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정치, 장관서 本業 귀환

“다시 태어나도

김목사 아내 되고파”

구기동 상담소서 환경사랑은 여전

黃山城(황산성) 변호사, “찾는이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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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山城 변호사>

대외활동 끝내고 제자리로

국회의원, 환경부장관 등을 지낸 황산성(黃山城, 57세) 변호사가 요즈음은 본업인 법률상담 업무에만 열중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황산성법률상담소 겸 자택에서 만난 황 변호사는 스스로를 ‘이젠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법률업무 외의 모든 대외활동을 접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아니라 법률상담도 “꼭 황산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소송업무만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제가 몸이 예전처럼 건강하질 못합니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던 김동익 목사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뒤 몇 년간 슬픔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어요. 이제 눈물은 어느 정도 말랐으나 아직도 김목사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입니다.”

다시 태어나서도 김동익 목사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황 변호사의 마음속엔 사별한 남편이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2층서 남편사진보고 아래층 집무실로

살림집인 2층 거실엔 온통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이 되면 남편과 찍은 사진들을 한 번씩 쭉 훑어보고 아래층 변호사 집무실로 내려와 그날 그날의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가진 변호사 자격 때문에 꼭 황산성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만 만난다. 외부 활동은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화해시키고 재판이 있는 날엔 법원에 나가는 정도다.

그 대신 진주 배영초등학교, 순천 배산중학교, 경기여고, 서울 법대 법학과 등 학교 동창들과는 꼭 만난다고 한다. 공직자가 아닌 자연인 황산성으로서 동창생들과의 만남이 즐겁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왕성하게 사회활동 하던 때에 비하면 요즈음은 거의 칩거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라고 말한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몸이 건강하다면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렇치 못하다. 이제는 쉬어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수도자의 삶…중병은 아닙니다

황 변호사는 98년 이후 섭외가 들어오는 대부분의 외부활동을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심지어는 황 변호사가 중병에 걸린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대 여성 판사로부터 30~40년간 영광스러운 시간을 누렸던 그로서는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해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제 마음은 아주 편안합니다. 목사의 부인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 마음의 근본은 기독교 정신입니다. 따라서 누가 인정하든 그렇치 않던 제 스스로는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황 변호사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지구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나 혼자만 살아가는 곳이 아닌데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너무 없습니다. 남을 생각하고 후손들을 생각한다면 환경을 이처럼 파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물(水) 및 물자 아껴쓰기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국민 모두가 실천해나가야 환경파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1993년 2월부터 12월까지 제 5대 환경처장관을 지낸 사람답게 황 변호사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장관시절 “비내려주세요”기도

당시 환경처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 중에는 지금까지 황 변호사에게 세배를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각별한 정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황 변호사 자신도 환경처장관 재직시의 일들을 회상하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한다.

“환경처 업무를 파악해가면서 저는 환경관련 업무가 너무 방대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중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어 낼 수 없는 일들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집무실에 도착하면 신앙인으로서 우선 책상을 꼭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바람이 적당히 불게 해주시고 비도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내리게 해주세요. 이왕 비가 오게 하려면 밤중에 내리게 해서 낮에는 국민들이 일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해주십시오’하는 식의 기도를 했습니다.”

환경부의 업무상 기후에 영향받는 것이 많아 황 변호사의 기도도 대부분 일기가 순조롭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기도 효험으로 팔당댐 재앙 막아

황 변호사는 자신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매번 직원들로부터 “장관님, 이상하게 공기가 맑아지고 수질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하는 보고를 자주 접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엔 밤새 소나기가 퍼부어도 낮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아져 식물들도 잘 자라고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나라가 많습니다. 각국의 국민들은 그 기후에 적응해가며 살게 마련이죠. 우리나라도 비나 눈, 바람이 알맞게 불어줘야 생업에 지장이 없으며 환경도 잘 보존됩니다. 장마철에 1주일 이상 집중호우가 내리면 쓰레기 매립장의 오염된 물이 팔당댐이나 기타 식수원으로 흘러들게 되고 그러면 국민들의 식수공급에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장관 재직시 늘 기도했던 것은 이처럼 기후에 의한 불상사가 줄어들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황 변호사가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넘겼던 또 한가지 사건은 유조차 한 대가 팔당댐 언저리에서 전복됐을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전복된 유조차의 기름이 댐의 물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하면 식수원의 오염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산책나온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곧 군청, 면사무소 등으로 연락을 취했고 때 마침 인근에서 포크레인 작업 중이던 인부에게 사고 사실을 알렸다.

포크레인 기사가 기름이 댐에 흘러들지 않도록 임시조치를 취한 가운데 연락을 받은 군청 환경부 직원 등이 현장에 달려와 사고 뒤처리를 했던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수습된 후 새벽녘에야 보고를 받은 황 변호사는 ‘이것이야 말로 내가 그토록 하나님에게 기도드렸던 것이 기적으로 일어났구나.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었던 사고가 조기 발견됨으로써 서너사람의 힘으로 수습된 것은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쓰레기 매립장 보고 절로 비명

황 변호사는 김포매립지의 쓰레기장을 보고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에 놀라 연신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나, 어머나, 어쩜 이럴수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내놓다니….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 재앙이야. 이러다간 우리나라 전체가 쓰레기로 뒤덮힐 것만 같아….’ 하며 한탄하던 그는 당장 쓰레기종량제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지시하게 됐다고 한다.

쓰레기종량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후 시행만 남겨놓은 채 황 변호사는 장관직을 물러났다고 한다.

장관직을 물러나며 ‘나같은 사람 일 못하게 하면 국가가 손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도 그가 그만큼 열정적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란다.

어느 여성박사는 황 변호사의 귀에 대고 “그래도 역대 여성장관 중 황 변호사가 제일 일 잘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귀뜸해주었다고 한다.

황 변호사의 장관 재직 시절 미담도 많다.

쓰레기처리장을 들렀을 때는 유해 화학물질 처리장에서 엄청난 냄새가 나는 가운데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안에서 10분만 있어도 어지러운데 어떻게 이런데서 사람들이 일을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어려운 작업들을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진행시킬 수는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러면 직원들에게 안경이나 마스크 같은 보호 장구를 착용하게 조치했습니다. 반면 분뇨처리장에서는 5시간마다 꼭 교대근무를 하게 해 직원들이 조금이나마 산업 재해로부터 멀어지게 노력한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작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황 변호사는 장관의 신분으로서라기 보다 자식을 키워 본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원들을 위한 배려를 했다고 한다.

정치참여 이제보니 허망

앞으로도 그는 인간과 환경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비록 작은 일들 일지라도 옳다고 판단되면 몸소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해 황 변호사는 국민 모두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좀 줄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세 사람만 모여도 우리 국민은 정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정치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관심이 오히려 정치를 더 나쁜 방향으로 몰고가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국민 모두가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며 정치에 무관심한 나라들 중에 선진국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못된 시어머니 흉보면서 며느리도 나쁜 것을 배운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그 나쁜 점을 계속 흉보다가 국민 모두가 그런 정치 행태를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황 변호사도 한때 내각제 정치에 관심이 있었으나 국민들이 내각제에 대해 전혀 뜻이 없는 것 같아 이제는 정치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접었다고 한다. 지금 황 변호사는 모든 공사다망함에서 벗어나 여유있는 노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글 申貞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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