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너는 뭐 하고 있는가? 나는 추상을 넘어,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인 상태에서 선에 도달했다."

'10일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설치된 '산의 동쪽-서사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병기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백세시대를 실감케 하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한국 최고령 현역 김병기(103) 화백이 신작과 대표작을 선보이는 '여기, 지금'전을 4월 10일부터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 마련했다.

지난 2016년 상수(上壽, 100세)를 맞아 진행한 '백세청풍(百世淸風), 바람이 일어나다'전 이후 3년 만의 전시에는 김 화백의 최신작업과 대표작 20여 점이 함께한다.

한 세기를 넘어선 그의 그림에 대한 입지는 확고해 보였다. 김 화백은 "20세기는 추상을 만들고, 그것을 터득하는 시대였다. 나도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것 같다"며 "사실에서 추상으로 변하고, 남의 기성품에 사인만 해서 인기를 얻는, 마치 현대미술이 공장 미술이 된 것에 대해 경계를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한 "예술에 있어 '1+1'의 답은 2가 아니다. 3도 되고, 5도 되는, 모든 게 다 되는 세계다. 복합성의 예술, 그것은 창의적 복합이다"라며 "노자의 세계는 0이다. 나는 노자 철학을 존중한다. 시간의 단면이라는 점에서 실존주의도 노자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병기, '다섯개의 감의 공간(Persimmon of Five Spaces)'. Oil on canvas, 65 x 100cm, 2018.(사진=가나아트)

전시명 '여기, 지금'은 미국 생활 중 접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따온 것이다. 화가는 리오타르의 말대로 '무엇이든 다 되는 세계' 즉,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다.

김병기 화백은 이러한 리오타르의 '여기, 지금'이라는 개념을 동양 사상의 '무위'아는 개념과 동일하게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빈 캔버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무위'이자 '지금'이다.

이 개념은 그의 그림에서 분할과 여백이라는 요소로 나타난다. 이는 김병기만의 독특한 '선묘'로 탄생된다. 김 화백은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 내는 방식으로 빈 여백을 만든다.

김병기, '성자(聖者)를 위하여'. Oil on canvas, 130.3 x 97cm, 2018.(사진=가나아트)

하나의 선으로 구현되어 조형적이면서도 비조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또한 빈 공간과 대조되도록 화면 중앙에 짧고 강렬한 필선을 가득 채워 넣음으로써 선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추상화를 완성한다.

103세 생일을 맞은 4월 10일 전시장을 찾은 김 화백은 "내 작품 하나하나 눈물이 핑 도는 상태가 있다. 나에게 있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의 신호는 코끝부터 짜릿함이 든다. 그러면 작품이 완성이 된다"고 말했다.

작품을 얻는 것은 이성이 아닌 하나의 감성을 갖고 접할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는 설명이다.

'10일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작품 설명회에 함께한 김병기 화백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왕진오 기자)

전시장 1층에 걸린 노란색이 강하게 들어간 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컬러풀한 작업을 하고 싶다"며 "한국은 단조로운 나라가 아니듯, 오방색에서 오는 다양한 색채를 살려야 한다. 무색이나 단색으로 하면 우리 전통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걸어온 김병기 화백은 그가 오랜 기간 화업을 이어오며 고심한 고뇌의 결과물을 신작에 담아냈다. 그가 그려내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 '지금'을 볼 수 있는 자리이다.

내 그림은 인생처럼 완성이 없다. 항상 볼만 한데도 계속 손대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4년간 그린 것처럼 지속적으로 손을 대고 있는 화가다"라는 말처럼 김 화백의 작업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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