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상공업은 우리경제 뿌리

뿌리가 튼튼해져야죠

朴容晟(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一石二鳥란 명구일 뿐 비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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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상의 회장 취임식에서 인사하는 박웅성 회장>

졸병시절 무반동총 부사수

유명 경제인 박용성(朴容晟) 회장의 ‘그때 그시절’ 회고는 재미있다.

그의 군대시절은 ‘졸병이야기’이다.

60년대 학병군번으로 육군 26사단 최전방 사수로 복무하던 때 이야기니 오죽할까.

병장 계급장을 못 따고 상병으로 무반동총 중대 보조사수로 복무를 마쳤다.

이왕이면 사수(射手)를 하지 왜 보조사수 밖에 못했을까.

“병장이면 하늘처럼 높은데 그 아래 졸병 상병이 무슨 재주로 사수자리를 넘볼 수 있었겠느냐”며 웃기게 대답한다.

박 회장이 웃을 때는 아예 눈이 사라지고 하얀 이만 드러나니 천진스럽기 짝이 없다.

당시 박 상병의 소대장은 이현우 소위, 중대장은 유승국 대위로 기억한다.

뒤에 이 소위는 육군중장으로 승진 노태우 대통령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냈고 유 대위도 별 셋을 따고 병무청장도 역임했다.

직속상관들이 별을 따고 있을 때 박 상병은 상업은행 행원을 거쳐 두산그룹 경영인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전국의 상공인들을 대표한다.

직속상관들은 벼슬로 출세하고 박 상병은 경영인으로 출세했으니 그때 그 시절 임진강변의 인연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은 요즘도 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다.

“남북이 화해하건 전쟁위험이 줄어들었건 군은 나라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요즘엔 군에 대한 애정이 너무 식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업인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무조건 비판하는 분위기도 역시 잘못되지 않았는지 답답하게 여겨집니다.”

21사단과 자매결연 22년

박 회장은 대한상의와 자매결연을 맺은 육군 21사단을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벌써 22년째 자매관계라니 숱하게 전방을 위문했을 것이다. 선친 박두병(朴斗秉) 회장이 대한상의를 키웠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자매부대 위문에 참가했었다니 군을 잘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그는 IMF 체제 이후 전방위문 발길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고 들려준다.

그리고 남북화해와 협력이 진전되면서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찾아보던 위문단마저 끊어진 것이 세상인심이냐고 반문한다.

박 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전방위문이 더욱 절실하다”고 주장하며 “군은 결코 위문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선을 찾아 장병들의 복무현장을 격려해 주는 따뜻한 발길만을 원한다”고 일러준다.

박 회장은 회사일과 경제단체장, 그리고 스포츠단체장으로 너무나 바쁜 인물이다. 그런데도 틈을 내어 전방을 위문하고 전후방의 유대강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월간 경제풍월은 박 회장의 선전(?)에 감화받아 편집위원들로 위문단을 구성 4월 27일 전선위문길에 오를 수 있었다.

아울러 60년대 GOP 소대장 출신인 ROTC 1기생 10여명도 동행하여 ‘그때 그시절’을 회고하며 오늘의 안보상황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 매우 뜻깊은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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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찬장에서 인사 교환하는 박용성 회장>

사냥개와 토끼사냥론

박 회장은 선친에 이어 지난해 5월 대한상의 17대 회장에 취임했다.

전임 김상하(金相厦) 회장이 12년 중임 끝에 후임자를 물색하지 못해 고심하다 박두병 전회장의 인연을 앞세워 박 회장의 취임을 권유했었다.

박 회장은 상의회장 취임 이후 지방회원사들의 압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잖은 요청에서부터 정치권을 움직여서라도 상공업 활성화 분위기를 조성토록 하라고 야단이었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 취임 후 경제개혁과 관련한 대한상의의 대정부 건의안이 많이 발표되었다. 노사개혁과 관련한 업계의 고충을 대변하고 투자와 공장건립에 관한 애로사항을 건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청와대 모임에 참석하여 김대중 대통령에게 용감하게 진언한 ‘사냥개론’이 유명하다.

박 회장은 김 대통령에게 “사냥개 한 마리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정부가 구조조정을 독촉하며 정리해고를 자제토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이때 김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렇지만 이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김 대통령은 ‘노동권이 경영권을 침해하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결과적으로 박 회장의 용감한 진언이 노사문제 현안해결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셈이었다.

박 회장은 “무슨 배짱으로 그토록 당돌한 발언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 당시 분위기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일상 용어에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명언이 있지만 실제 돌팔매 하나로 나르는 새 두 마리를 어찌 잡겠느냐고 비유하기도 했다.

경제단체의 자립경영

대한상의 박 회장 집무실은 최근의 일반 CEO 사무실과 다를 바 없다.

