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인사동에서의 청소종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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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裵東萬(배동만 주식회사 에스원대표이사)

문화의 거리를 청소한 마음

구랍 30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에스원 본사 직원들이 인사동에 모였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의 거리라는 인사동에 모인 에스원 직원들은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손에 손에 청소도구를 들고 있었다. 이날 종무식을 인사동을 쓸고 닦으며 치뤄졌다. 일년을 정리하는 자리가 회사 강당이 아닌 거리에서 청소를 하며 이른바 ‘청소종무식(?)’을 행한 것이다.

에스원이 이런 독특한 종무식을 한 것은 99년부터.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자리인 종무식을 좀더 의미있고 보람되게 해보자는 뜻에서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에 서 있었던 99년에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대학로에서 역시 청소를 하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구랍의 인사동 종무식이 두번째다. ‘청소종무식’은 임직원들이 작지만 사회에 봉사도 하고 거리를 청소하듯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미진했던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한해를 설계하자는 취지로 실시하고 있다.

인사동은 문화의 거리라고 한다. 외국인이 우리의 고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인사동이란 명칭은 이곳이 조선시대 행정구역상으로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 대사동(大寺洞)이었다. 여기서 가운데 글자인 仁과 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사동이 옛날부터 지금같이 고미술품이나 고서적을 취급하는 상가가 밀집돼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가구점과 병원, 전통 한옥이 많았다고 하는데 1950년대부터 서서히 지금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풍족해지면서 집앞도 쓸지 않는다

60년대 초반 인사동길 양편에 고서점과 문방구점이 즐비했고 외국인들은 이곳이 가장 한국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뜻에서 ‘메리의 골목(Merry’s Area)’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인사동에는 화랑이 많아 미술문화의 거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술문화의 거리가 되는데는 홍익대 미대가 구 화신백화점 옆의 장안빌딩에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60년대 말부터 필방과 표구점을 비롯한 고미술 관련 상가가 집중되기 시작했고 70년대 들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과 동덕미술관이 들어서고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화랑인 현대화랑과 같은 상설전시 판매장이 속속 생겨났다. 이때부터 인사동은 골동품, 고미술, 화랑, 고가구와 함께 관련 업종인 지업사, 화방, 민속공예품점 등이 집적되어 명실상부한 서울의 전통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런 유서 깊은 인사동에서 청소를 하고 환경미화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이 있다. 6·25 전쟁 이후 황폐화된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쓰던 시절에는 먹을 것도 부족했고 단지 먹고 살기에도 바쁜, 그래서 다른 것에 신경쓸 여력도 없는 시대가 있었다. 외국에 자랑할 시설도 없었고 지금의 인사동 같은 문화거리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그때 진정한 의미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경제가 발전하고 풍족해지면서 오히려 우리는 따뜻한 우리의 전통과 훌륭한 문화의 많은 부분을 세계화라는 허명아래 소홀히 하고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예전에는 아침이면 집안 뿐 아니라 집 앞 골목도 청소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아침이면 빗자루를 들고 나와 거리를 쓸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당시는 ‘나’에 대한 생각보다는 ‘우리’에 대한 배려를 더욱 크고 중요하게 여겼다고 생각된다. ‘두레’니, ‘품앗이’니 하는 것들도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알고 있었던 선조들의 뜻이 묻어있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점차 ‘나’라는 개인 중심의 문화로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문화의 해를 생각하는 문화

지금은 이른 아침에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깨끗이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도 이런 변화의 일환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바쁘다는 생각 때문에, 내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21세기의 첫해인 금년이 ‘문화의 해’라고 한다. 문화의 해가 시작될 시점에 문화의 거리인 인사동을 깨끗이 청소했다. 인사동에 모여있는 고서점, 화랑, 고미술관들이 인사동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꼭 거창하고 수준 높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문화다. 이 시대에 살아 숨쉬는 우리가 인사동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일이라도 이웃과 함께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보여질 때 우리는 문화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사동이 서울의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로, 전통과 현대, 신구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다양함과 생생함을 지닌 거리로 뉴욕의 소호나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을 능가하는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아가고자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한명 한명이 문화의 창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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