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한자도 우리 민족이 만든 글(8)

‘夷(이)’字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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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陳泰夏(진태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한자(漢字)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夷’字를 보면, 곧 ‘오랑캐 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자전(字典)에는 ‘夷’자에 대하여 맨 앞에 ‘오랑캐 이’라고 풀이하여 놓았기 때문에 한자를 배운 사람은 누구나 ‘오랑캐 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발간한 漢字 자전에는 오히려 ‘夷’자에 대하여 “東方之人也. 夷俗仁壽, 有君子不死之國.”(동방지인야. 이속인수, 유군자불사지국.) 곧 동쪽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습속이 어질어 장수하며,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이다 라고 풀이하여 놓았다.

같은 한자가 왜 우리 나라에 와서는 그 뜻이 이처럼 크게 달라졌을까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연유를 찾아보면 조선조(朝鮮祖) 제4대 세종대왕(世宗大王)때 간행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비롯된다. 당시 두만강 건너 여진족(女眞族)이 살던 지명에 ‘兀良哈’(올량하)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주 우리의 변방을 침략하기 때문에 그들을 얕잡아 일컫는 이름으로 ‘올량하’가 변음되어 ‘오랑캐’라고 부른데서 연유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夷’자와 ‘오랑캐’는 전연 관계가 없는 말이다. 더구나 ‘北狄(북적)’, ‘西戎(서융)’, ‘南蠻(남만)’의 ‘狄’을 ‘오랑캐 적’, ‘戎’을 ‘오랑캐 융’, ‘蠻’을 ‘오랑캐 만’이라고 자전에다 모두 ‘오랑캐’라고 풀이한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夷’자 자형이 은나라 때 갑골문(甲骨文)에는 의 형태로서 활의 모양을 상형한 것인데, 주나라 때 종정문(鐘鼎文)에는 와 같이 활 위에 화살을 올려 놓아 더욱 구체적으로 활의 모양을 나타내었다.

뒤에 진(秦)나라 때 소전체(小篆)에 와서 자형이 와 같이 변형되고, 다시 해서체에서 ‘夷’와 같이 쓰이게 되어 ‘大’자와 ‘弓’자가 합쳐진 글자로 잘못 알게 된 것이다. 자형 변천을 살펴보면 ‘大’자가 아니라, 본래 화살의 모양이 ‘大’자처럼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자전에도 ‘夷’자를 ‘大’ 부수자에 분류하여 놓았으나, 본래의 자형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여하간 ‘夷’자는 ‘오랑캐’라는 뜻의 글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동쪽에 활 잘 쏘는 민족을 가리키기 위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뒤에 와서 ‘夷族(이족)’이 九夷(구이)로 분류되지만, 본래는 동쪽에 활 잘 쏘는 부족만을 지칭하여 ‘東夷(동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동이(東夷)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곧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동이(東夷)’를 동쪽 오랑캐라고 일컫는 것은 곧 우리의 조상을 야만족이었다고 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무식을 막론하고 스스로 오랑캐라고 일컫는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는 마치 손자를 무식꾼으로 잘못 두면 제 할아버지를 욕하면서도 그것이 욕인 줄조차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궁수(弓手)들이 올림픽에 출전하여 남자선수들은 물론 여자선수들까지도 매회 금메달을 휩쓸어 오는 것은 그 개인들의 뼈를 깎는 훈련에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른 시대부터 활 잘 쏘는 동이족(東夷族)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의 주몽(朱蒙)이 ‘善射之意’(선사지의) 곧 활 잘 쏜다는 뜻이었을 만큼 활을 잘 쏘았으며, 조선조 태조 이성계 역시 명궁이었음은 우리 민족을 이른 시대부터 ‘동이(東夷)’라고 일컬은 연원을 알 수 있다.

몇 해전 한자 연구 단체 대표들이 모여 한자의 대표훈(代表訓)을 정할 때 필자가 강력히 주장하여 ‘夷’자의 훈(訓)을 ‘오랑캐’에서 ‘큰활’로 바꿔 놓았으니, 앞으로는 모든 자전에서 ‘夷’자를 ‘큰활 이’자로 게재하여 줄 것을 제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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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의 주몽(朱蒙)이 ‘ 善射之意’ (선사지의) 곧 활 잘 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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