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저금리 역마진 시대

생보사 존립기반 흔들

저수익으로 예정이율 보장 못해

소급인하 불가능, 자구책도 막연

구조적 역마진 손실 눈덩이

생명보험사들의 경영에 빨간 불이 켜졌다. 회사가 과연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느냐 하는 위기감이 업계에 팽배해 있다.

이같은 위기감은 시중 금리의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역 마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마진은 구조조정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당분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구조적 현상이며,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생보업계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증시 침체마저 계속되면서 생보사들의 자산 운용에 큰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생보사들은 현재 상품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역마진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자산운용에 계속 실패하면 손실단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천억원, 또는 수조원에 달해 도저히 회사를 정상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업계를 짓누르고 있다.

이러다가는 저금리에 따른 지속적 역마진 발생으로 줄줄이 쓰러진 일본 대형보험사들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利差(이차)손실 2조5천억원

지난해말 현재 국내 21개 생보사들의 자산 운용수익률과 고객보장이율(예정이율)간 이차(利差) 손실은 무려 2조5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현상은 자산운용수익률이 지난 96년의 연 9.8%에서 지난해 말에는 절반수준도 안 되는 4.7%로 폭락한 반면 고객에게 보장해 준 예정이율은 9.8%에서 7.8%로 소폭 감소한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 결과 현재 생보사들이 안고 있는 금리 역마진은 무려 3%에 달하고 있다.

특히 지난 97년 IMF 관리체제 직후 금리가 치솟았을 때 판매했던 연 7.5?9.5%대의 확정 고금리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내년 하반기부터 2천3년 사이에 국내 생보사들은 회사의 존립여부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IMF 환란위기 당시 보험사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금리의 확정 보험상품을 판매했는데, 예상외로 금리 하락세가 가파르고 주식시장마저 장기 침체 현상을 빚고 있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 강타한 망령이 한국에로

생보사들의 판매 상품 중 보장성 보험을 제외한 확정 금리형(저축성) 상품 비중은 무려 70%에 달해 경영을 크게 압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의 저축성 상품 비중이 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생보사들의 저축성 상품 비중은 너무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보다 먼저 역마진으로 경영위기를 맞은 것은 일본 생보사들이다.

생명보험은 일본 금융업 가운데 가장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업종이다.

지난 97년 닛산(日産)생명의 부도를 필두로 지난 3월 도쿄생명이 쓰러지는 등 불과 3?4년사이 무려 7개 생보사가 문을 닫았다. 작년 한해 동안 도산한 곳도 전체 생보사 40개중 5개사에 이른다.

일본 생보사들이 이처럼 위기에 몰린 것은 무엇보다 제로에 가까운 초저금리로 역마진이 발생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본 생보업계는 지난 90년초 거품붕괴 이후 주식과 부동산의 폭락, 대출기업의 부실화에 정부의 제로금리까지 겹치면서 역마진에 시달려왔다.

지난 80년대 후반 5.5%에 달하던 보험상품들이 지금은 제로 금리하에서 역마진이 발생, 생보사들의 경영을 크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일본 대형 및 중견 생보사들의 총 역마진 규모는 1조5천억엔을 웃돌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비상 自救노력

역마진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국내 생보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집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들 생보사들이 먼저 칼날을 들이댄 곳은 그동안 생보사의 상징처럼 존재해 온 보험 설계사다. 지난 3월말 총 21만4천7백여명에 달하던 21개 생보사들의 설계사는 6월말현재 20만 4천5백여명으로 3개월사이 무려 1만여명이 감소했다.

이는 역마진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저축성 보험을 판매하던 설계사를 대폭 줄인 결과다. 그렇지 않아도 보험상품의 인터넷 판매 영향으로 입지가 좁아진 설계사들이 역마진이란 태풍이 휘몰아치면서 추풍낙엽처럼 정든 직장에서 떨어져 나갔다.

생보사들은 앞으로도 실적이 나쁜 설계사는 계속 퇴출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연말까지는 최소한 3만명 이상의 설계사들이 직장을 잃게될 전망이다.

