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5년(544년), 경(卿) 설치

영화 '반지의 제왕' 스틸컷.
영화 '반지의 제왕' 스틸컷.

'권력'의 속성에 대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부패와 권력 남용에 관해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이라는 당시 거대한 나라의 관제 영향도 있었지만, 권력이라는 힘을 견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오롯이 한반도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주어진 권력이 절대권력이 될 수 없도록 견제하는 제도와 수단은 존재해 왔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권력이 절대권력이 되지 못하게끔 하는 정치적 제도와 기구가 잘 발달해왔다. 이에 이코노미톡뉴스는 2020년 8월 올해로 창간 21주년을 맞아 권력을 감시했던 한국언론의 태동을 권력감시 즉, '관리(공무원) 감찰'에서부터 절대자(통치자)의 감시까지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펴보려 한다. (편집인주)

[안경하 기자·배만섭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고대 삼국시대에 신라에는 진흥왕 5년(544년)에 백관(百官, 관리), 즉 지금의 공무원을 감찰하는 직무를 맡아보던 중앙관제로서의 '경(卿)'이 설치되었다.

삼국 신라시대, '사정부'+'외사정'+내사정전


태종무열왕 6년(659년)에는 '경'이 사정부(司正府)로 격상되었고, 경덕왕 때 숙정대(肅正臺)로 바뀌었다가 혜공왕 때 다시 사정부로 복구되었다.

사정부의 관원으로는 영(令) 1명, 경(卿) 2명, 좌(佐) 2명, 대사(大舍) 2명, 사(史) 15명을 두었고, 경과좌에는 내마(奈麻)나 대내마(大奈麻)가 보임되었다고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영(令)은 지금의 장관급으로, 신라의 17 관등 중 제5등 관계에 있는 대아찬(大阿飡)이  임명되었으며, 경(卿)은 차관급으로, 아찬 1명이 임명되었다. 문무왕 15년(675년)에는 2명씩 임명되었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 문무왕 때에는 추가로 '외사정(外司正)'을 설치해 지방 세력의 관리들도 감찰했다. 외사정은 주마다 2인, 군마다 1인 등 총 133명을 임명해 지방에 파견시켜 감찰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신라의 재상 거칠부(居柒夫, 502년~579년)는 진흥왕 6년 545년에 대아찬으로서 왕명에 따라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진흥왕순수비에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사진은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거칠부. (사진=드라마 갈무리)
신라의 재상 거칠부(居柒夫, 502년~579년)는 진흥왕 6년 545년에 대아찬으로서 왕명에 따라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진흥왕순수비에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사진은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거칠부. (사진=드라마 갈무리)

경덕왕 5년(746년) 때는 왕궁 안의 일을 감독하는 내사정전(內司正典)을 설치했다. 관원으로 의결(議決) 1인, 정찰(貞察) 2인, 사(史) 4인이 임명되었다. 감찰 결과, 잘못이 드러나며 처벌이나 관직을 벗게 하였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에도 관리들을 감찰하여 처벌한 기록이 있어서 감사기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떤 기관이 어떤 감사 기능을 담당했는지 정확히 남아있는 기록은 없다. 

한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옛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에도 '중정대(中正臺)'라는 감찰기구가 있었다.

(그래픽=이톡뉴스)
(그래픽=이톡뉴스)

 

시대별 감찰 기관

신라: 사정부(경), 외사정, 내사정
발해: 중정대
고려: 어사대(사헌대, 금오대, 감찰사, 사헌부)
조선: 사헌부
갑오개혁: 도찰원

고려 시대의 관리 감찰기구로는 당, 송나라의 관제를 본뜬 '어사대(御史臺)'가 있었다. 중국과 다른 점은 중국의 어사대보다 그 위상이 훨씬 셌다는 것이다. 

처음 사헌대(司憲臺)라 칭하던 것을 995년(성종 14년) 어사대로 고쳤고, 그 후 1014년(현종 5년)에 금오대(金吾臺)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275년(충렬왕 원년)에 감찰사로 고쳤다가 1298년(충렬왕 24년)에는 조선 시대에서도 사용된 이름인 사헌부(司憲部)로 바뀌는 등, 고려 말까지 변동이 컸다.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郞舍)와 함께 대간(臺諫)으로 불리면서 간쟁(諫爭), 봉박(封駁), 서경(署經)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픽=이톡뉴스)
(그래픽=이톡뉴스)

작금의 대한민국도 ,감찰기관은 아니지만, 1960년 11월 11일, 당시 장면 총리가 국가안전의 임무를 하는 '중앙정보위'를 설치한 이후, 1961년 김종필이 정보위와 시국정화단를 통폐합하면서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대통령 산하 '중앙정보부'로 발족했고, 지금까지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되었다. 1963년 12월 17일부터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는 기구이기에 정치적 성향에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편집=이톡뉴스 디자인팀)
(편집=이톡뉴스 디자인팀)

한편, 대한민국 대통령의 직속기관은 국가정보원, 감사원, 국가안보실, 대통령비서실, 방송통신위원회, 대통령경호처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이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와 대통령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기구인 반면에 대통령 직속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60년 국정원(NIS)' 히스토리

1960년 11월 11일, 중앙정보위(장면 설치)
1961년 ~ 1981년, 중앙정보부 (김종필 통합)
1981년 ~ 1999년, 국가안전기획부
1999년 ~ 2020년, 국가정보원(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부)
2020년 ~ 대외안보정보원(문재인 정부)

1479년 동안 과거 삼국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감찰 기구는 국가에서부터 설치되어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을 감찰하는 기능을 운영해왔다. 지금의 감사원, 공수처랑 업무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구들은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능이지 권력에 대한 견제의 자체적인 기능은 약했다. 특히나 절대권력의 상징이던 왕의 권력까지는 견제 및 감시하는 독립된 기구는 조선시대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유럽의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기원전부터인 도시국가 스타르타(BC 9세기~BC 195)에서는 2명의 왕을 견제하고 그 권력 감시를 하는 독립적인 집정관 체제가 존재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왕을 2명으로 선출해 왕이라도 서로 견제하게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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