘어갈 테니 안되고 해외매각은 국부(國富)유출이니 안된다고 노조가 강력 반발한다. 노조에게는 약해 보이는 것이 국민의 정부다.

세월 좋을 때 중산층과 상류층에서 땅을 많이 잡아놨다. 대기업들도 땅 좋아하다가 부실이 늘어난 경우가 많다.

지금은 이들 땅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땅 자산을 움직이고 굴려야 빚도 갚고 자구계획을 이행할텐데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팔리지 않고 건축할 수도 없고 담보가치도 없어졌으니 나중에는 세금으로 현물을 갖다바쳐야 할 운명이다.

뭣 보다도 서로 대화가 통하고 길이 뚫려야 집이나 부동산이 팔리고 자금을 융통할 수 있을 터인데 보다시피 여의도에서 종로통까지 시위판으로 막혀 있고 한숨소리로 땅이 꺼질 지경이다.

이럴 때 평소 무섭게 보이던 정부는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걱정도 팔자소관인가

이제 참고 견디다가 새해를 맞았으니 액운은 걷히고 국운이 융성해질 때도 됐다. 그러자면 정부가 달라지고 앞장서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서 풀려질 일이 없다. 제도적으로는 자율로 포장돼 있을지라도 민간은 청와대와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되어있다.

이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정부가 공연히 민간부분만을 나무라지 말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숱한 나라문제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도 민심이 고약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정부가 앞장서서 풀어줘야만 세금내는 국민이 다소라도 위안을 받게 된다.

나이 든 세대는 온갖 세상일을 걱정하고 나랏일을 불길하게 지켜본다.

심각한 교통난에다 각종 집단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꼴을 보면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환경문제 청소년문제 사회문제 등을 짚어봐도 걱정이 태산이다.

가만히 보면 팔팔한 젊은이들은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도 컴퓨터 대화에 빠져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정부도 그냥 덤덤한 표정이고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은 무슨 일로 바빠 말 한마디 없이 소일한다.

대권(大權)쟁탈시기가 다가오니 그쪽에 관심이 있고 권력의 향방에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나이가 뭐길래 나이든 세대만 걱정이 많고 두려움에 떠는가. 시력이 떨어지고 청력도 약화되어 세월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없어 공연히 불안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나이든 세대는 모진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슴 떨리는 길흉사를 너무나 많이 겪었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지난해만 해도 죽을 고비를 겪었다는 소감이다.

IMF 체제를 졸업했다고 금방 좋은 세월이 찾아오려니 했더니만 정반대였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분위기가 냉소와 거부뿐이다.

세월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분위기지만 실상 정부를 나무라고 권력을 비판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환경이 좋던 싫던 관변과 깊숙이 관련되고 권력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정부를 떠나 살 수 없으니 정부가 따뜻하게 감싸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정부가 편하면 국민 불편하다

새해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제발 마음 편히 살았으면 싶은 소망이다.

다소 늦어지고 불충분하더라도 벽돌 한 장씩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자는 심정이다.

때는 21세기라 젊은 패기의 시대이다.

그들의 욕구와 기대를 꺾자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노숙한 경험세대들의 우려와 안목을 반영시켜야 한다는 소견이다.

개혁과 구조조정이 정치와 사회논리에 부딪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형국을 어떻게 풀 것인가.

과거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비난을 많이 받았었다. 반면에 지금의 정부는 자제(自制)를 큰 미덕으로 삼는다. 당연히 오늘의 정부가 과거보다 발전했다고들 평가한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민생을 보살피는 차원에서는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정권적 차원의 정치적 득점(得點)은 모르지만 당면한 경제난을 풀어가는 성과로는 내세울 것이 없다.

오히려 한가지 문제를 풀어가면서 새로운 문제를 생성시키는 결과이니 나라문제가 풀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집단에 의한 실력행사는 비록 초법적이라도 통한다는 사례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에 반대가 없을 수 없고 민영화나 해외매각에 이해를 달리하는 계층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반대와 거부논리를 극복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을 보고도 정부가 가만히 있다면 국민이 세금을 낼 까닭이 없다.

중요한 일을 하자면 정부가 비판도 받고 야단을 맞는 경우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편안코자 하면 국민이 불편해 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동안 편안하게 지내다가 구조조정 고비를 당겨 많은 부실기업들을 퇴출시켰다.

기업가치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을 퇴출시켰지만 개중에는 채권금융기관이 먼저 살고자 퇴출명단에 포함시킨 사례도 있었다. 기업을 살리기 보다 자기네 살자고 기업을 죽이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부가 편안한 길을 택한 셈이다. 이래서는 정부가 신뢰받고 존경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할 일 다하는 적정수준의 정부

정부는 너무 강해도 안되지만 너무 약해도 좋지 않다는 경험이 있다.

강한 정부라면 독재정부가 생각나고 약한 정부라면 물정부가 연상된다.

우리에게는 너무 강하지 않고 약하지 않은 적정정부가 필요하다. 정부가 자진해서 꼭 해야 할 일은 여론이나 시위에 상관없이 제때에 해낼 수 있는 정부를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면 지금보다는 권위가 있고 힘이 있는 강한 정부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정부에 힘이 없고 권위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요령을 피운다고 느껴진다.

경제문제가 얽히고 각종 이익분쟁이 끝없이 깊어지지만 정부는 실효성도 없는 원칙만 강조한다.

종래 정부가 인허가권을 거머쥐고 경제와 사회를 통제할 때는 안정과 성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얻어지는 것이 없는 꼴이다.

공권력 행사가 시비의 대상이 될까봐 벌벌 떤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한두명을 잡지 못해 공권력이 조롱받고 비판되지만 그래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노사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인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노조는 설득의 대상이다. 그리고 끝내 정부의 압력이 사용자의 주장을 꺾고 만다.

노동관계법 재개정 약속이 그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정부의 약속이 실천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힘있는 정부나 강한 정부를 원하는 것이 독재정부나 권위주의 정부로의 복귀를 뜻하지 않는다. 경제사회적 진통과 혼란의 문제 의식을 깨닫고 스스로 해결코자 힘과 권위를 적절히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의 정부를 요구하는 것이다.

경제현안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축적된 비리와 모순을 법과 제도에 따라 개혁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주는 정부를 희망하는 것이다.

비록 정치권에서 집권당이 소수인지라 여야관계가 불편하고 정권재창출을 앞둔 정치일정이 바쁘다해도 정부의 권위가 부정되는 풍토는 집권당의 책임이다.

또한 야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고 국민도 책임을 나눠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의 무책임이 어쩔 수 없노라고 양해되거나 용서되지는 않는다.

새해는 정부가 어떤 눈치를 보거나 주저하지 말고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한 강한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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