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의지의 행동인
‘바른경제’ 의 선구자
朴鐘圭 회장, 바른경제 구상에서 창립까지

▲ 바른경제동인회 창시자 박종규 ㈜KSS해운 고문. <사진=바른경제동인회>

바른경제동인회 창시자인 박종규(朴鐘圭) ㈜KSS해운 고문은 백발에 하얀 턱수염마저 깎지 않은 자연산 모습이다. 외양은 노쇠해 보이지만 중병을 수술한 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제주도 서귀포 산중에서 자연요법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우렁찬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이다.
88올림픽 후 모두들 ‘노조 때문에…’

박 회장은 올 들어 자신이 창립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으로 복귀하여 토론회와 세미나를 열정적으로 주도하며 최근에는 ‘이익공유제’(利益共有制)를 열심히 강조, 전파하려 애쓴다.
박 회장이 바른경제동인회를 구상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노동계의 거리투쟁이 심화되고 있을 무렵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유보됐던 노동권이 노태우 6.29 선언 이후 거리투쟁으로 나왔다가 서울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시 격화되어 경제계에서는 모두들 “노조 때문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서울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소련과 동구권으로 확산되어 한껏 국위가 높아졌다고 자부할 때 노조의 거리투쟁은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이었다.
이 무렵 정부는 ‘행정개혁’, 경영계에서는 ‘정도(正道)경영’, ‘고객만족경영’ 등을 논의하고 실천하려 했지만 노동계의 투쟁구호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럴 때 해운업에 오래 몸담고 있던 박종규 회장의 ‘바른경제’ 제창이 뜻밖이자 이색적인 구호로 들렸다.
박 회장의 이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막강한 위세를 떨친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과 똑같아 ‘행여나’ 하고 쳐다본 경우가 있었다. 알고 보니 바른경제 박 회장은 대한해운공사 공채사원 출신으로 화학물질을 운송하는 ㈜KSS해운 창업자로서 전문 영역을 개척해온 중견 기업인이었다.
박 회장이 어떤 계기로 바른경제동인회를 창안했는지에 관해 지난 99년 12월 KSS해운 우리사주조합이 간행한 ‘손해 봐도 차라리 원칙을 지킨다’는 책 속에 자세히 나온다.

▲ 바른경제동인회 사무실 개소식. <사진제공=바른경제동인회>

일본 춘투 극복과정 보고 동인회 구상

박 회장은 맥아더사령부 지배하의 일본 개조기(改造期)의 춘투(春鬪) 몸살에 주목했다. 매년 춘투에 쫓기던 일본이 어찌하여 노사 간 동반자 관계를 조성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던 중에 ‘경제동우회’ 조직을 발견했다.
이 단체를 통해 일본의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 각종 정책안을 발굴하고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박 회장이 즉시 인간개발원 장만기(張萬基) 원장에게 경영문화 투명화와 합리적인 노사관계 조성을 위한 기업인 모임을 주선토록 부탁했지만 현실적으로 벅찬 과제라는 답변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경실련 후원을 통해 바른경제실천 운동을 추진키로 했다.
이 와중에 KSS해운 사무직 노조가 결성됐다가 해산하는 곡절을 겪었다. 해운업 30년간 리베이트 없애고 밀수거래를 추방한 KSS해운의 바른경제에 시비가 제기된 것이 못마땅했다. 이 무렵 박 회장의 모친상에 서경석 경실련 사무총장이 조문 와서 바른경제단체 결성을 적극 권장하자 다시 용기를 얻었다.
1992년 12월, 박 회장이 서경석 총장, 도재영, 김종수, 오수관 사장 등과 준비모임을 가진 후 이듬해 3월 30여 명의 기업인 중심으로 발기인 행사를 갖고 3월 30일자로 ‘바른경제동인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김정문 알로에 회장, 광림기계 윤창의 회장, 베가물산 김종수 사장 등 이름 있는 기업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KSS해운 설립을 지원했던 이맹기 대한해운 회장도 동참했다.

