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마즈 뀌니· 세리프 고렌 감독, 1982년 터키
타리크 아칸, 하릴 에르군, 네크메틴 코바노그루

▲ 욜(The Way, Yol, 1982)

[이코노미톡뉴스=박윤행 논객] 전통과 인습이란 어떤 것일까? 분명히 그것이 선이고 바람직한 사회정의였기에 사람들이 따라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관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습이 지고의 선이 되면서 인간성은 말살되고, 인간은 관습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데, 특히 이슬람세계처럼 그 관습이 종교와 결합하게 되면 그 위력은 초법적인 절대적인 것으로, 옳건 그르건 거스를 수가 없다.
터키어로 욜(Yol)은 길이란 말로 가는 길, 즉 여정이란 뜻이지만, 이 영화는 길을 따라가는 로드무비가 아니라, 터키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관습의 폐해를 직설적으로 고발하면서, 인간성의 회복을 갈파하고 있다.

터키 서북부 이무랄리 섬의 감옥에서 가출옥이 실시되어 운 좋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집으로 돌아가는 행운을 누리는데 그중에서 다섯 남자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군사정권의 계엄령아래 통행금지가 실시중이라 세이트는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고 집에 왔지만, 아내는 애를 버리고 가출 해버렸다는 말을 듣는다.

▲ "가출옥 허가증이요", (우)▲"가족을 데리러 왔습니다". <사진=필자 갈무리>

메메트는 처남이 보석상을 터는데 가담했다가, 경찰이 총을 쏘자 처남을 차에 태우지 않고 혼자만 도망쳐 그를 죽게 한 과거가 있다. 처가에서는 그와 의절하겠다고 하는데 아직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는 처가를 찾아가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빌려 마음먹는다.
버스를 타고 가던 유서프는 군인들의 검문에 걸린다.
총을 든 군인들이 남자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철저히 온몸을 뒤지는데 가출옥 서류를 분실한 유서프는 고향에도 못가고 헌병대에 구금된다.
버스에서는 세 어린이가 악기를 연주하며 악을 쓰듯 노래를 하며 구걸을 한다. 그만큼 세상이 살기 힘든 것이다.
광활한 벌판을 걸어 기쁨에 차서 집에 온 오메르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에서 군인들이 한집을 에워싸고 쿠르드 독립전사들과 대치한 현장을 마주친다.
결국 전사들은 손을 들고 투항하고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길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자지러진 울음소리만이 여운을 남기고..군인들이 쫙 깔린 마을에는 야밤에도 총소리가 들려오고, 오메르는 자신의 형도 독립전사가 되어 피신중이라는 말을 듣는다.
기차에서도 어김없이 군인들의 검문이 실시된다. 무기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몸 뒤짐을 하는 군인들은 반정부인사나 쿠르드 독립전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메메트에게 세이트는 처남의 편지를 보여준다. 집을 나간 그의 아내를 사창가에서 찾아내 집에 끌고 왔는데 가문에 먹칠을 했으므로 처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집에도 못가고 군에 구금된 유서프는 결혼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내를 그리워하지만, 창밖의 새들만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
아직 총각인 오메르는 고향에 온 첫날부터 마을 처녀와 눈이 맞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고 처녀도 그를 좋아하는 눈치다.

