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원 손실안고 250만대 리콜

신상의 소비자 정복전략
혁신은 찔끔, 가격은 바가지
2.5조원 손실안고 250만대 리콜

글/전성자 (한국소비자교육원장)

신상이란 이름의 소비자 피해

소비자는 많은 경우 속고 산다. 몰라서 속고, 꼼꼼하지 않아 속는다. 설혹 알더라도 힘이 부쳐 하는 수 없이 순복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술수준이 높은 상품에 대해서는 더 압도된다. 혁신이란 허명을 둘러쓰고 나타난 인기 신상 앞에선 소비자는 모든 거래 조건에 백기 투항하고 만다.
한번 돌아보자. △효능 과장광고를 앞세운 가습기 세척제 사건 앞에서도, △허위 특효를 앞세운 백수오 사건의 결론이 유야무야 유예되고 말았을 때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때도 한국 소비자는 허약한 인간 모임일 뿐이었다. 배상도 책임도 추궁해 대지 못했다. 현재도 진화하고 있는 지능형 통신 횡포 앞에서도 소비자의 외침은 그저 뭉크의 그림처럼 핏대 세운 절규의 그림만 있을 뿐, 소리는 캔버스에 스며들어 버렸다. 법이 소비자 편이 아니고, 관행이 기업에 유리하게 흘러왔고, 지도자가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에 그리 된 거다.
삼성 스마트폰 신상, “갤럭시노트 7”도 소비자 피해 사례다. 배터리가 폭발한단다. 백만 원짜리 폭탄을 판매한 것이냐는 비아냥을 들었을 텐데도. 백만 대 중 24대 정도 비율이라는 해명이다. 그보다 훨씬 낮은 확률이라도 당하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소비자들이 겁먹고 있는 데도 말이다. 폭발을 소비자는 치명적 위험으로 본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중대 결함”이라 본다. 삼성이 통 큰 결단으로 세계에 출하된 모든 상품 250만대 리콜 선언을 했다. 2.5조원 손실(?)을 무릅쓰고… 교환을 요구하는 이에겐 신제품을, 환불을 원하는 이에겐 현금을, 다른 상품으로 교체를 원하는 분에겐 갈아타도록 해 준다고 공표했다. 회장님 경영철학에서 나온 결단이란다. 소비자 감동 마케팅(?)의 시도인가? 이 정도면 소비자가 감동 안 먹겠나!?!?는 계산…
다른 브랜드라면 이런 일 할 수 있겠느냐는 듯 자신감을 보인다, 글쎄다.

신상품의 함정

소비자는 속는데 길들여져 있다. 기업이 믿음직스러워 보여, 믿다가 속고, 기업이 잘 되어야 국민이 잘 될 거라는 미신 때문에도 속는다. 광고에도 속고, 사회 분위기 때문에도 속는다.
기업은 잘 속여야 산(生)다고 믿는다.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 가장 큰 전략이다. 알릴 것만 알리고 피할 것은 피한다. 소비자 함정은 많다.
신상의 수명주기가 짧다. 신상을 자주 바꿔야해 돈을 더 자주 많이 써야한다. 아무리 신상이라도 또 다른 개선 상품이나 혁신 상품이 나오면 소비자는 더 신상에 손을 대야 한다. 그 상품의 설계수명만큼 써 보지 못한다. 쓸 만한 “구닥다리 상품”을 쌓아 놓고도 또 더 신상으로 바꿔야한다. 현대 소비자는 쓰레기 보관자가 되고 만다.
필요하지 않는 기능에도 돈을 지불하게 한다. 신상은 다기능 상품으로 설계되어 나온다. 원가가 오르고 따라서 가격이 불필요하게 비싸진다. 특히 전자, 전기, 통신 기기는 다목적복합기로 설계되고 있어 소비자는 자기에게 소용이 닿지 않은 기능도 함께 사야한다. 필요치 않은 기능에도 가격을 지불하여야 한다. 일반 소비자는 스마트폰 내장 기능의 30%도 활용하지 못한다. 그래도 메이커는 IoT에 연결하여 기능을 더욱 넓혀 나간다.
소비자의 선택을 후회하게 한다. 세계가 기술 평준화 되어 상품 카피(복사) 짝퉁 미투 제품(모방품)이 따라 나와 신상 선택을 화나게 만든다. 더 빠르게는 상품 세대가 바뀌는 수도 있다. 특허도 공공연하게 무시되어 버리는 전쟁터로 바뀌어 있다. 특허 싸움을 준비하다 보면 시장은 이미 또 다른 새 신상의 시장으로 바뀌어 버려, 특허권자에게 길고 지루하고 돈 많이 드는 특허 소송의 가치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때면 소위 “오리지날”을 산 소비자는 불만 고객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업력의 함정

