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썩지 않고 ‘국방’ 하더라

철벽 방어전선 가보니
‘귀신 잡는 해병’ 늠름
군에서 썩지 않고 ‘국방’ 하더라

글 / 朴美靜 편집위원 (박미정 전 조선일보기자)

임진강이 보이는 해병대 최전방 해안초소를 지난 연말 다녀왔습니다. 그날 서울은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만 서울에서 버스로 불과 두 시간 남짓 달려간 그곳은 칼바람 부는 강가여선지 매서운 겨울 날씨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부대라는 곳, 그것도 북녘 땅 개성이 한 눈에 들어오는 최전방 해안초소는 처음 가봤습니다. 시력 나쁜 제 눈으로도 강 건너 북한 땅이 마치 아파트 건너 동을 보듯 시야에 들어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달려온 곳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해병대 청룡부대 해안초소! 그곳에는 그야말로 꽃잎같이 앳돼 보이는 청년 병사들이 조국을 위해 그들의 피같이 귀한 시간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라면 ‘귀신 잡는 해병’이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등등 대한민국 사나이들의 자존심이 서려있는 곳이라는 조금은 터프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우리의 청청한 청년 병사들은 한결같이 ‘꽃미남’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인물 면접’을 보고 뽑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들은 아름답고 깨끗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해말간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며칠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분이 ‘군대 가서 썩는다’는 발언을 했었지요. 그 ‘망언’이 떠오르면서 그 청년들에게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밝고 깨끗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더군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떻게 해서든 젊은 세대를 위해 무엇이라도 잘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곤 합니다. 그러니 이 추운 날씨에 북한이 육안으로 보이는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우리의 ‘아들들’을 보니 눈시울이 더워질 수밖에요.

국군최고통수권자가 한 ‘망언’

지난해 12월 21일인가요, 대통령은 그날 아마도 그의 수많은 실언 중에 최고이자 최악의 ‘망언’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군대 가서 썩는다’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었는지요.
그건 정말이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발언입니다. 대통령은 그 후 ‘제대로 된’ 사과말씀을 국민을 향해선 끝내 하시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대통령을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단지 칼바람 부는 최전방에서 ‘불철주야’로 조국을 위해 ‘성스런 국방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 병사들을 보니 그렇게 미안하고 안쓰러워져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달래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준수한 용모의 젊은 병사들은 ‘애로사항’이 없냐는 물음에 아주 씩씩한 목소리로 “애로사항 같이 그런 불필요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대답해 우리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병사들의 그런 늠름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우리가 간 해병대 청룡부대 해안초소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어선지 강폭이 바다처럼 넓었습니다. 강 건너에는 우리처럼 그쪽의 해안초소가 보였는데 병사들 얘기로는 그쪽 병사들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칼바람 부는 칠흑 같은 겨울밤에도 보초를 서야하는 우리의 병사들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숙연해졌습니다.
제게 임진강은 꽤나 낭만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강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읽었던 ‘임진강의 민들레’라는 강신재 님의 소설이 줄거리 조차 거의 잊어버린 지금에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어 ‘임진강’하면 제겐 강이 주는 ‘최고의 이미지’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더욱이 올 봄에 두 번이나 봤던 일본영화 ‘박치기’에서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의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접하고 나선 더욱더 임진강은 ‘멋진 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임진강’이라는 노래는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한 박세영의 작품이지요.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라는 가사가 슬픈 멜로디와 어우러져 처음 들었을 땐 가슴이 뭉클해졌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60년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무렵 소위 ‘운동권 노래’로 애창되어, 일본 정부 당국에선 ‘금지곡’으로 명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생들이 열심히 불러대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박치기’영화에서는 일본 청년이 한국 처녀를 사모해 그 노래를 한국말로 익힌 뒤 어눌한 발음으로 그녀를 향해 이 ‘임진강’을 부르면서 청혼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청년의 애절한 노래에 처녀의 마음도 움직여 두 청춘 남녀는 해피 엔드를 맞지요.

젊은 병사들에게 드리는 ‘눈물의 사과’

아무튼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외롭게 세워진 콘크리트 초소의 망대에 서 있는 병사를 보니 다시 한 번 미안한 마음이 깊이 들었습니다. 공연히 저라도 그 병사들에게 ‘눈물의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최전방 곳곳에서는 우리의 ‘아름다운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그들의 고귀한 시간을 바쳐 성스런 국방의무를 다 하고 있을 겁니다.
병사들이여! 그대들이 지금 그렇게 조국을 위해 바치는 시간들은 결코 헛되이 보낸 시간이 아닙니다. 그대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이렇게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난생 처음 최전방 군부대를 다녀오고 보니 그동안 ‘박약했던 애국심’이 절로 튼튼해진 것 같습니다.
2007년은 대선의 해입니다. 대통령의 ‘군대 발언’ 이후 청와대와 군관계자들은 ‘획기적인 군 복무안’을 마련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말하고 싶습니다. 제발 얄팍한 수를 써가면서 ‘집권연장’에 연연해하지 말고, 국민에게 상처 주는 ‘꼼수’는 부리지 마시라고요. 우리의 아깝디 아까운 청년들이 그들의 고귀한 시간을 조국을 위해 바치는 성스러운 국방의무에 대해 더 이상 비하하지 마시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모병제를 하던 징병제를 하던 제발 청년들의 ‘순수함’을 훼손하지 말 것을 재차 부탁합니다. 무엇보다 ‘조국’을 위해 그들의 젊음을 바치는 것을 빈정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국토방위의 엄숙한 임무를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시키지 마시기를 신신당부합니다.
임진강이 보이는 최전방 해안초소에서 근무하는 앳된 청년들을 만나고 오니까 진정한 애국의 길이 어떤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은 더 이상 ‘군에 가서 썩는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작전권 환수를 하겠다는 것을 무슨 무공을 세운 듯 자랑하는 오류는 범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헌이다 뭐다 공연히 애쓰시지도 마시고 제발 남은 임기 1년 동안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지도자로 남으시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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