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대원각 주인서 보살로

명기 진향(眞香) 이야기

무소유 법정 만나 무소유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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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張洪烈 (장홍렬 한국기업평가원이사회회장)

나는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콜롬보 플랜 덕분에 1972년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인도에서 연수생으로 생활한 일이 있다.

고생한 이야기는 말과 글로 다할 수 없지만, 당시로서는 제3세계라고 일컫던 중립국 인도라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 좋은 기회였다. 나름대로 보람있고 뜻있는 기간을 보냈다.

인도의 길상사… 승원이 있다.

수도 뉴델리에는 우리 쪽에서 총영사관, 북쪽에서는 대사관이 나와 있던 때다. 교민이라야 반공포로 출신 5명과 총영사관 직원 3명, 그리고 공무출장 오는 본국 손님 정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불교 나라에 왔으니 불교와 관련이 있는 성지나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마음을 굳히고 연수 담당 교수에게 자문을 구해 가본 곳이 몇 군데 있다.

그 당시는 단순 관광 정도로 보고 왔는데 이제와서 38년 전 타임머신을 돌려보는 것은 法頂스님 입적(入寂)후 일반인들에게 회자(膾炙: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 되는 길상사(吉祥寺) 때문이다.

인도에도 길상사와 비슷한 사연을 간직한 승원(僧院)이 있다.

법정 스님이 89년 11월부터 3개월간 인도 불교 성지와 유적지를 순례하며 보고 느낀 바를 90년 3월부터 11월까지 조선일보에 9개월간 연재하고, 1991년 6월에 법정스님 인도 기행 단행본을 출간했다. 나로서는 정해진 일정 때문에 신비에 쌓인 인도 대륙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올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하여 20년 전 인도기행을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즈음은 좋은 세상이 되어 인도의 성지순례가 편리하게 짜여져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건강이 허락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때는 3등 완행열차를 타고 문짝도 없는 버스로 비포장도로를 타면서 여행을 했다. 인도 북부 비하르주의 수도(首都)인 파트나에서 서북쪽으로 약50km 정도 가면 첫 비구니가 탄생한 바이샬리라는 곳이 있다.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

이곳에는 법정스님의 인도 기행문에 나오는 암라팔리 동산의 암라팔리 여성 신자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암라팔리와 대원각 김영한의 사연은 닮은데가 많다.

두 여인은 용모도 뛰어나고 재능 있는 기생으로 돈을 모아 불교에 귀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암라팔리가 암라 나무 아래에 버려진 것을 동산지기가 주워다 길렀다. 자라면서 그 용모가 뛰어나 나라 안팎에서 청혼이 쇄도한다.

관계자들은 의논 끝에 그 미모로 인해 평온한 가정을 이루기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거리의 공인된 기생(遊女)으로 만든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그 고장의 번영을 위해 특히 상업 도시에서 미녀를 기생으로 만드는 사례가 있었다. 기생이 된 여자는 재산과 지위도 주어져 호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 한 후 부처님과 스님들을 자기 집으로 공양 초대를 한다. 이날의 기쁜 마음이 우러나 그녀는 자신의 소유인 망고 동산을 불교 교단에 희사하여 승원(僧院)으로 쓰도록 한다. 이곳이 이 고장에서 불교의 승원으로 유명한 암라팔리 동산이다. 이 날의 공양에서 부처님이 다음과 같은 설법을 했다.

암라팔리여!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쁨이 있다.

하나는 받는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주는 기쁨이오.

그대는 이제 받는 기쁨에서 주는 기쁨의 뜻을 알게 되었소.

기생 진향이 대원각 주인서 보살로

김영한(1916-1999)은 친척에 속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16세)에 기생이 된다. 그녀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거기다 문필에도 뛰어나 장안에 명기로 소문이 났다. 암울한 일제시대 한국 전통 음악과 가무의 전습을 위해 세운 조선권번(기생학교)에서 금하(琴下) 하규일(河奎一)선생의 문하생이 된다.

하선생은 결코 수다스럽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지 아니하는 그의 인품을 높이 사 진수(眞水)는 무향(無香)이란 뜻에서 진향(眞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를 받아 그 이름으로 기생 활동을 계속 한다. 기생 활동 중 그의 재능이 재력가인 신윤국의 눈에 뛰어 그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간다.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투옥되는 일이 생겨 그를 만나기 위해 일시 귀국하였다가 운명의 장난인가, 운명적으로 당시 천재시인 백석(白石)을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순탄치 않게 끝난다. 김영한은 돈을 벌어 대원각 주인이 되면서 보살의 길로 들어선다. 1989년 김영한이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고 시주한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법정스님으로부터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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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 길상화 공덕비>

불만 없애고 욕망 절제가 행복

그리고 많은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 곳에서 밝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펴지는 것입니다. 간결한 말 속에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울려 나오는 음성에서는 곡절 많은 그녀 인생의 슬픔을 넘어선 위대한 비원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김영한은 1999년 11월 14일 타계하기 전까지 크고 작은 기부 행위를 많이 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도 내놓았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매년 주관하는 백석 문학상도 김영한의 기부금 2억원이 종자돈이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항상 내놓으면서 늘 겸손함을 보여주었다.

“없는 것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는데,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니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

길상사에 가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글월도 본다.

행복(幸福)이란 구하거나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불만을 없애고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인도기행 암라팔리 동산에서 얻은 영감이 대연각의 길상사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받는 기쁨은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또 그것을 지키려는 괴로움으로 변하기 쉽다. 그러나 주는 기쁨은 그 자체가 욕망의 소멸이며 나누어가짐에서 오는 충만이 따른다. 퍼낼수록 맑게 고이는 것이 자비의 샘물이니까 법정 스님 인도기행의 한 대목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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