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세상은 矛盾(모순) 덩어리

해법은 학습방법 개선

토의식 강좌 새 교육운동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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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선호(자유지성300인회 고문)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한문으로 모순이란 글자를 쓰면 矛盾, 즉 창과 방패라고 쓰게 된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창은 어떤 방패라고 뚜를 수 있다고 하고 그리고 방패로 말하면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고 말 한다면 모순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를 앞에 두고 엄마 아빠가 너는 엄마와 아빠 중에서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는 매우 당황한다. 어느 편이나 편을 들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얼마 안가서 엄마 아빠를 서로 만족시킬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게 된다. 엄마 아빠가 같이 있을 때는 답을 피하고 혼자만 있을 때만 답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에서의 남남갈등

오늘 당장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은 보수파와 친북좌파간의 갈등이다. 남남갈등 중에서 학교교육에 관한 갈등은 그해결책을 찾기가 매운 어렵다. 사사건건 서로 싸우지 않는 일이 없는 날이 없다. 특히 이번 6월에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에서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및 무상 교육 등 모두가 알고 보면 교육이념갈등에 귀착하는 문제들이다.

좌파들이 늘 하는 말은 “요새 세상에 이념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없다. 어느 나라를 모방하면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중고교 무상급식 실현, 교육비 제로 무상교육 실현, 학생들의 인권 보장 (학생인권조례), 대학평준화등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 그들은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체제를 송두리체 갈아 없애겠다는 의도를 감지 할 수 있다. 전교조와 관련된 기록에서 자기들의 목표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고 써놓고는 그렇게 말 한 적 없다고 자기네 정체를 얼버무려 버리기도 하지만 실재로는 무산계급독재를 지향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 모든 것이 무상이어야 하느냐 그리고 왜 공부 잘하는 엘리트만 모이는 서울대학이나 특목고 등을 폐쇄해야 하는 것인지 설명이 모호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으례 잘사는 동내 잘사는 집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들의 마음을 추측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무상급식문제에 있어서 못사는 집안아이들이 점심도시락도 못 싸가지고 가서 배를 쫄쫄 앓고 있으니 학교장이 책임지고 점심을 해 먹여라는 김대중 시대에 만든 법률을 3년 연기기한이 지났으니 올해는 빨리 법집행하라고 다그치는데 왜 그러느냐 이 문제도 알고 보면 그들이 신봉하는 정치교육이념 때문이다. 못사는 집안의 아이들도 무상급식의 무상이라는 명칭이 붙는 것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학교전체 학생들에게 돈 있는 집안 아이들 까지 포함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저심을 주면 없는 집의 아이들의 “정체“를 모르니까 없는 집 아이들의 부끄럼이나 계급적 위화감을 감출 수 있으니까 부디 급식을 전교학생들을 상대로 집행하라는 것이다.

이념갈등의 해결책

못사는 집안의 아이들이 무상급식에 대해 비굴감을 느끼는 까닭에 이들의 정신위생에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좋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감정에 동정한다면 잘사는 집안의 아이들에 대한 감정은 어떠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있는 집의 아이들이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이것이야 말로 큰 문제이다. 있는 집의 부모들이 없는 집 아이들에 반감을 가져서 자식들에게 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 때야 말로 큰 전쟁으로 비화할 승산이 크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학부모들이 거기까지는 계급갈등을 쟁점화하지는 않고는 있지만 미국에서는 한때 흑백문제가 노골화되어 백인만 드나드는 식당이나 기차 칸들이 있었다. 테네시 주 내시빌시의 백화점 런치카운타에서는 흑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습관이 있어서 흑백문제 해결의 커다란 장해가된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우파성인들이 아직은 온순해서 그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없을 것 같다. 친북좌파로서는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무상급식에 대해 부끄럼을 탄다는 이야기는 좋은 징조이기도 하고 나쁜 징조이기도 하다. 좋은 징조인 경우는 아이들이 그런 수치심을 갖는 것이 자기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장차 잘살기를 원하게 되는 경우이고 그렇지 않는 경우는 좌파들의 의식교육으로 사회혁명가로 변신하는 경우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경우를 고려하여 긍정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연구해 볼만 하다. 그것은 교육과정에 계급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Social studies”과목을 개설하여 새교육운동때 우리나라가 따라가지 못했던 토의식강좌를 신설하는 방법이다.

사회연구과목(Social Studies) 신설

이런 과목이 신설되면 이로운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아니, 생길 수 있게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유일한 평화적 교육프로그램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간단하게 토론식 학습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우리 교육문화에는 생소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참조할 문제들이 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미군 군정청은 우리나라와 일본정부에 수신(修身)을 패지하고 사화연구과목을 가르칠 것을 권유하였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미국본토에서는 공교육에서 사회연구가 유행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것이 미국의 새교육운동의 선봉역할 을 한 것이었다. 보통, 대학에서는 이것은 사회학으로 알려진 과목이지만 학자가 될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학”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미주주의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실용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이해하기위해 사회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단 그 학습방법은 전통적인 강의 방식이 아닌 토의식 (Discussion)으로 변하였다.)

전통적 교육방식에 젖어 있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과밀교실을 면치 못하는 신세와 이런 학습방법에 대한 성적평가방법이 애매하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의 경우와 같이 이것은 곧 폐기 되었다. 주입식, 교과서 중심, 교사중심의 암기식교육을 개혁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방법이 정식으로 폐기되고 나서부터는 오늘날 까지 약 60년 동안 새교육운동과 듀이교수의 경험주의 교육철학은 사향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60년 전부터 새교육운동에 가담하였었더라면 대학입학시험이나 인성교육발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었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학습평가가 필답시험형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사의 훈련된 주관적 관찰평가)변혁되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선진 외국의 경우와 같은 교사의 역할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교사의 역할과 책임완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절효의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지금 이런 변화를 일으켜서 성공할 확률이 약하지만은 않다. 그동안 너무나 교사들이 구습에 노예가 되었던 것과 안이한 생활로 허송생활을 하였던 후회와 미래사회에서의 교사의 성의와 책임감이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여 새로운 임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토의식 학습의 우월성은 이미 새마을운동, 군인사평가절차, 대기업운영에서의 캔미팅, 대학생학생회에서의 간부회의 운영방식 등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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