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노벨평화상 영광과

국가보안법의 망신

베르게 위원장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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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李珍雨 (이진우 변호사)

다시 생각하는 노벨상의 의미

2000년 12월 10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영광의 날이다. 이 날은 김대중 대통령이, 배달의 동포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날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벨상중의 노벨상이다. 앞으로도 언제 또 다시 이러한 영광의 날이 우리를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가슴 벅찬 일이다.

김 대통령 자신도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5세가 임석한 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영예를 다시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한다”라는 감격적인 소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라는 겸양의 말을 첨가했다. 그 말이 대통령의 수상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굳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선포한 김 대통령의 노벨상수상공적은 더욱 감동적이다. 베르게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남한뿐만 아니라 동아세아 전체를 위해서 바친 필생의 공적(his lifelong work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을 기리는 뜻으로 그 상을 수여한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베르게 위원장은 우리 대통령의 생애를 다른 노벨상수상자, 특히 넬슨 만델라, 안드레이 사하로프, 빌리 브란트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들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특히 김 대통령의 불퇴전의 정신 (invincible spirit)을 초인(superhuman, Uebermensch)급이라고 격찬하고 있다. 그런데 베르게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노벨상수상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업적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peace and recinciliation with North Korea)라고 선언했다.

대한민국을 남한으로 호칭하다니…

베르게 위원장은 한가지 사항에 관하여 자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시작된 데 불과한 화해의 과정(process of reconciliation which has only just begun)에서 김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시상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too early) 아니한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이 자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자답을 내리고 있다. 그 자답이란 “인권을 위한 김대중씨의 공헌은 두 한국 국가 (two Korean states)사이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태진전” (recent developments)과는 관계없이 그를 수상자로 결정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한 베르게 위원장의 자문이나 자답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할 지식이나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연설가운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본다.

“김 대통령이 성취한 민주주의 혁명후에도 낡은 질서 (old order)는 아직 살아있다. 민주주의란 관점에서 볼 때 남한 (South Korea)은 ‘법제도와 보안입법의 개선’(reform of the legal system and of security legislation)을 성취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있다. 엠네스티에 따르면 아직도 남한의 교도소에는 장기수정치범(long-term political prisoners)가 수용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근로자들의 노조결성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근 반세기동안 민주화를 위해 뛰어난 대변자역할을 감당해 온 김대중씨가 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는 먼저 그가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을 “남한”(South Korea)이라고 부른 점에 대해서 커다란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South Korea란 국명을 가진 나라는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게 위원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그가 통치하는 국가를 “남한”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거나 무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베르게 위원장이 보안법을 알까

필자를 참으로 분개하게 하는 사실은 국가의 호칭이 아닌 다른 데 있다. 그는, 전술한 바와 같이, “남한이 보안입법(security legislation)에 관한 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보안입법”이 무엇을 말하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그 말이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Law)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베르게 위원장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보안법개폐의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대하고 지난한 과제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온 국민이 지식과 경험과 정성을 다해서 토론하고 연구해도 쉬 결론을 얻을 수 없는 어려운 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베르게 위원장은 우리 국가보안법의 제도적 의의와 구조, 연혁과 기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법률이라고 믿고 있는 국민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베르게 위원장이, 이러한 연구나 상황판단없이, 함부로 국가보안법개정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면 이는 우리나라 국정에 대한 간섭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하늘같은 노벨평화상을 하사한다는 것을 기화로 자신의 오만과 독선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벨평화상의 영광을 얻는 대가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망신과 창피를 당해도 좋다는 것인가?

그는 또 우리 교도소에 장기형을 선고받은 “정치범”이 수용되어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정치범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 하나는 국가의 기본적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를 말한다. 내란죄 또는 외환죄 같은 것을 뜻한다. 또 하나의 정치범을 범죄행위자가 국가의 기본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행하는 모든 범죄, 예컨대 혁명을 위한 살인죄, 방화죄 같은 것을 뜻한다.

“정치범”이 이러한 것을 의미하는 이상 그것은 무거운 형의 선고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베르게 위원장은 “정치범”의 범인은 교도소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처럼 단언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정치범이란 도대체 어떤 범인(수형자)를 말하는가?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정치범”이 엠네스티가 말하는 “양심범”과 같은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양심범”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를 쉬운 방법으로 풀이해 보자. “양심범”이란 “선량한 시민”, “양심인사”, “애국자”가 “악법”, “비양심검사”, “부도덕판사”의 공동악행으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범죄자”의 “누명”을 쓴 죄수를 말한다.

장기수 양심법이 어디 있다고…

베르게 위원장의 “정치범”론 또는 “양심범”론이 옳은 것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국회, 검찰, 법원은 모두 “의인”을 “악인”으로 전락시키는 악당의 집합체가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해서는 안될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노벨상위원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이처럼 공개적으로 폄하할 수 있는가?

베르게 위원장은 위와 같은 자기주장 단정에 자신이 있다고 하면 자기책임하에 이것을 선언할 것이지 왜 앰네스티에 거증의 책임을 미루고 있는지 그 점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베르게 위원장은, 전술한 바와 같이, “장기수정치범”(양심범)이 현재도 남한교도소안에 수감되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현재 집권 3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한 평생 인권신장을 위해서 몸바쳐 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집권함과 동시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장기수 양심범에 대해서 즉각 사면조치를 해주었어야만 옳았던 것이 아닌가? 그것을 하지 아니한 채, 3년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날까지 자신의 통치권안에 들어 있는 “남한교도소”안에, 양심범을 그대로 묶어두고 있다면 이 얼마나 큰 모순이 아닌가?

베르게 위원장의 수치스러운 연설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수모를 준 일은 우리의 큰 아픔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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