방문객을 맞는 시각까지 언제나 노트북을 두르리고 있는 모습이다. “뭘 열심히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국내외 일정을 확인하거나 최근에 역점을 두고 있는 대한상의의 경영혁신 내역을 점검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대한상의는 내년부터 회원가입이 자유화되고 회비 강징이 없어진다. 전국 상공인을 총괄 대표하는 기구이지만 회비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지금부터 자립경영 기반확충을 서둘지 않을 수 없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통해 걸레론을 펼치면서 신속 과감하게 구조혁신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매각하려면 남들이 탐을 낼만한 물건부터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내게 있어 걸레라면 남에게도 걸레가 아닌가. 쓸모없는 물건을 내놔봐야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그러니 알짜배기라도 아깝게 여기지 말고 빨리 팔아야 구조혁신을 이룩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강 이런 논리로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은 속도를 내어 IMF 체제가 오기 전에 몸집을 가볍게 단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상의의 자립경영 기반확충도 이같은 박 회장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껏 사회봉사 체제로 운영하던 상의클럽을 임대용 사무실로 뜯어고치고 각종 회원서비스를 유료화하고 비회원사에게도 적정한 요금을 받는 등 수익성 제고에 나섰다.

이로써 회비와 정부위탁사업에 매달려오던 경제단체도 경쟁력과 생산성 위주의 경영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산자부장관 단명과 산업정책

대한상의는 상공업을 대변한다는 성격상 산업자원부 산하단체에 속한다.

그러나 어느덧 산자부소관 위탁업무는 거의 없어지고 오히려 노동부 소관 직업훈련사업 등 일부만 맡고 있다.

그만큼 시대상황이 변하고 상의의 위상도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정부조직법상 산자부가 상공업 진흥을 위해 좀더 굳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공인들의 염원이다.

“산자부장관이 또 바뀌었으니 얼마간 산업정책은 검토와 조정기를 갖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전임 장관께서 전통산업과 IT산업을 융합시키려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강조하셨는데 신임 장관께서 다시 한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모든 산업이 다 중요하겠지만 우리경제의 성장기반인 전통산업을 격려하고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박 회장은 산자부장관이 아무리 바꿔도 상공업의 정책적 중요성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다. 다만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서 다른 부처에 비해 산자부장관이 단명으로 교체되는 까닭이 궁금하다고 했다. 산자부는 박태영 장관이래 정덕구 김영호 신국환 장재식 장관으로 바뀌었다. 또한 신국환 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자부 출신이 아닌 관료출신이나 정치인 출신이었다.

이런저런 배경을 종합하면 행여 산자부 관리들이 소외감을 갖고 사기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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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정책위 의장단과의 간담회 (오른쪽에서 두번째)>

페놀 사태를 기회로 활용

박 회장은 OB맥주 회장직도 맡고 있지만 겸직하고 있는 두산중공업 회장직을 앞세운다.

OB는 외국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갔으니 이사회에나 참석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두산그룹의 자존심이 걸린 OB맥주의 경영권을 포기한 것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해석된다.

OB맥주 영등포공장부지를 매각할 때는 “울고 싶었다”고 회고하고 지금도 부근을 지날 때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심정이라 실토한다.

그렇지만 조순(趙淳) 서울시장 시절, 일시불조건으로 공장부지를 매각할 수 있었던 것이 기회였노라고 해석한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하여 두산중공업으로 개칭하고 그룹의 주력기업으로 육성하게 된 것이 OB맥주의 구조조정으로부터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이미 두산그룹은 주류전문이 아닌 중공업과 IT산업으로 변신했다. 외형상 주류의 비중은 고작 10%에도 미달한다.

이렇게 보면 두산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이후 스스로 팔자를 고친 셈이다. 알짜배기사업을 서슴없이 팔고 친환경경영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국내 상위재벌들이 군침을 흘리던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은 철저한 책임경영이라고 소개한다. 전권이 CEO에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간섭이 없노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CEO는 경영성과로만 주주와 대화할 뿐이라고 한다.

한국대표는 李秉喆(이병철)과 鄭周永(정주영)

박 회장은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 빈소를 찾았을 때 고인이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노라고 한다.

다만 현대그룹이 각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별세한 것이 안타깝게 회상되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누가 뭐라해도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은 고 이병철(李秉喆) 회장과 정주영 회장이 아니냐고 단언한다.

두분의 사업을 평가하고 경영방식을 자세히 뜯어보면 세계에 자랑할 것이 많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울러 그동안 실패한 기업인이 적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기업인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한국적 경영풍토에서 살아남은 기업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너무나 아쉽다는 말을 덧붙인다.

경기고 서울상대 뉴욕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박 회장은 세칭 상인가문의 귀골로 자랐다.대학졸업 후 상업은행에 들어가 7년간 행원으로 근무한 것은 선친 박두병 회장의 뜻이었다.

두산그룹에 입사해서는 동양맥주 사장 부회장 그룹기획실장 OB맥주 회장 등을 거쳐 올 3월 두산중공업 회장을 겸직했다.

박 회장은 유도와 깊은 인연으로 95년에는 국제유도연맹회장을 맡아 스포츠 외교에도 활약하고 있다. 올해 임기가 끝났지만 경쟁자 없이 단독 출마로 재선이 확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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