▲ "가출옥 허가증이요", (우)▲"가족을 데리러 왔습니다". <사진=필자 갈무리>

처가동네에 온 메메트는 말끔히 면도를 하고 처가집을 찾아간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졸라대고, 얻어온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있는 아이들이 암울한 현실을 얘기한다.
메메트는 “아내와 애들을 데리러 왔어요”하며 용서를 구하지만 처가남자들은 “당신은 우리집안의 원수야 다시는 오지 말아”하며 그를 내치고 아내는 바라보다가 졸도한다.
세이트는 눈 쌓인 산길을 달려 처남이 살고 있는 고원지대에 도착한다. 아내가 있는 동네는 다시 혹한의 계곡을 지나야한다. 말 한필을 얻어 타고 출발한 세이트는 발이 푹푹 빠지는 눈보라 속에서 말을 잃고 사투 끝에 간신히 처가에 도착한다.
비교적 유복한 메크르트는 약혼자와 다시 만나 데이트를 하지만, 두 여자가 계속 뒤를 따라다니는 통에 손도 못 잡고 불평 끝에 사창가를 찾는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금욕의 세월을 보낸 남자들로선 출옥 후 여자가 가장 간절하게 그리울 것이었다.
세이트는 아내 지네를 만난다. 그녀는 8개월째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마른 빵과 물만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저는 죄를 범했어요. 당신을 기다린다는 약속을 어기고 주는 잔을 거절하지 못했어요. 당신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당신에게 손대지 않을 거요. 신에게 맡길 거요”
“죽어야한다면 차라리 당신 손에 죽고 싶어요”

▲ "부부 맞나요?", (우)▲"왜 따라 다니지?" <사진=필자 갈무리>


메메트의 아내 에미네는 두 아이와 함께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남편과 기차를 타고 야반도주를 한다. 처가에선 난리가 나고..남편의 간절한 욕구를 채워주려 화장실에 들어가 남편과 사랑을 나누다가 그만 사람들에게 들켜버린다.
공공음란죄를 들먹이며 혼내주라고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 사이로 역무원에게 끌려간 두 사람은 아이들의 친부모임이 밝혀져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역무원칸에 앉아있을 때 에미네의 동생 세페르가 기어코 기차까지 따라와 두 사람을 사살한다.
달이 뜨고 깨끗이 몸을 씻은 세이트의 아내 지네가 남편을 따라 나선다. 세이트와 아들은 설피를 신고 있어서 발이 눈에 빠지지 않지만 설피가 없는 지네는 발이 계속 눈에 빠진다. 게다가 극도로 쇠약해진 지네는 줄곧 뒤에 처지다가 결국 발의 감각을 잃고 세이트를 소리쳐 부른다.
“걷지를 못하겠어요. 제가 잘못 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뒤돌아온 세이트는 지네를 들쳐 업고 걷는다.
하얀 설원위에 하나의 검은 점 같은 두 사람.
이윽고 온몸의 감각을 잃은 지네는 결국 동사한다.
단칸방에서 부모, 동생, 형수, 네 명의 조카들과 함께 지내는 오메르는 한밤중에 조명탄이 오르고 난사하는 총소리를 듣는다. 저속에 형이 있을까? “신만이 아신다 신만이..”
아침. 군인들이 파리가 달라붙는 5구의 시체를 실은 트럭을 끌고 와 주민들에게 신원을 확인하라고 요구한다.
그중에 형을 발견하고도 오메르는 모른다고 잡아떼고 형수를 만난다. “안됐지만 지금부터 내가 관습에 따라 형수의 남편입니다” 마을을 떠나면서 오메르는 처녀와 이제는 그의 아내가 된 형수를 번갈아 바라보지만, 거스를 수 없는 관습 앞에서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세이트는 감옥으로 돌아간다. 결혼반지를 빼내려다가 다시 끼는 그의 귓가에 “세이트 살려줘요”하던 아내의 외침이 메아리진다.

▲ <사진=필자 갈무리>

일마즈 뀌니 감독은 쿠르드족 출신의 터키인이다.
과거 십자군전쟁 당시 사자왕 리처드와 쟁패하던 사라센의전설적인 살라딘왕도 쿠르드족이었지만, 쿠르드족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독립된 나라를 가져보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족으로 터키동북부에서 이라크 남서부에 걸쳐 2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장투쟁을 하고 있고, 터키는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 "왜 나를 배신했소?", (우)▲"날 용서해주세요" <사진=필자 갈무리>
▲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일찍이 영화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일마즈 뀌니감독은 쿠르드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수차례 옥고를 겪었고, 이영화도 옥중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노트를 내보내 촬영을 하게하고, 편집까지도 하면서 1982년 칸느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세계에 쿠르드족의 존재를 알렸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