반면에 생보사들은 기존 여성중심의 설계사를 전문성을 갖춘 고학력의 남자 프로 설계사로 대체, 고가의 보장성 보험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월말 현재 남자 설계사는 1만4천여 명으로 직전 1년 동안 1만2천명 가량이 늘어났다.

생보사들은 상품 구조조정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연 10%대의 확정금리형 저축성상품 비중이 높은 회사들은 저축성상품의 판매를 잇따라 중단하고 있으며, 기존 계약분도 예정이율 연 6%대인 종신보험이나 변동금리 상품 등 새로운 상품으로 교체하도록 가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고금리 확정상품 해지요구도

또 승환계약을 독려하기 위해 일부 생보사들은 고금리 상품의 해약실적이 양호한 영업소와 지점에 운영비를 더 주거나 해당 설계사의 업무 평가시 이를 점수에 반영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모집인 수당을 차별화하고 기존 계약자에게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생보사들은 종신보험 특약에서 암이나 뇌졸중, 심근경색으로 인한 진단부분을 제외하는 등 고객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3가지 특약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일종의 국민병 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생보상품의 부실화가 우려되고 있다.

또 일부 생보사들은 계약자와 보험사간에 이미 계약한 보험의 보험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사실상 기존 계약의 예정이율을 소급해서 인하하자는 것으로, 고객입장에서 보면 보험료를 더 내거나 나중에 받게될 보험금이 깎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정이율 소급인하 가능한가

하지만 예정이율 소급 인하는 현행법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설사 특별법을 만들어 시행한다 해도 가입자의 권익을 현저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어 가입자들이 심하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

특히 정부가 나서 사적인 계약에 개입, 가입자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쉽게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총 생보 계약이 5천57만건, 즉 전국민이 계약자인 상황에서 계약자 손실을 가져올 예정이율 인하조치는 계약자의 집단 반발 등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은 분명하다.

계약자의 반발도 문제지만 보험사와 보험상품에 대한 신뢰도 추락도 예정이율 인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감위가 보험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보험업법 16조를 활용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조항의 원래 취지는 계약자 보호이기 때문에 계약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예정이율 인하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업계는 공식적으로는 예정이율 인하요구를 삼간 체 여론 떠보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금감위도 계속 “나 몰라라”하고 침묵만을 지킬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생보업계의 이 같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경우 상당수 회사의 도산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가입자들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생보사가 무너지면 그 여파가 투신권 등 다른 기관투자자들에도 줄줄이 미칠 것은 분명하다.

방카슈랑스 도입 연기해주오

이와 함께 자산운용 손실 증가로 주요 생보사들의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의 증시 상장 또한 불가능할 것이며, 일부 부실 생보사 매각 등 생보업계 구조조정도 차질을 빚을 것이다.

현재 예금보험공사는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대신생명을 올 연말까지 매각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의 생보업계의 분위기가 어렵게 돌아가고 있어 매각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금리 정책의 가속화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생보사들의 자산 운용 리스크를 감안하면서 저금리정책도 시간을 두고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보사들은 문제해결의 일환으로 방카슈랑스(은행+보험업무 겸업)제도의 조기 도입방침을 연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방카슈랑스 도입시기는 당초 2천3년 8월이었으나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맞춰 1년 가량 앞당긴 2천2년 10월초에 조기 도입하는 방안이 그동안 추진돼 왔다.

그러나 방카슈랑스 하에서는 은행에서도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돼 생보사의 경영은 더욱 큰 타격을 받게될 것이다.

해결의 열쇠는 결국 보험사가

이와 관련, 정부는 방카슈랑스 조기 도입안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위해 조만간 은행, 보험사, 보험모집 조직 등이 참여한 가운데 대책을 협의할 방침이다.

어쨌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보험사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터라도 현실에 입각한 경영 합리화방안을 모색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예정이율은 과감하게 낮추어 현재의 역마진 위기가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한편 위험성이 높은 고금리 저축상품의 비중을 줄이고 보장성 보험의 비중은 높이며,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는 등 역마진 해소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표준예정 이율을 낮추고 보험사의 자산운용 자율성을 확대하며 해외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등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결국 생보업계가 당면한 역마진 문제의 극복 여부는 정부와 업계가 얼마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글/ 조희곤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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