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토지개발과 地名(지명)

땅이름은 시대적 생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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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金英雄(김영웅 경영학박사,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장)

이 땅의 지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명은 문자 이전의 시대부터 존재하여 왔고, 또 생명유기체처럼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모든 지명은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생활어의 하나이면서 한편으로는 명명당시의 선인들의 사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화석(化石)과 같은 존재이다.

특히 조국 근대화 이후 이 땅에 불어닥친 도시화, 산업화, 개발화 바람은 엄청난 국토의 물리적 변형을 가져왔다. 그에 따라서 옛날에 붙여진 지명들이 오늘날의 현실과 신통하게 맞아떨어지거나,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이 미리 붙여져 있어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니, ‘명실상부(名實相符)’니 하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령 온수리(溫水里)에서 온천이 솟아 나왔다든지, 댐을 막고 보니 댐 위쪽은 수상리(水上里)이고, 댐 아래는 수하리(水下里)가 되었다든지, 충청북도 내륙의 어부동(漁夫洞)이 고기잡는 마을이 되었다든지, 기흥(器興)단지에 각종 생활용기(容器)공장이 들어섰다든지 하는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단순히 ‘지명우합(地名偶合)’이라거나, 또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소산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이점에 대하여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모든 땅은 사람의 삶을 감싸고 있는 환경이며, 그 땅과 사람의 인연으로 인하여 사람은 땅에, 땅은 사람에 오래 오래 길들여져 왔고, 그로 인한 지인상득(地人相得)의 소산이 바로 지명우합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신토불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땅과 사람의 관계는 하늘=천부(天父), 땅=지모(地母)적 관계로 인식하여 왔음을 상기할 수 있다. 사실 한문글자의 ‘흙 토(土)’는 ‘土’자가 새싹이 땅에서 솟아나는 모양이라는 설과, 여성의 성기로 보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토지개발을 예언한 땅이름들

한국토지공사는 신도시 건설, 주택 및 산업단지, 연구단지 조성 등 그동안 전국의 2백40여개소에 걸쳐서 토지개발 사업을 시행하여 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사업의 성격상 사업지역내 문화재조사라든지, 지명조사를 실시하여 오고 있다.

1997년에 개발지구로 지정하고 현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으로,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에 출판문화단지가 있다. 이곳은 현재 약 50만평의 부지를 조성중에 있는데, 이 지역의 이름이 문발리(文發里)이다. 문발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 황희정승 이후 이 지역에서 글로 이름을 떨친 선비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출판문화단지가 조성되면 글을 써서(文) 펴내는(發) 출판업이 크게 융성할 것이니, ‘문발리’라는 이름이 신통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충청남도 서해안의 약 70만평 부지에 조성되고 있는 아산국가산업단지 충남 고대지구는 고대리 일대가 옛날 대대리(大垈里)라 불렀던 곳이다. 이곳에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여러 공장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옛이름 큰터=대대리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면서 서해안시대를 여는 공장부지로 탈바꿈한 것도 역시 ‘큰터’라는 그 이름 때문이라고 해두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論工)공업단지는 1983년도부터 1985년까지 우리 공사에서 이곳에 약 1백30만평의 논공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 원래 ‘논공(論工)’이라는 이름은 약 2백여년전 황별감이라는 선비가 “논(論)은 학문이요, 공(工)은 기술”이라 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펴면서 동양의 학문과 서양의 기술이 융화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곳을 ‘논공면’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공업단지가 들어서서 대구·경북지역의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 1992년에 택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하여 현재 약 40만평의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新昌)지구는 이미 그 이름 속에 이 지역이 새롭게 번창할 곳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신창동 지역은 원래 모신리(暮新里)와 선창리(仙倉里)라 부르던 곳인데, 1914년 일제가 두 마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신창리라 하였다.

땅은 모든 생명체의 모태이자 귀착점

1997년도에 연구단지 부지로 지정하여 현재 약 1백만평의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의 부산지방 과학산업단지는, 이곳에 연구단지를 조성하여 우수한 인재들을 수용하기 위한 사업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이름인 지사동(智士洞)이 ‘지혜있는 선비’를 뜻하므로 이 곳에 연구단지가 들어설 것을 예감하고 미리 ‘지사동’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옛날에 지어 붙인 이름들이 오늘의 현실과 일치하는 것을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전 전남 여천군 쌍봉면 부근의 중촌마을에서 35쌍의 부부가 38쌍의 쌍둥이를 낳아서 세계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아직까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지명과 현실의 일치.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의 땅에 대한 인식의 접근은 ‘땅=부의 원천’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모태(母胎)이자 귀착지(歸着地)로서의 신성적, 종교적 인식, 외경심(畏敬心)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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