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사적 제14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이후 재조사에 착수해 왕릉릅 무덤 4기와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 '부여 능산리 3호분 전경'.(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부여군(군수 박정현)과 함께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으로 추진한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의 서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능산리산(陵山里山)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3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위치에 따라 각각 중앙고분군(왕릉군), 동고분군, 서고분군으로 불리며 지난 일제강점기에 세 차례에 걸쳐 조사가 진행되어 15기의 무덤을 확인했다.

이후 중앙고분군의 정비복원 과정(1965~1966년)에서 2기의 무덤이 추가로 확인했으며, 현재까지 모두 17기가 남아 있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2016년 6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펼친 서고분군 4기에 대한 것으로, 1917년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 년 만에 펼친 조사다.

서고분군은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2기씩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 능선에 2·3호분이, 동편 능선에 1·4호분이 있다. 4기 모두 지하 깊숙이 조성된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

▲ '부여 능산리 고분군 2호분 전경'.(사진=문화재청)

무덤의 평면은 현실(玄室, 시신이 안치된 방) 중앙에 연도(고분의 입구에서 유골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羨道), 묘도(墓道)가 차례로 달려 ‘갑(甲)’자 모양이며, 잘 다듬은 판석(板石)으로 만들었다.

유물은 도굴과 일제강점기 조사로 인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2호분의 돌방 바깥의 도굴구덩이에서 도금된 금송제(金松製) 목관 조각과 금동제 관못, 금제장식 등이 나왔다. 3호분과 4호분에서는 목관에 사용된 금동제를 포함한 관고리와 관못이 확인됐다.

▲ '부여 능산리 고분군 2호분 출토 금제장식'.(사진=문화재청)

서고분군은 1917년 조사 후 ‘능산리 왕릉군의 서쪽 소계곡 너머에 있는 능선에서 무덤 4기를 확인하고 그 중 2기를 발굴하였다’라는 간단한 기록과 4기의 고분 위치를 표시한 간략한 지형도만 남아 있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100여 년 만에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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