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에 대한 3차 발굴조사 결과, 3~4세기대에 만들어진 제련로 9기를 추가로 확인했다.

▲ '하층 유구(5호로, 아래쪽)와 중층유구(16호로, 위쪽) 전경.(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가 2015년부터 국내 3대 철 생산지이자 다수의 제철유적이 남아 있는 충주 지역 등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제철기술을 복원하기 위한 중장기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결과이다.

2016년부터 발굴조사를 하여 올해까지 3년간 약 600여㎡ 면적에서 이번에 확인한 9기를 포함해 총 20기의 제련로를 발견하면서 충주 칠금동 유적이 명실상부 국내에서 단위면적당 최대 유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3차 조사 결과, 200여㎡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3~4세기대 백제의 대표적인 원형 제련로를 무려 9기(12호~20호)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10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 조업을 위해 제련로가 수명이 다되면 폐기 후 폐기물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제련로를 축조하는 등 총 3개층(하층·중층·상층)에서 제련로를 중첩해 축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러한 사례는 현재까지 국내에 알려진 것으로는 유일하다.

▲ '하층(5호로, 왼쪽)과 중층(16호로, 오른쪽) 제련로 목조시설 전경'.(사진=문화재청)

이번 조사 결과는 백제의 제철기술사를 복원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기대된다. 이렇게 장기간 조업을 위해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 지역에 중복적으로 철 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변에 다수의 철광산지가 있고, 수로를 이용해 연료(목탄)을 쉽게 조달했다.

또한, 한강 수운(水運)을 통한 유통망이 발달하는 등 충주만이 가진 탁월한 지하자원과 입지 조건 덕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충주는 고대 백제뿐만 아니라 고려·조선 시대까지도 국내 제철생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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