창립 취지 따른 기업인 6개 실천과제 채택

바른경제동인회는 1993년 6월 17일, 강남 반도아카데미에서 창립기념 세미나 및 기업인 신생활운동 선언식을 가졌다. 기업인 신생활운동이란 천민자본주의의 오랜 악습을 타파하고 시대정신에 맞게 경영풍토 혁신에 앞장선다는 요지였다.
“지난 세월 산업사회 건설 및 경제발전으로 자산을 이룩했지만 환경오염, 사회적 부패, 정경유착, 불공정거래, 촌지(寸志)풍조 등 사회 곳곳에 타락의 물결이 범람한다. 그동안 이윤추구만이 기업의 목적인 양 생각하고 남을 돌아보지 않고 눈 가린 야생마처럼 ‘확대’ ‘확대’를 위해 달려오면서 ‘가족경영’, ‘이면거래’, ‘탈세’ 등 온갖 불미스런 관행이 생겨나 이들 암세포를 수술하지 않고는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넘어갈 수 없다”
이 같은 창립 취지에 따라 기업인의 실천과제 6개항을 채택, 발표했다.
①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재확인하고 기업인은 사회로부터 수탁된 ‘선량한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한다.
②정경유착, 배경이용, 부정로비에 의한 이권획득과 불공정거래를 과감히 배격하고 기술개발, 품질향상, 비용절감에 의한 실력배양으로 무한경쟁에 대비한다.
③기업은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나 사회적 공익과 환경보호가 기업이익에 우선한다.
④노사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⑤기업의 과실(果實)은 재투자를 위한 비축량을 제외하고 주주, 경영자, 종업원에게 공평 분배한다.
⑥일국의 제품 질은 그 나라 소비수준에 좌우됨을 확인하고 ‘소비자 주권’을 적극 옹호하며 최고의 제품생산과 최고의 서비스를 창출한다.

▲ 바른경제동인회 창립기념 세미나 및 기업인 신생활운동 선언식.<사진제공=바른경제동인회>

강한 의지로 치병 후 회장직 맡아

바른경제동인회의 창립 목소리가 언론의 평가를 받으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재계는 선단식 경영, 족벌경영, 오너에 대한 충성경영 등 다각적인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영계에서는 경실련과 같은 압력단체로서 또 하나의 시민단체가 나온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른경제동인회의 성격과 운동방향은 달랐다. 경영계 내부에서 우러나온 신경영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른경제동인회 주최 세미나와 강연회가 연속되면서 경영계가 우호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 바른경제동인회 토론회. <사진제공=바른경제동인회>

바른경제동인회 발족 이후 박종규 회장이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사용자측 위원으로 참석하여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을 강조했다. 그 뒤 규제개혁위원회 등을 통해 바른경제를 줄곧 역설했다. 이를 계기로 바른경제동인회 회원 수가 급증하여 새로운 경제단체의 위상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중견, 대기업 관계자는 물론 학계와 관료 출신들도 다수 참여했다.
이 무렵 동인회를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여 초대회장에 전 경제부총리 조순(趙淳) 박사를 추대하고 이사장에는 이우영(李愚榮) 전 중소기업청장이 취임했다. 조 박사는 동인회 창립 초기부터 적극 성원해 왔지만 고위공직을 자주 맡아 뒤늦게 회장으로 추대됐다. 또 이우영 이사장도 한은 부총재, 중소기업은행장, 중소기업청장 등 고위공직을 끝마친 후에야 바른경제에 공식으로 참여했다.
바른경제동인회 창설자로서 박 회장은 1995년부터 회사경영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동인회도 부회장직만 맡아왔다. 그 뒤 2005년 8월 위암 수술을 받고 제주 서귀포로 낙향하여 자연요법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의지를 보였다. 박 회장은 서귀포 생활 중에도 바른경제동인회 행사 때는 상경하여 줄곧 참석하는 열성을 보여 주었다.
올 들어 조순 박사가 연로를 이유로 사임을 적극 주장하자 박 회장이 주위의 뜻을 받들어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직을 맡았다. 단체 창설자로서 처음 회장직을 맡아 자신의 주주제안으로 KSS해운에 채택된 임직원 이익공유제 확산을 위해 목청을 높이고 있다.
박 회장은 투병과 치병과정을 통해 다소 야윈 모습이지만 스스로 건강을 자신할 만큼 활기를 회복했다. 이는 곧 바른경제 선구자로서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라고 믿어진다.
박 회장이 전면에 나서자 바른경제동인회 활동이 새삼 활기 띤 모습이다. 동인회 창설정신에 채찍을 가해 대한상의, 전경련 등 5대 경제단체에 이어 제6의 경제단체로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겠다는 열의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3호 (2015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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