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政爭(정쟁)을 확대 생산하는

정치보도 책임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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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劉載天 편집위원(유재천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미디어정치시대의 언론 책임

새해 들어 한국정치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정치가 얼마나 추한 꼴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범이라도 하는 것일까, 국민들은 못 볼 것을 보는 것만 같다. 일찍이 들어 본 일이 없는 국회의원 꿔주기가 정치안정을 위한 정치의 正道라는 데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국민들은 지금까지의 한국정치에 그렇지 않아도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난 판에 이제는 어이없어 할 뿐이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물론 한국정치가 이 지경이 된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한 유권자의 수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정치현상을 다루며 정치과정에 일정 부분 관여하는 언론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언론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안을 ‘의제’로 사회에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하물며 전통적으로 정당이 수행해 왔던 기능의 상당 부분을 언론이 대행하는 이른바 ‘미디어 정치’ 시대에 언론의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언론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를 사회적 의제로 정립해 주고 쟁점을 발굴해 시민들이 그 이슈에 관해 의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유익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는 한편 활발한 ‘공론장’ 구실을 담당해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언론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는 것이 되며 언론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언론의 정치보도는 그같은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언론은 그러한 역할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왜 그럴까?

들판서 이삭줍기식 단편보도

한마디로 말해서 그 까닭은 주권자인 국민의 현실인식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고 통찰력을 발휘해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언론의 정치보도는 쟁점을 발굴해 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추수후 들판에 떨어진 이삭줍기식으로 정치현장의 동태, 그것도 정치인 위주의 가십성 기사를 단편적으로 보도하는 데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 정치현상의 본질적 문제는 제기되지 못하고 정치가 마치 말싸움인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말은 말을 낳고 비난에는 비난으로 맞서게 만들어 이성을 상실한 감정싸움판을 짜줌으로써 언론은 정쟁을 확대 재생산하는 공장처럼 되었다.

만약 언론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 상대방에 대한 극한의 용어를 구사한 비난, 헐뜯기, 모략과 중상 등 정치의 정도에 어긋나고 정치의 본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들을 보도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이 어떤 행태를 보일 것인가를 가정해 보자.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정치인들의 말싸움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을 위주로 정치기사를 쓰는 관행은 정쟁을 부추기는 역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3金 청산하자며 3金 역할 보도

예컨대 언론은 ‘3김 시대’를 청산해야 한국정치가 바로 선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한 생각은 언론만 아니라 지각있는 국민은 누구나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언론은 그들을 정치보도의 핵심에 놓는다. JP가 침묵 끝에 아리송한 말 한마디를 툭 던져놓으면 언론은 앞다투어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 매달린다. Y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정치기사의 관행은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주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치판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상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 한마디 마다 의미를 부여해 보도할 일은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언론이 ‘3김시대’의 청산을 지향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발전을 갈망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말 한마디, 누구와 골프회동을 한 것 등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삼가해야 옳다. 그들은 이러한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이용하는지도 모른다.

그 뿐 아니다. 언론은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문제는 정치발전을 위한 해묵은 과제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치보도에서 ‘3김’을 그 지역의 ‘맹주’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공조해 정권을 창출하려는 움직임도 자연스런 행태로 보도한다. 특히 다음 대통령선거를 2년여 앞둔 이 시점에서 ‘3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기사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같은 이율배반적인 정치보도가 상존하는 한 한국정치의 고질인 지역패권주의는 고쳐질 수가 없을 것이다.

정치보도는 정치의 질과 수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럼으로 지금까지 지적한 바와 같은 한국언론의 정치보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바로 저급한 한국정치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이 점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보도는 그러한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론의 존재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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