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기업가정신

도전, 개척, 성취

21세기엔 한국에 성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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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광서 (한국경영사상연구원 원장)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산업혁명박물관에서 제임스 와트의 거대하고 웅장한 증기기관,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수력 방적기와 각양각색의 발명품을 보면서 18세기 중반 영국이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일으킨 후 오대양육대주(五大洋六大洲)에 유니온 잭기를 휘날리며 40여개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결코 해가 지지 않는(never sun set) 대영제국(Great Britain)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과연 그 위대한 힘의 원천(源泉)은 무엇일까?

미국 카네기, 일본 마스시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계층은 정부도 아니고 부유한 상인층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기업가정신이 충만하고 왕성한 기업가들이었던 것이다. 기업가정신(企業家精神;Enterpreneurship)이란 불굴의 도전정신과 개척자 정신,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패기만만한 모험정신이다. 미국의 피터 드러커가 “한국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나라”라고 지적했듯이 지난 1960~70년대의 개발연대에 패기 넘치는 창업1세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개척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의 경제ㆍ경영사를 회고해 보면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그 나라에 얼마나 많은 도전적이며 혈기왕성한 기업가가 존재하였느냐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업혁명기의 영국에는 제임스 와트, 리처드 아크라이트, 네이 스미스 같은 걸출한 기업가가 있었고, 미국에는 카네기, 록펠러, 스탠포드 같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기업가들이 미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하여 오늘날 세계 제일의 자본주의 경제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마스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이치로(本田一郞), 시부자와 에이이치(涉澤榮一) 등이 일본의 산업혁명을 주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두산그룹의 창업자 박승직, 유한양행의 유일한, 삼성그룹의 호암 이병철, 현대그룹의 아산 정주영 그리고 수많은 기업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산업혁명가 리처드 아크라이트

불굴의 기업가정신의 한 사람으로 영국 산업혁명가의 기업가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예를 들어보자, 이발사 출신의 기술자로 수력 방적기를 발명해 전통적 생산방식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그는 근대적 공장을 처음 만들어 영국의 산업혁명을 선도(先導)해 왔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열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충만했고 밤을 새워 기계를 제작하는데 저축한 돈을 모두 써버려 부인이 기계모형을 모두 부숴버리기도 했다. 굽힐 줄 모르는 용기와 뚝심, 그리고 통찰력과 사업수단을 지닌 그는 역경을 극복해 방적기 개발로 큰 부자가 되었고 후에는 주지사(州知事)가 되고, 조지3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을 만큼 명성을 얻었다. 그는 기술자로서 성공해 부(富)를 이루고 사회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이룬 부는 끝없이 솟아나는 창조정신(創造精神)의 열정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다.

개척자 정신과 도전정신이 없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졸장부에게는 성공은 절대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나 사회적 지도자 등과 같이 성공이란 언제나 희망과 집념을 버리지 않고 꿈을 키우며 미래를 지향하는 용기 있고 끈질긴 사람들만이 쟁취할 수 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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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시케>

21세기엔 한국서 성인 나온다

국운융성과 기업가정신을 논함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지난 1957년 7월 여름방학때 필자는 충남 예산군 덕숭산에 있는 유명한 고찰 수덕사를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스님을 만나 합장배례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나를 이끌고 약수터로 가서 스님들만 드신다는 우물에서 바라에 정성껏 물을 담아 주시면서 버리지 말고 다 마시라고 하였다. 1리터나 되는 맹물을 전부 다 마시라니 황당했지만 노스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쉬엄쉬엄 다 마셨다.

