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 1998년 독· 미국 합작품
라이 쿠더, 이브라임 훼러, 루벤 곤자레스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27)]


(Buenavista Social Club)
부에나비스타 소시얼 클럽
빔 벤더스 감독, 1998년 독· 미국 합작품
라이 쿠더, 이브라임 훼러, 루벤 곤자레스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 시간이 정지된 도시, (우측)▲40년만의 공연. <사진=필자 갈무리>

혁명이후 반세기, 쿠바를 지배하던 카스트로도 이제 고인이 된 지금 쿠바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이영화가 만들어진 1998년의 쿠바 하바나의 시계는 여전히1958년에 정지되어있다.
한때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며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던 쿠바의 음악은 기타와 퍼쿠션이 흥겹게 결합하면서 낙천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음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혁명 후 자본주의의 폐기물로 전락하여 존재마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친구로부터 받은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쿠바음악을 접하게 된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젊은 라이 쿠더(Ly Cooder)는 기타 하나를 메고 쿠바 행을 결심하지만,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치고,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96년 이제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가 된 그는 젊은 날 그를 매료시켰던 쿠바음악을 찾아 하바나 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직도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을 찬양하는 벽보가 너저분하게 붙어있는 길거리엔 4~50년 된 고물자동차들이 굴러다니고, 낡고 고풍스런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하바나 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돌아 간 것만 같다.

▲ 구두닦이로 연명하던 가수, (우측)▲라이 쿠더와 함께. <사진=필자 갈무리>

한때 쿠바 최고의 밴드와 뮤지션들이 연주하던 옛 나이트클럽 부에나비스타 소시얼 클럽을 찾지만, 카스트로 집권 후 문을 닫아 이젠 어디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쿠더는 한때 쿠바음악을 이끌던,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수소문하며 하나하나 만나본다.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에브라임은 길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당시 쿠바 3대 피아니스트의 하나라던 루벤은 10년 전부터 집에 피아노도 없다.
대부분의 공장은 문을 닫아 폐허나 진배없고, 오직 쿠바의 명품 시가공장만이 바쁘게 돌아가는 쿠바에서 자본주의 뮤지션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지난 40년간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잊혀진 노인들이었지만 의외로 음악적 재능과 기량은 훌륭하게 살아 남아있었다.
라이 쿠더는 이들 평균나이 80의 노인네 음악인들을 다시 모아 밴드를 조직하고 옛 노래들을 녹음한다.
부에나비스타 소시얼 클럽이라고 이름한 이 앨범이 성공하여 3년 연속 월드뮤직 차트 1위에 오르자, 라이 쿠더는 평소 영화작업을 같이 해오던 빔 벤더스 감독에게 이 얘기를 해줬고, 즉석에서 다큐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 감독과 함께 제작에 착수, 1998년 쿠바로 다시 간다.
제작의 전 과정을 디지털 베타캠으로 촬영하고, 극장 상영본은 따로 필름으로 복사하여 배포했다.
암스텔담에서 가진 밴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인터뷰와 음악을 뒤 섞어나가는데, 놀라운 것은 다양하고 현란하면서도 유쾌한 쿠바 음악 속에 뛰어난 시적 감성과 아련한 페이소스가 깊숙이 깔려 있더라는 것이다.

▲ 10년간 피아노도 없던 피아니스트, (우측)▲카네기홀 공연. <사진=필자 갈무리>


- 내 뜰에는 꽃들이 잠들어있네
글라디오라스와 흰 백합
그리고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테니까
깨우지 마라 모두 잠들었네
글라디오라스와 흰 백합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죽어 버릴테니까

- 치자 꽃 두 송이를 그녀에게 주었네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서
그 꽃은 당신과 나의 심장이 될거요
꽃들은 당신 곁에서 나대신 속삭일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내 사랑의 치자 꽃은 죽어 버릴꺼에요
당신이 날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 기쁨에 넘친 소녀가 나무에 이름을 새겼네
가슴을 다친 나무는 꽃 한 송이를 떨어 뜨렸네
난 마음이 아픈 나무라네
내게 상처를 준 소녀야
네 이름을 영원히 간직할 테니
내 가여운 꽃은 어찌 됐는지 말해다오

빔 벤더스 감독은 특유의 작법대로 폐허와 황량함과 고독과 낭만, 그리고 삶의 공허함을 음악에 풀어서 얘기해준다. 그런가하면 쿠바 어린이들의 꾸밈없는 밝은 모습들도 노인들의 음악에 병치시킨다.
루벤의 피아노연주를 필두로, 퍼쿠션, 베이스, 트럼펫, 류우트의 독주를 연주가의 프로필과 함께 보여주어 그대로 라이브 콘서트를 즐기게 만들기도 한다.
아스팔트 바닥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길가엔 폐차들이 흉물스레 세워져있고, 텅빈 아파트는 휑하니 문짝들이 떨어져나갔고, 왕년의 화려했던 문화궁전은 이젠 어린이들의 체육훈련장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기 보다는 그런 세상에 살면서도 불평 없이 단순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편안함을 보여준다.
80 노인네 뮤지션들은 드디어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기쁨에 넘처서 성황리에 공연을 갖지만, 라이 쿠더는 그 공연이 부에나 비스타 소시얼 클럽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40여년 버려지고 소외되고 잊혀진 끝에 이제 자신들의 음악을 알아주고 갈채하며 환호로 맞아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기간은 너무나 길었고 그들은 세월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쿠바로, 그리고 어제의 그들로 돌아 갈 것이다.
“언제 어디서?”하고 물을 때마다
항상 당신의 대답은 “글쎄.. 글쎄.. 글쎄..”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9호 (2017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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