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그때를 아십니까

정기예금 최고 30%

企銀(기은) 광고40년 발간

저금리시대 격세지감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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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利여 아, 옛날이여…

‘정기예금 최고 3할(30%)’ ‘1백만원 예금하면 매월 25,000원씩 드립니다.’

금리가 4%대로 추락,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요즘상황과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문구지만 60년대 버젓이 신문에 등장했던 광고다.

이것은 기업은행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발간한 ‘기은광고40년’ 책자에 수록돼 있는 자료다.

기업은행이 창립되던 1961년부터 2001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10년 단위로 집행됐던 신문과 잡지, 리플릿(광고나 선전에 쓰이는 한 장짜리 인쇄물) 광고물 사진들이 한국의 시대상황과 당시 경제여건, 금융상품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던 60년대는 정부가 산업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저축을 최대한 동원한 시기였고 은행이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때였다.

이러한 정부의 저축 장려정책과 맞물려 60, 70년대엔 ‘한 가정 한 통장 갖기 운동전개’ ‘저축은 생활의 지혜’ ‘장농안의 금보다 유리’ 등의 광고가 많았다.

가정은 물론이고 직장과 학교에도 예금통장갖기 캠페인이 크게 일었다.

요즘 20대들에게도 국민학생시절 월요일만 되면 담임선생님께 통장과 꼬깃해진 돈을 자랑스럽게 내밀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저축장려운동시절 ‘장학적금’

‘계보다 유리한 이자지급’이란 광고는 주민들이 저축보다는 계를 선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60년대만 해도 이제 막 금융광고가 생겨나던 시기라 광고의 완성도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자료의 설명이다.

현상공모로 정해진 은행의 심벌마크와 로고타이프가 간부들의 기호에 따라 그 형태가 수시로 바뀌기도 했다.

기술부족으로 광고의 헤드라인 문자도 일일이 손으로 그려서 사용했고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사진보다는 간단한 문양이나 삽화를 넣던 시절이었다.

광고에 대한 인식과 제작여건의 후진성 때문에 촌스럽고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68년 기업은행 본점이 신축 이전되고 은행의 전반적인 이미지 개선 노력이 병행되면서 광고도 함께 개선됐다.

‘저축은 국력’. 70년대 금융시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경제가 한층 물량화되고 고도화되던 70년대 전반은 8·3긴급경제조치와 유류파동의 불황속에서도 제2금융권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개발되는 등 금융시장은 활기를 띄는 모습이었다.

근로자를 위한 ‘목돈마련저축’, 취학아동과 취학전아동을 위한 ‘장학적금’ ‘어린이예금’도 이때 처음 나왔다.

기업은행이 실시한 야간은행 점포 광고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광고는 시리즈로 이어지는 신물돌출광고가 주류를 이뤘고, 국책은행으로 정책홍보성 광고에 동원되기도 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은행이지만 70년대부터는 중소기업과 일반고객을 타겟으로 한 광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전담기관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일반예금상품을 광고하는 등 이원적인 홍보전략을 사용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금융자율화로 은행간 광고전이 치열해지고 광고제작에도 질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사진식자라는 것도 이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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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개방 다양한 상품도입

80년대는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면서 다양한 부대 서비스업무가 도입된 시기였다.

공과금수납업무, 365일자동화코너, BC카드업무와 팩토링업무(기업의 외상매출채권을 사서 자기의 위험부담으로 채권의 권리와 대금회수를 집행하는 업무)가 기업은행에 도입됐고 중소기업금융채권 발행을 실시했다.

88년 부분적인 금리 자율화 시행으로 금융광고가 더욱 활기를 띄게 된다.

각 은행마다 앞다퉈 내놓은 엇비슷한 예금서비스와 부대서비스들이 각축전을 벌였고 기업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손쉽게 목돈을 만들 수 있고 간단히 융자도 받을 수 있는 새살림적금’ ‘일석삼조 가계종합적금’ 등 기업은행의 일반금융상품 광고는 촌스럽고 디자인을 찾아볼 수 없지만 꾸밈이 없어 더 신뢰가 간다.

이미지광고는 ‘가정에는 행복을, 기업에는 번영을’같은 카피문구를 사용해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을 알리는 전략을 폈다.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광고인쇄 기술에 컴퓨터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세련된 서체와 다양한 컴퓨터그래픽이 사용되는 등 광고 디자인과 인쇄기술이 크게 향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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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변천사…광고사료 가치

90년대부터는 파격적인 금융상품들이 개발돼 금리 파괴형, 절세형 예금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기업은행은 93년 녹색환경통장을 금융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고 고객들에게 ‘스피드뱅크’ 이미지 심기에 주력했다.

97년 ‘위환위기태풍’이 불어닥치자 은행들은 보다 강력한 시장전략을 추진해야 했다.

국민들이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안 것도 이때였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보증하는 국책은행의 이미지를 살려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광고전략을 실시했다.

망하지 않는 은행, 정부가 공인하는 은행으로서의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미지광고에 유명 부부모델을 등장시켜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을 위한 토털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은행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김종창 기업은행장은 발간사에서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지난날의 광고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예견해 보고자 이 책자를 발간했다’면서 ‘앞으로도 중소기업은 물론 누구나 거래할 수 있는 친근한 기업은행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관계자는 “광고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은행 설립에서부터 중소기업 지원은행으로서의 역할, 최근의 활동상, 안전하고 듬직한 우량은행으로의 탈바꿈 등 은행의 발전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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