소비자는 기업이 쳐 논 영업력의 올무에도 걸릴 수밖에 없다.
기업은 신상에는 개발비 보다 훨씬 높은 초과이윤을 판매 가격에 포함한다. 혁신비용 더하기(+) 소비자 설득(프레젠테이션) 비용 더하기(+) 탐욕이윤이 가격 구성요소이다. 개발비가 많아서라고 응변한다. 기업이 하는 일이란 소비의욕을 돋구어 자기 상품을 집어 들게만 만드는 작업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니드 파악 더하기(+) 디자인 더하기(+) 프레젠테이션이 주된 활동이다. 현대 상품은 초과품질(over quality)이 일반적이다.
현대 기업은 망 산업, 장치산업화 하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를 그물망에 묶어 관리 한다. 네트워크를 펴고, 하이웨이를 깔고, 선로를 설정한다. 연계하고 연결하고 그룹으로 묶어 서비스돔을 형성해 낸다. 그런 설비나, 장치는 독과점을 이룬다. 소비자는 그 설치비용, 시설비용, 망 비용, 선로 비용 같은 비용을 담당해야 한다. 통신비가 비싸도 어쩔 수 없이 소비자가 속한 지역 통신망에 끼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 소비를 하게 된다. 기업은 서비스적 갑이 되고, 서비스적 갑질을 한다.

기업이익, 소비자 이익, 뭣이 중할까?

시장경제의 운영 주체는 소비자, 생산자 그리고 나라, 3 주체다. 생산자의 이익, 소비자의 이익 그리고 나라의 이익이 서로 갈등관계를 갖게 되어 있다. 이익이라는 단어부터가 배타성이 있고 전투적이다. 그 관계를 나라권력이 정의롭게 심판해 주어야 하는 게 국가 경영이다.
그동안 기업 이익 우선의 국가운영방식이 얼마나 큰 사회 병폐를 야기 시켰는지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소비자의 목숨과 바꿔져 산출된 기업 이익도 드물지 않게 보아 왔다. 느슨한 규제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었다. 그 느슨한 규제의 틈을 외국 기업들도 헤집고 들어와 또 다른 소비자 피해로 다가 섰다. 9백명 넘게 죽었다느니, 110여명이라느니 하는 논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옥시 청문회, 그러고도 “난 몰라”식 철면피 답변에서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때의 “배 째!”식 대응을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확인 할 뿐이었다. 법과 규제와 규칙을 제대로 만들기에 게을렀던 정치행위에 가슴만 아플 뿐 다른 묘약은 없다. 론스타 같은 기업들이 끈질기게 국가 소송전을 벌이는 것도 다 그런 허술하고 단견한 소비자 정책 미비의 업보라고 본다.
시장 경제는 기업 이익과 소비자 이익이 상충되는 경쟁체제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온 점이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우리가 소비자 이익을 너무 경시해 왔다는 점이다.
“기업의 이익, 소비자의 이익, 뭣이 중헌디!? 멋이 중허냐고!?” 다그쳐 물어야 할 때다. 한국 소비자는 국민이다. 기업은 국민이 아닐 수도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6호 (2016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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