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신경제, 실리콘밸리,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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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權和燮 편집위원 (권화섭 세계일보 객원편집위원)

신경제와 자유시장은 만능인가?

신경제 예찬론이 한창일 때 미국인들은 이제 경기주기가 사라졌고, 나스닥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기술혁신은 계속 이어지고, 정보기술에 입각한 신경제는 구경제와 전혀 다른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은 신경제가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경기주기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

한편 미국의 신경제 중추인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유시장이 중대한 시련에 부닥쳐 있다. 3년 전부터 시행해온 에너지산업 규제해제가 심각한 전력난을 불러와 지역별로 순차적인 단전(斷電)조치를 취해야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의 컴퓨터 업체들은 만약의 단전조치에 대비해 비상용 발전기를 설치하느라고 법석이며 이 때문에 40만달러 상당의 피터슨 2 디젤발전기의 주문이 5월 분까지 밀려있다고 한다.

왜 캘리포니아에 전력난인가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은 규제해제가 빌미가 되긴 했지만 결코 그것이 주된 원인이 아니다. 워싱턴의 정치인과 언론이 경제문제를 “클린턴 호황”과 “부시 불황”으로 정치화하기 좋아하듯이 캘리포니아의 전력난 역시 “규제복원론자”와 “시장옹호론자”로 갈려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은 3가지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장기적인 전력수요 예측의 중대한 오판, 환경운동단체들의 핵발전소 반대와 주민들의 님비현상에 따른 발전소 건설지체, 그리고 엉거주춤한 불완전한 규제해제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에서 전력규제 해제논의가 한창이던 때에 전력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는 캘리포니아주 경제가 침체상태에 있었고 2천년대에 들어가면 전력공급이 과잉상태를 빚을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신경제가 열기를 뿜으면서 전력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때 불행하게도 캘리포니아주는 어설픈 전력시장 규제해제에 착수했다. 소비자 전기요금은 계속 규제하면서 발전소와 전기회사 간의 도매거래가격은 완전히 자유화했다. 그리고 시장변동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뜻에서(도매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발전소와 전기회사 간의 장기계약을 금지했다.

결과적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소비자와 기업주들은 전기료 측면에서 특별히 절전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전력공급 부족사태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계속 늘렸고 전기회사들은 공급확보를 위해 가격경쟁을 벌여 도매전기가격이 평상시보다 40?50배나 뛰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의 2대 전기회사인 퍼시틱 가스& 일렉트릭과 사던 캘리포니아 에디슨은 최근 2년 사이에 1백20억달러의 누적결손을 내고 신용등급이 AAA에서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파산상태에 몰려 있다.

환경규제 주민 반대의 교훈

캘리포니아주는 환경규제가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핵발전소든 재래식 발전소든 가리지 않고 인근에 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한사코 반대한다. 정치인들은 오늘의 전력난이 바로 이러한 환경규제와 주민들의 님비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최근 10년간 캘리포니아주에서 단 한 건의 대형 발전소도 세워지지 못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다. 그러나 한층 직접적인 원인은 소비자가격 규제 때문에 전기요금이 낮았기 때문에 투자 메리트가 적었고 규제해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망자세를 취하며 발전업체들이 설비투자를 보류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4월 이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현재 발전량의 거의 13%에 이르는 6천3백MW의 신규발전소 건설승인이 떨어졌고 최소한 7천MW의 추가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앞으로 상당기간 캘리포니아주의 소비자와 기업인들은 전기가 끊어질 수도 있는 불안 속에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퍼시픽 가스& 일렉트릭과 사던 캘리포니아 에디슨의 파산을 막는 일이다.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주 지사는 주정부가 발전업체들로부터 현재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해 이들 두 회사에 배분하는 계획을 승인해주도록 의회에 요청했다. 말하자면 주정부 운영의 전기배분 형태로 전력시장을 다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이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며 동시에 한국의 경제관료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신경제 붐이 진행될 때 미국인들 이상으로 신경제 환희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는 캘리포니아주 정부 당국자들 이상으로 규제해제와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어느 한가지 민간자율과 시장논리로 되는 것이 없는 이상한 경제체제 하에 살고 있다.

미국에서는 25개 주가 에너지 규제해제를 시행중이거나 추진하고 있고 뉴욕과 펜실베이니아는 자유경쟁의 전력시장을 성공적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그 시장을 운영하는 관료의 실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한국경제 상황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현정부와 관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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