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그사람 美軍여장교…

희망이 인생의 명약

‘가발공장서 하버드’의 徐辰奎(서진규)씨

팬레터 받으며 학위 논문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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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차림의 徐辰奎씨>

희망의 증인이 되고 싶다.

‘누구에겐가, 오직 한 사람이어도 좋다. 나는 희망의 증인이 되고 싶다’.

50대에 들어선 여성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외침을 쏟아낸다면 그 여성은 이미 단순한 여성의 경지를 벗어나 진정한 인격체로서의 완성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50대 여성들이라면 이제 여성으로서의 삶도 서서히 마감을 하고 ‘아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라는 한탄 속에 이른바 ‘갱년기 증후군’을 호되게 앓고 있는 게 일반적인 우리네 현실일 텐데 인간에게 가장 최고의 ‘명약’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비전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여성의 삶은 그 ‘선언’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일구어 왔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살기 어렵고 희망이 안 보인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는 이 어려운 시절에 우리 앞에 ‘희망의 전도사’가 되어 나타난 여성이 있다. 서진규(徐辰奎, 53)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사인’ 부탁하는 20대 여행원

서씨는 재작년 우리 앞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나, 희망의 등불을 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그녀의 존재를 멋지게 알리는데 한 몫을 했지만 ‘서진규’라는 상품 자체가 워낙 견실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것 같다.

아무리 TV가 멋진 포장을 해서 내민 상품이라도 그것이 진품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는 데는 저마다 일가견이 있는 시청자들의 눈을 오래 속이기는 힘든 법이다. 그동안 브라운관에 화려하게 나타났다 소리없이 사라진 수많은 ‘가짜 스타’들의 행로에서 알 수 있듯이 ‘진실한 인생’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면 그 역시 방송이 나온 뒤 사흘 정도면 벌써 잊혀졌을 것이다.

서씨와 얘기를 나눴던 지난 4월 7일, 명동의 한빛은행 본점에 있는 커피숍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기면서 그의 진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은행에 근무한다는 20대 여성이 우리쪽 테이블로 오더니 서씨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사인’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사인’공세란 철없는 10대들이 자신들의 우상인 인기 탤런트나 배우, 아니면 인기 야구스타들에게나 요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좀 놀라웠지만 정작 서씨는 아주 자연스럽고도 다정하게 그 여성에게 희망과 용기로 멋진 도전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단번에 써주었다.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품새였다.

지난 99년 5월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가 방영된 이래 학교, 관공서, 기업체를 비롯한 크고 작은 모임에서 그는 끊임없이 ‘희망에 대한 비전’을 강연했고, 가는 곳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아왔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그 기저에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혼신의 힘으로 살아온 피와 눈물로 쌓아온 저력이 담보로 들어가 있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뜰 줄은 몰랐던 것도 같다. 그냥 오로지 한눈 팔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온 결과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자신은 항상 목표를 확고하게 세워놓고, 힘겨울 때마다 그 목표에 도달해 성공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기뻐하곤 했다는 말로 자신의 성공이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속담처럼 그는 ‘금의환향’했고, 눈물로 떠났던 조국에서 지금은 자신의 성공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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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모녀 모습>

하버드 교정 누비는 한국인 모녀

그의 현직은 그 유명한 하버드 대학 동양역사언어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인 ‘학생’이다. 53세의 한국출신 여성으로는 유일한 위치에 놓여있는 셈이다. 서울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가발공장 여공으로 있다가, 71년 ‘미국 가정집에 식모살이 이민’을 떠났던 23세 꽃다운 처녀의 30년 후 현주소치고는 꽤 색다르고 멋있게도 보이는 인생역정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말한대로 그가 자임하고 나선 ‘희망의 전도사’직이 그에게는 썩 어울려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KBS의 일요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출연’할 당시 그는 자신의 딸과 함께 모녀가 ‘하버드 학생’이라는 특이한 인연으로 주변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지난 1백여 년 간 하버드 대학에서는 모녀가, 그것도 동양인 출신이 한 캠퍼스에서 나란히 향학열을 불태운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딸 조성아양(25)은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학우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현재 딸은 학업을 마치고 ROTC 장교로 전북 군산 미군기지에서 복무중이다.

모녀가 주위의 시선을 끌어모은 데에는 그들의 ‘뛰어난 미모’도 한 몫을 거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모녀’였다.

재색(才色)을 겸비한 한국인 모녀가 하버드의 교정을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국위를 선양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얘기일까.

어쨌든 형제만 용감한 게 아니고 모녀도 용감했다!

‘눈물로 씻은 눈만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그리스 속담처럼 그의 인생역정의 전반기는 눈물로서 세상눈이 밝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미군 장교서 하버드 예비학자로

그는 ‘나이 오십 넘어 처음으로 써 본 글’로 1999년, 일약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무려 30만부 가까이 팔려나가 낙양의 지가를 높였던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라는 자전에세이는 그의 이런 눈물의 세상살이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후 그에게는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팬 레터’가 날아왔고 그토록 소망해오던 ‘희망의 증거’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그는 자기의 삶에 한 ‘경지’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집의 책 날개에는 저자 ‘서진규’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다.

