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녀 자취 감추고 私刑(사형)만 남아

미국 법정, ‘윤창중’ 무죄
음모꾼 트랩에 걸린 정황
고발녀 자취 감추고 私刑(사형)만 남아

글/ 宋貞淑 편집위원 (송정숙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윤창중이라는 사나이가 있다.
우리가 달겨들어 발기발기 물고 뜯어서 시궁창에 처넣어 버린 남자다.
나는 그 남자를 안다.
그는 나를 만나면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하고 말하는 사이였고 나는 그걸 받아서『부디 자중하고 소중한 분 잘 모시세요.』 라고 대답했던 사이였다.

미국 법정에서의 무죄 성희롱 혐의

그런 어느 날 그는 참혹한 불운을 만났다. 막 출범한 정권의 최고 높은 사람을 모시고 미국 나들이를 갔다가 성희롱 죄로 그 자리서 고발을 당하고 능지처참에 가까운 사형(私刑)을 당하고 뼈도 못 추린 시체처럼 되어 썩은 물이 넘치는 시궁창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덧없이 흘러버렸는데 최근에 이르러 그가 미국의 법정에서 혐의 없음을 선고 받은 모양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가.
그는 그 혐의를 일으킨 땅인 미국에서 고발을 받았으므로 판결도 그곳에서 받은 것이다. 그것이 미국 법정에서 진행된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서 받은 판결이라면 『봐주기 결과』 라고 또 한바탕 좌파 자객들이 선도하는 여론 재판으로 난리굿을 당했을 것이다.
하기는 나 또한 그런 의심에 가담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곳인가.
죄가 성립될 수 있는 범인을, 한낱 조무래기 외국인을 봐주었겠는가.
우리 사회는 지금 의심암귀의 집단 히스테리 중증에 걸려 있으므로 SNS가 신이야 넋이 흘려보내는 악의의 여론 홍수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비극의 땅이다. 또 한 번 여지없이 부관참시의 사육제에 휩쓸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직도 시궁창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사나이에게 냉혹하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에게 그 소식은 아주 조용히 별것이 아니라는 듯이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소식은 이상한 루머와 함께 흘러 들어왔다. 그 일—윤창중의 성희롱 혐의 고발 사건—은 그의 뒷덜미를 잡으려고 벼르던 한국안의 적대 세력이, 사전에 치밀하게 꾸민 음모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런 종류의 음모 대가인 야당 정치인이, 그 정치인의 미국 주재의 하수인을 시켜 미리 사람을 심어 함정을 파놓았다가 거기 걸려들자 전광석화처럼 즉각 경찰에 고발하고 그것이 국내에서 벌집처럼 독화살이 되어 쏟아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이 놀아난 것은 여권, 특히 윤창중이라는 사람이 속해 있던 사회의 동료며 주변이 가세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어가며 알아서 소동을 확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3년 만에 자신의 블로그에 칼럼 재개하고 ‘ 억울하다’ 는 심경을 토로했다. <사진=윤창중 블로그 캡쳐>

음모꾼 트랩에 걸린 정황으로 무죄

그렇게 음모꾼의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고, 윤 당사자는 시궁창에 던져져 영원히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는데 정작 혐의의 발생지인 미국 법정에서는 「트랩에 걸린 정황이 있으므로 무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얼마나 진상에 가까운 일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잘 알 수 없다.
더구나 이 소문의 핵심에 문제의 음모꾼으로 등장하는 우두머리 정치꾼은 매우 악독하다는 지목을 받는 야권 정치인이다. 그는 평소에도 아주 협박력이 무서운 인물이다. 툭하면
『내게 함부로 덤비지 마라. 까불면 내가 법을 새로 만들어서라도 너희를 옭아 넣어버릴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대단히 기고만장한 사람이라 언론조차 슬슬 눈치를 보는 좌파 정치인이다. 아, 무서운 사람!
그러니 이런 소문의 진상을 함부로 인용하거나 따져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소문을 통해 소급해서 사건 당시에 들었던 의문을 몇 가지 되짚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당사자는 이 행사를 위해 임시로 채용된 젊은 여성이었다. 그런 그가 사건을 당하고서 한 행동은 의외로 민첩하고 과감하고 즉결력이 두드러졌었다. 임시 상사인 윤씨에게 항의를 하고 경고를 하고 참다못해 수사기관에 고발을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행동에 옮겨 곧바로 경찰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한 이후에는 본인은 자취를 감춰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이 그렇게 전광석화처럼 민첩하고 결단적이었음을 미뤄 보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문책을 엄중히 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이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마치 옆에서 누군가가
『나머지 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너는 피해 있어라. 서툴게 나섰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하고 코치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는 주변 세력이 그 불똥을 재빨리 운반하여 본국으로 던져 버려서 온통 벌집을 터뜨리듯이 온 천하를 뒤집어 헐어놓은 것이다.
그 결과 정작 미국 현지에서는 조용하고 지루하게 시간을 끌어온 셈이다.
그 끝에 혐의 없음이라는 마무리가 지어진 모양이다.
나는 이 일이 부글거리며 끓는 가마솥처럼 난리굿을 벌일 당시 한 여인이 분노에 떨며 외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보수우익을 지지하는 평범한 부인이었다.
『아, 윤창중이 그자를 때려죽이고 싶어.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그 중요한 일을 맡은 인간이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이게 뭐야.』하고 외쳐댔다. 그 처연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분노들이 윤창중이라는 「죄인」의, 죄질의 심각함을 말해준 셈이다.
그렇기로서니 그를 이렇게 시체처럼 처박아놓고 외면할 만한 죄였을까. 결국 혐의의 정체도 못 밝힌 죄에 걸려서, 딸린 가족이며 이웃까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며 깜깜한 인생에 처박힌 그를 외면해 버리고 만 일이 할 짓이었을 것인가.

집단 히스테리증후군 음모꾼의 죄질 소름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는 그와 걸맞는 귀족출신의 여성과 결혼을 했었다. 그 여인은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저의 부인을 흠모한 남성이 있었다. 그도 물론 귀족 남성이었는데 그렇게 중요한 거물급은 아니었다. 그런 남자가 시저의 부인을 흠모한 나머지 시저의 저택 주변을 맴돌다가 어느 날 밤 그 담을 넘는다. 그 때 이미 로마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것이 시저의 지위였으므로 그 저택의 담을 넘은 이 얼빠진 남자는 집안을 지키는 위병에게 잡혀서 시저 앞에 끌려나오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시저는 그에게 꽤 관대한 처분을 내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상하다.
시저는 곧바로 그 아내와 이혼을 선언하고 실행한다.
이렇게 공언하면서
『시저의 아내 되는 여자라면 어떤 이유로든 이런 사단에 말려 들어서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시저의 아내 될 자격을 상실했다.』
매우 매정하고 비정한 처사였다.
연전인 그 당시에 처했던 윤창중이라는 사람의 입지도 그런 엄정성을 요구했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게 된다.
만약에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그 솜씨의 유능함에 소름 돋는 감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점점 더 기교가 능해져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덫들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하나 벌어지면 무작정 물고 뜯어서 널부러진 시체를 만들고 마는 오늘의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우리 세상이 점점 더 소름 돋게 악행이 발전하는 음모꾼을 더욱 기승스럽게 만드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우리가 빠져 있는 집단 증후군이 너무 심각하여 음모꾼의 죄질과 상승 작용을 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걱정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윤창중을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답답하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5호 (2016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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