스님께서는 나를 보고 요즈음 보기 드문 학생이라며 합장배례한데 대해 칭찬해 주셨다. 때마침 정오가 되어 공양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스님은 나를 보고 소찬이지만 같이 공양을 하자기에 극구 사양했더니 그럼 자기가 공양하고 돌아올 때까지 다른데 가지 말고 만공대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한 30여분 기다리니 오셔서 만공대 앞의 큰 바위에 앉게 하고 수덕사의 내력과 함께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씀으로 그 대략을 살펴보면 “우리 한국은 지금 식민지의 상처와 전쟁의 피해로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의 하나이지만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돌아오면 세계사의 주역(主役)이 될 것이며 또한 세계를 이끌어 갈 성인(聖人)이 우리나라에서 출현할 것이다”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었다”그는 새로운 성인이 한국에서 반드시 출현한다면서 그 근거로 세계 4대 성인 출현의 역사적 환경과 그 배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석가모니는 인도의 왕국 중 가장 세력이 약했던 가무라비성에서 태어났고, 예수님 역시 베들레헴에서 아기 구유 속에서 탄생하셨으며, 공자님 또한 오호 십육국 가운데 가장 약한 노나라에서 출생하셨으며 마호메트 역시 그러했다고 하면서 세상을 구제할 성인은 언제나 강대국이 아닌 극히 불우한 나라에서 출현하는데 우리나라도 지금은 가난하고 매우 불우하지만 반드시 이런 곳에서 성인이 출현할 것이며 오늘날 세계가 냉전의 와중에서 이념분쟁으로 영일이 없지만 이것은 새로운 성인의 출현을 위한 진통기”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자리를 뜨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신문과 책을 들고 오셨는데 그 신문을 보니 내가 생전 처음 보는 New York Times와 요미우리신문(讀賣新問) 그리고 독일의 Spiegel지와 일본의 문예춘추(文藝春秋) 등의 잡지를 가지고 오셔서 술술 읽어 나갔다.

내가 알기로는 중(스님)이 뭘 안다고 하면서 은근히 폄하하였는데 그를 보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의 예를 들면서 동방의 촛불이 바로 한국이라고 지적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극동의 한 구석지인 우리 한국이지만 이곳에서 바로 다음 세상을 인도할 성인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바로 학생이 될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제시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과 소련이 지금은 냉전을 벌리고 있지만 20세기 말에는 소련과 그 위성국들이 와해될 것이고, 전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여 제2경제대국이 되었지만 1980년대를 정점으로 하여 몰락하게 될 것이며 죽(竹)의 장막 중국은 나폴레옹이 이미 말했듯이 (‘중국을 잠들게 하라, 만일 중국이 깨어난다면 세상이 골치 아플 것이다’) 머지않아 중국이 급부상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과 서로 견제할 것이나 그 힘은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50여 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多民族)국가임으로 때가되면 각자 분리독립될 가능성이 농륵하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지적했다.

국운융성과 기업가 정신

국운이 융성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고 천지조화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으로 불가항력적이라고 하면서 한 나라가 부흥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업의 성장발전이고 기업의 성장발전은 불굴의 특지와 개척정신, 창의와 도전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정신(企業家精神)이라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씀을 하고 이미 서구에서는 과거와 같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으며 일본도 그 몰락의 근본적 원인이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는 점심도 굶고 장장 4시간 반 동안이나 화장실도 못가고 홀린 듯이 듣고 있었다. 5시가 거의 다되어 말씀은 끝이 나고 나는 수덕사에서 하산하여 귀가하였다. 그 후 나는 1961년까지 스님과 서신연락이 되었으나 스님께서 수덕사를 떠나 시주행각을 가신 후로 연락이 두절 되었는데 스님의 속명(俗名)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법명(法名)은 범구(梵丘)라 하였고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유진오 박사와 동국대학교 전 총장이었던 백승욱 박사와 경기중학교 동창으로 장안에서 상당한 부(富)를 가진 가문의 자제였음을 엿 볼 수 있었다.

스님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에 지원했으나 낙방하여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유학하라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재수할 목적으로 금강산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입산(入山)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요즈음도 50여 년 전 수덕사에서 만난 범구스님의 말씀이 새록새록 기억되며 어찌 그렇게 해박하시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깊으신지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며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스님의 말씀이 조금도 틀림없이 역사의 괴적을 돌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 할 따름이다. 특히 범구스님의 국운융성론과 기업가정신에 대한 말씀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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