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교육행정만 있고

교육정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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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權純旭(권순욱 서울지방변호사회인권위원장)

입학, 졸업시즌의 어두운 분위기

필자는 2월이 되면 늘 졸업식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과정이나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이 가슴 벅찬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식은 대학을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한다는 설레임과 희망으로, 어엿한 성인의 대열에 접어든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한 뜻깊은 儀式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졸업시즌이 되었는데도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은 것 같다. 재외국민특례입학제도를 악용한 사건들, 수능만점을 받고도 합격하지 못한 이가 있었는가하면, 서울대에 합격하기는 어려운 내신성적을 받은 학생이 하버드와 MIT에 동시에 합격하는 등 대학입학과 관련하여 유난히 말들이 많았던 한해였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연말에는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입시 특별전형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소식이 학부모와 학생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검찰이 1997?2001학년도 동안 재외국민 특례입학제도를 이용한 부정입학생 12개대 54명을 적발한 것이었다. 부정입학을 허가한 대학들은 대부분 서울 소재 명문대학들이며, 비리를 청탁한 학부모들도 우리 사회의 부유층, 상류층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혹은 사회 전체의 어두운 단면 역시 부끄럽게 드러나고 말았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필자는 특히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식인을 배출하는 우리 대학들이 자기 학교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재외국민이나 외국국민을 정원외로 수능을 거치지 않고 입학시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국내서 진학안돼 美 명문대 진학

미국의 비즈니스위크지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등 쟁쟁한 학교들을 제쳐두고 6년째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선정한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워튼(Wharton)스쿨의 경우를 살펴보면, 학생의 20% 이상이 외국에서 온 학생이라고 한다. 이는 워튼스쿨의 정책적인 과제중 하나인 ‘세계화(글로벌화)’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패트릭 하커(Patrick Harker·42) 원장은 설명한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첫번째 이유가 매우 효율적인 자본시장의 존재이며 그 자본시장은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하고 있으며, 이제 어느 기업도 그 예외가 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우리의 대학들도 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학생선발의 현실에 있어서는 제도의 취지와 거리가 먼 것 같다. 외국 대학이 각종 장학금을 제시하며 1년 내내 우수학생 선발에 매달리는 것과 달리 국내 대학들은 면접과 추천서 중심의 신입생 선발 방식 전환을 앞두고도 시간과 인력, 재정 투자를 오히려 줄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특수목적고의 한 여학생이 내신 성적 불리로 국내 명문대 진학이 어렵자 미국 명문대에 지원, 합격하여 우리나라 대학입시와 인재양성제도의 불합리성과 낙후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조기졸업을 할 만큼 열심히 공부한 과학고 2학년인 이 학생은 학교 성적이 2학년 전체 130명중 20등으로 상위 15%안에 들지만, 30등급으로 나눈 내신성적으로는 5등급에 해당돼 자신이 원하는 서울대 진학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하던 이 학생은 차라리 외국 유학을 하기로 결심했고,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Ⅰ과 SAT Ⅱ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로부터 동시에 입학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학생 선발권 돌려주면…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와 인재양성제도의 불합리성과 난맥상을 드러낸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선발권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선발권은 기부금입학의 허용문제, 과외문제, 고교평준화문제 등을 동반하여 사회일반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해결을 외면할 수만도 없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며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나라에 ‘교육행정’은 있지만 ‘교육정책’은 없다고 한다. 매년 바뀌는 대학입시제도만 봐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최근에 일어난 특례입학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에 관해 우리의 대학교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하기보다 ‘확보’하는 데 급급하여 입시 본연의 교육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점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입시라는 교육과정은 대개 대학의 직접적인 관장사항이 아니라 교육당국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는 점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제고시키지 못한 점도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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