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러브콜' 무슨 자신 있나요

▲ 미국을 공식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30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논객(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주필, 전논설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미국으로 독일로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정상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먼저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미국을 방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초 문 대통령의 언어와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가,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이상으로 달라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냈던 데 비해서는 괜찮은 결과였다.
양국 정상의 회담 이후 장문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미국은 안보문제보다 경제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인 듯하지만 어쨌든 한·미양국 신임대통령간의 첫 만남이 비교적 무난히 이뤄지고 마무리된 점은 다행스럽다.
한반도 안보 군사문제에 대해서만 보기로 하자. 양국 성명에는 아주 자세하게 양정상의 합의 또는 이해 부분이 기술되어 있다. 회담의 의의와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역대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나 발표문을 참고해서 한껏 나열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말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동맹강화 우의심화’다.

군사적 피아구분 분명히 해야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랑하기는 아마 청와대 측도 좀 쑥스러울 것이다. 당초의 우려가 해소된 정도의 성과는 거뒀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물론 청와대의 인식은 다를 수 있다. ‘전작권 조기 전환 협력’, ‘연합방위 한국이 주도’, ‘한반도 비핵화 평화적 방식으로 달성’,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남북간 대화 열망지지’ 등을 포함시킨 점에 방점을 찍고 싶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문 대통령의 안보 및 대북인식은 분명했다. 대선 후보로서 한 말이었다고 해도 좀 심하다고 할 만큼 ‘친북반미’ 정서를 내비치곤 했다.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월간중앙, 2017년 1월호).
물론 “사전에 그 당위성에 관해 미국, 일본, 중국에 충분한 설명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대단히 충격적인 ‘단언’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후에 한 종편에 출연해서 이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자 “우리가 왜 그런 질문을 주고받아야 하는가, 그 이야기를 우선 하고 싶다”며 “미국이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우리 국익에 도움 된다면 어디든 가고 누구든 만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사상 검증처럼 그러니 참”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렇게 둘러댈 것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게 했어야지 ‘주저 없이’ 할 말은 아니었다.
참여정부 때 같이 일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논쟁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2007년 11월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표결 시 한국은 북한의 의사를 타진하고 기권했다는 게 송 전 장관의 기억이다.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그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 대통령도 북한의 의사를 물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문 후보의 해명은 오락가락했다.
그는 햇볕정책 지지론자였고 이를 계승한 평화번영정책 주도세력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미국에 대해서는 공세적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민주당의 리더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진보좌파적 입장의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기간 중에도 내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HAD) 한국 배치를 거북해 했다. 대통령이 되자 그 감정을 공공연히 내 비쳤을 뿐만 아니라 배치를 늦추기 위한 장치들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대미 인식이 분명히 표출된 경우는 또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3월 1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던 문 대통령은 ‘NO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을 강조했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에 ‘아니요(No)’ 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이 기사는 전했다.
당연히 논란이 일었고 청와대는 녹취록까지 공개하며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상황이 악화되자 뉴욕타임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문 후보의 이 말은 최근의 인터뷰에서가 아니라 그의 저서에서 나온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 출간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도 친미(親美)지만 이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도 협상하고 ‘No’를 할 줄 아는 외교가 필요하다.”

NO가 국위 올려주지는 않는다

사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특별할 것도 없었다. 국가 대 국가의 상호관계에서는 ‘YES’도 있고 ‘NO’도 있게 마련이다. ‘NO’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건 주종관계다. 우리와 미국은 동맹관계, 우호관계인 것은 맞지만 주종관계는 아니다.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었을까? 아마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억, 문 대통령이 2기 참여정부를 이끌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북한 정권 측과의 관계개선에 집착했다. 임기를 불과 4개월 여 남긴 시점에 기어이 북한을 방문, 김정일과 ‘서해평화수역’ 설정 문제를 논의하는 등 이른바 ‘대못’을 박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문 대통령은 그 때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친구’라고 소개했을 만큼 두 사람은 코드가 맞는 사이였다.
기실 ‘NO라고 말할 수 있는’이라는 말은 일본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책 제목으로 쓰이면서 유행한 표현 방식이다. 그는 공저자를 바꿔가며, 1989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90년 『그래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92년 『단호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잇달아 출간했다. 미국은 옛날의 미국이 아니고 일본도 옛날의 일본이 아니다. 이제는 미국이 강요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책이었다. 일본인들이 열광할 만했다.
문 대통령도 아마 그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미국에 예속된 국가라는 이미지를 감수할 수는 없다. 이제 한국도 행세를 할 만큼 성장했다. 미국의 가치가 있듯이 한국의 가치도 있다. 못 대들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른바 ‘자주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를 미국의 속국으로 상정하고 그 불공정성을 공격하면서 한국인의 자주의식을 부추기는 말하기 방식이다. 진보주의자라면서 폐쇄적 민족주의에 매몰되는 인상을 주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그 동조자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북한 통치집단의 안중에 대한민국은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군사문제에 관해서라면 우리가 아무리 대화하자고 매달려봐야 태도를 바꿀 저들이 아니다.

북한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용산기지를 이전하는데 우리가 60억 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 달러가 들어도,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 외국 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내지 않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때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 말이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북한의 대남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군사 문제에 있어서 남한은 협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좌파 세력 일각에서 주장하듯,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북한이 우리를 중시하게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이라는 후견국이 버티고 있는데도 우리를 우습게 아는 북한이 혼자된 한국을 중시할 까닭이 없다.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실험·실전배치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전망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 저들에게 우리 정부의 효용성은 따로 있다. 우선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자금원이다. 그리고 미국의 군사적 압력을 완화시켜줄 완충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자주적 지위, 주도적 역할을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그리 고무될 일은 아니다.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양해할 법도 하다. 정 한국이 고집할 경우 알아서 하라며 뒷짐을 질 수도 있다. 그들의 계산으로는 경제가 더 중요해 보인다. 한미FTA 재협상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면서도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어째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필요이상으로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 대든다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갈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순응하거나 최소한 묵인하고 있다. 그게 유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NO’를 부추기고 그에 열광하던 일본인까지도!
이제 경제적으로 세계 유수의 강국이 되었으니 국가자존을 생각할 때가 되긴 했다. 그렇다 해도 초강대국이 우리를 돕겠다는데 자존심을 세우느라 굳이 시비를 걸 까닭은 없지 않은가. 정부의 임기는 5년이다. 잠시 국정운영을 위임 받았다가 떠날 사람들이 두고두고 국민의 안전에 악영향을 미칠 결정을 무모하게 해서 될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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