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TV>

[정보라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연초부터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를 이어가던 외국인 투자자가 ‘팔자’ 기조로 전환해 7거래일 연속 매도 행진으로 올해 최장기간 순매도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 우려와 함께 원·달러 환율 최고점 경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지수에서 한국 시장 비중 축소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1986억 원 순매도했다.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연속 매도 행진에 7거래일 만에 총 1조9870억 원어치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5.18% 떨어졌다.

올해 들어 외국인의 최장 순매도 기간은 지난 2월 8∼15일의 6거래일이었으나 오늘 그 기록이 깨졌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11월 13∼22일 8거래일 연속 순매도 이후 최장기간 기록을 다시 쓸 수도 있다.

특히 외국인은 지난 16일 코스피 시장에서 4667억 원을 순매도하며 하루 순매도 규모로는 지난해 10월 23일 5654억 원 이후 약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도 1709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지난해 3월 27일 1781억 원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앞서 외국인은 올해 꾸준히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며 1월 4조500억 원, 2월 1408억 원, 3월 3009억 원, 4월 2조3921억 원 등 주식을 사들였으나 이달 들어 1조2685억 원 순매도로 전환했다.

대외 악재, 2조 원 추가 매도 가능

이 같은 외국인 자금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협상의 격화로 달러·금·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기대와 함께 북핵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든 것도 외환시장에는 부담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 이슈는 막판 타결이라는 희망의 끈을 아직 놓을 때는 아니지만 적어도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단기적인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원·달러 환율도 며칠 새 연고점을 거듭 갱신하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17일 원·달러 환율은 1195.7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2017년 1월 11일 1196.4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최근 원·달러 환율이 2017년 초 이후 가장 높은 레벨인 1190원 수준까지 올랐다”며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원화 약세 국면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오는 28일(미국 현지시간)부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EM)에서 한국 시장 비중이 줄어든다. 중국 A주에 26개가 신규 편입됐으며, 기존 238개 A주의 포함 비율이 5%에서 10%로 확대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르헨티나도 각각 30개, 8개 종목 편입이 진행됐다. 이번 변경으로 한국의 EM 내 비중은 0.48%포인트 감소하게 된다.

이에 따른 패시브 자금(지수를 단순 추종해 시장 수익률을 목표로 운용하는 자금)의 이탈로 외국인 수급 악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3개월의 글로벌 증시 흐름을 보면 MSCI 비중 축소의 부정적 영향이 상당 부분 반영돼 한국 시장은 미국 대비 10%포인트, 중국 대비 14%포인트가량 하회했다”며 “이번 MSCI 변경으로 남아 있는 패시브 자금의 기계적인 자금 집행으로 인해 5월 월간 기준으로 1∼2조 원가량의 외국인 순매도가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도 “국내 증시에서 MSCI 비중 변경에 따른 외국인 패시브 자금의 매도 규모는 1조∼1조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며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불확실성 시점과 맞물리면서 단기적인 수급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환율 상승, 채권 매수로 차익 실현

반면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환차익 여건이 좋아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 매수는 늘어났다. 지난 15일 기준 상장채권 보유잔고는 113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8월 114조3000억 원 이후 최대 규모다. 이달에만 약 3조4000억 원이 순유입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는 자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채권 시장에서는 순유입이 늘어나는 움직임을 볼 때 하반기로 갈수록 원·달러 환율은 안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과 달리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은 지난달에 이어 순유입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재차 연고점을 경신했지만 최근 한국의 CDS프리미엄(5Y)은 안정적인 상황으로, 경상수지 및 외환보유고 등 양호한 대외건전성과 하반기 수출 경기 턴어라운드 가능성을 고려하면 원화의 추세적인 약세 압력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편에서는 최근 미·중 무역분쟁과 관련한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의 업종별 변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을 넘어설 경우에는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업종은 없다”면서도 “다만 상대적 피난처로 통신서비스나 미디어, 소프트웨어 업종이 부각될 여지가 크다”고 예상했다.

반면 “미·중 무역분쟁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환율이 반락세로 돌아설 경우에는 최근 환율 상승으로 인해 낙폭이 컸던 철강·화학 등 소재주와 에너지주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유효해 보인다”며 “환율의 기술적 고점 통과를 시장 진입 신호 중의 하나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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