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형상을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기고 하고, 돌을 망치로 쪼개고, 틀을 만들어 찍어내기고 하는 조각과 달리 800~1200 도의 끓는 쇳물을 허공에 던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가며 의도치 않은 형상을 작업으로 펼쳐내는 작가 윤희(68)의 작업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 '9월 14일 자하문로 리안갤러리 서울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윤희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윤희의 개인전 '이나땅뒤(inattendu)'가 9월 12일부터 서울 자하문로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는 다름 아닌 여러 가지 금속을 섞어서 녹인 쇳물이다. 모든 재료를 녹여버릴 것 같은

쇳물을 주물공장의 작업자들과 함께 허공에 던지듯이 흘려보내면 용암이 식어서 굳어지는 자연스러운 형상의 '구형(求形)'의 작품이 탄생한다.

▲ '리안갤러리 서울에 설치된 윤희 작가의 작품들'.(사진=왕진오 기자)

윤희 작가는 "작가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우연성이 가진 자연의 법칙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흐르는 쇳물로 인해 찰나적으로 모양이 만들어진다. 즉각적 판단에 의해서 작업을 해나가는데, 항상 순간적으로 형태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 작업 방식이 우연과 사고를 곁들이는 것이다. 작업의 방식을 동일하지만,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흐르다 식어서 멈춘 쉿물이 만들어낸 형상에 희열까지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인 주형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최종적 결과물은 작가 자신도 예측할 수 없으며, 최소한으로 의도한 상황에서 물질이 스스로 작용하며 '우연적' 결과물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

리안갤러리 서울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청동이나 황동으로 제작된 '구형' 연작은 쇳물이 공기와 맞닿아 산화되는 시기와 면적에 따라 조각의 표면이 원래 가진 색상을 유지하거나 다른 컬러를 드러낸다.

▲ 윤희, 'Spherique(구형)'. brass,copper, Diameter 118cm , 2017.(사진=리안갤러리)

쇳물의 양에 따라 흐르며 식어가는 과정 속에 얇거나 두꺼워지고, 마치 유화물감으로 마티에르를 강조하듯이 디테일이 강조되기도 한다.

윤희 작가는 "제 의도가 아닌 자연의 단편이라고 볼 수 있죠. 조각이라는 예술적 형태로 재연하는 것"이라며 "시간과 엔트로피에 의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상기시키는 과도기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 걸린 볼록한 형태의 'inattendu'시리즈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축적되고 응고되면서 힘찬 에너지를 발산하는 표면을 통해 가시화한다.

윤 작가의 쇳물 드로잉과 같은 작업은 80년대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뿌려지는 작업을 본 이후 자신의 작업실에서 용접기로 납, 주석을 녹이며 테스트를 거친 결과라고 한다.

▲ 윤희, '분출된 세폭화'. 160×120cm, Pigment on paper, 2015.(사진=리안갤러리)

당시 작업을 대형 사이즈로 하고 싶어서 찾아간 주물공장들은 독특하면서, 황당스러운 주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고, 손 사레까지 쳤다는 일화도 전했다.

윤 작가는 "우연성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필연성인 것 같다. 우리가 항상 통제하고 살지 않지만, 우연을 가져오는 것 바로 그것에 너무나 완벽하게 계획한대로 이뤄지며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품이 내 작업 세계다. 정확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쇳물을 이용한 조각 작품과 함께 즉흥적으로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드로잉 작업도 함께 볼 수 있다.

▲ 윤희, 'inattendu'. Bronze, 120 x 154 x 29.5cm, 2017.(사진=리안갤러리)

'내던짐의 세폭화' 등 작품은 검정색 안료를 먹을 개듯 희석시켜 작가가 고안한 전용 도구를 이용해 방향과 힘의 세기를 순간적, 직관적으로 결정해 내던지듯 그려 나간 것이다.

물감이 많은 곳은 뭉쳐서 두꺼워지고, 묽은 곳은 흘러내리며 결국 스스로 그 형태가 만들어진다. 쇳물이나 물감이나 작가가 의도한 것과 우연적 결과가 융합되면서 격렬한 에너지가 표출된 하나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윤희 작가의 쇳물 구형 시리즈는 2019년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아시아 및 세계 컬렉터들에게 선보일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해외시장에서의 반응이 기대되고 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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