‘1948년 경남 동래군의 한 어촌에서 태어나 제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풍문여고를 졸업했다.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가 1971년 미국 가정집에 식모살이하러 단신으로 도미했다. 결혼한 이듬해인 1976년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해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근무했다. 1990년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학자의 길을 함께 걷다가 1996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현재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도미 30년 연약한 한 한국여성이 남자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온전히 제 힘으로 ‘자수성가’해, 자기 이름 석자를 앞세워 우리 앞에 나온 그 이면에는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눈물의 보석’ 진주처럼 빛나고 있다.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온 누님’처럼 지난날의 사연을 ‘희망’으로 재생시켜 우리에게 용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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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성아로부터 거수 경례를 받고 있는 서진규씨>

운 잡으려면 실력을 먼저 키워라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는 ‘밑바닥 출신’이라는 그의 출신성분은 그에게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온 것 같다.

갓 스물을 넘긴 여리디여린 처녀가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는 각오로 혈혈단신 떠난 미국은 ‘실력’으로 덤비는 그에게 그 실력을 인정해 주는 ‘기회의 나라’였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한미한 집안의 둘째딸로 조국에서는 갖은 천대와 차별로 상처를 받았지만 그 거대한 나라 미국에서는 오직 ‘사람, 그 자체’만을 인정해 주었기에 출신성분이 미천하다고, 여자라고, 빽이 없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일은 없었고, 제2의 조국이 된 미국에서 그는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면서 ‘노력’을 했기에 오늘의 성공을 이뤄낸 것이다.

순탄치 않았던 여자로서의 삶은 그에게 두 차례의 결혼 실패라는 상처를 남겼지만 어떤 경우에도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그의 의지는 그런 ‘사연들’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폭력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뛰어든 곳이 바로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미국 육군이라는 ‘직장’이었고, 집안 좋고 열살이나 연하여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미국인과의 두 번째 결혼도 서로의 발전을 위해 갈라섰지만 그 미국 육군이라는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이렇게 그의 인생은 미국 육군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고 어쩌면 그것은 그의 인생에 이미 예정되었던 과정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을 단순히 ‘운’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운’을 잡으려면 노력하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심은하 닮았다’에 파안대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온 서진규씨는 나이보다 앳되 보이는데다가 20대 초반 당시 최고 인기배우였던 남정임이 나온 영화에 여대생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경력’이 입증하듯 여전히 ‘예쁜 얼굴’이었다. 일찍이 여중생 시절엔 여배우를 꿈꾸며 당시 최고 배우였던 최은희에게 ‘팬 레터’를 보냈고, 얼마나 절실한 내용으로 그 여배우를 감동시켰던지 ‘답장’까지 받았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책 중간 쯤에 미군 중대장 시절 사진이 실려 있는데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탤런트 심은하와 꼭 닮았다. ‘심은하와 닮았다’는 얘기에 파안대소하며 좋아하는 그를 보면서 ‘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그 나이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성공한 요소로 어떤 것을 꼽고 싶으냐고 묻자, 역시 미국시민으로서 살아온 사람답게 “남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한 것이 성공의 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배려는 곧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이라는 답이 나왔다.

한국 출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반 중대의 중대장으로 임명돼 2백여명의 생떼같은 청년들을 통솔하면서 최우수부대로 상까지 받았던 그에게는 그 ‘배려하는 지혜’야말로 성공의 받침돌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아직 젊은 그에게 어떤 새로운 로맨스에의 기대는 없을까라는 속된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더니 곧장 ‘스캔들’로 번지는 것이 두렵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델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언제나 자신을 다잡고 있다면서도 ‘사랑’에 대한 기대섞인 감정은 여전하다는 말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러 잠시 서울에 온 그는 너무 너무 시간에 쫓겨 복제 인간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다.

지금 읽어야할 논문만 수 백편이 기다리고 있어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증거하는 소중한 시간을 더 만들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여러 곳에 동시에 ‘서진규’를 파견해 그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요”라는 인터뷰 속성상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더니 전혀 뜻밖에도 암행어사 박문수가 되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외였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무의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차별’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몸소 뼈저리게 겪었고 거의 ‘한’이 맺혔을 정도였다는 얘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부당한 대우지만 거기에 항의 한 번 못하던 시절 암행어사 박문수가 ‘짠’ 하고 나타나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이런 그녀의 무의식이 바로 되고 싶은 인물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닐는지.

차별을 말하면서 그는 거의 분노하는 표정이었다. 그만큼 차별이라는 환경적 압박요소가 그에게는 큰 걸림돌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 차별이라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야말로 그 자신이 희망을 증거하는 작업과 함께 해나갈 평생의 일이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노벨 평화상처럼 권위가 있는 ‘세계 평등상’을 제정해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베스트 셀러 저자로서 적지 않은 인세도 받았지만 서울에 조그만 아파트를 한 채 마련했더니 인세는 다 없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소규모이지만 장학금으로 여기저기 기부할 곳도 많고, 평등상 재단을 설립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것 같아요.”

글/ 朴美靜 (박미정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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