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이코노미톡뉴스] 개봉이 어려운 탓인지, 개봉을 해도 관객이 많이 못 들어오는 환경 때문인지 최신 영화들이 너무 빨리 IPTV의 VOD 서비스로 제공된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는데 개봉도 안한 영화들이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로 직행한다는 뉴스를 보니 뭔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영화가 처음 세상에 나오는 걸 개봉이라고 부를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옛날 사람 같은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을 때, 그런 심난한 마음을 위로해줄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 스틸컷.

시네마천국이 가르쳐준 진정한 영화의 힘


<시네마 천국>은 영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영화관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 성장한 사람이 결국은 유명 영화감독이 되는, 덕업일치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영화관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알프레도와 토토, 그리고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고, 알프레도에겐 인생과 눈까지 희생하며 지켜온 장소, 토토에겐 첫사랑의 아픔이 되고 영화감독의 성공의 자양분이 됐던 장소다. 그러나 떠난 후 30년 만에 찾아온 고향의 영화관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시칠리아의 작은 섬 마을에도 TV는 밀려들어 왔고 VHS의 물결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영화가 영화관보다 맷집이 좋은 듯하다. 단관 영화관이 비틀거릴 때도 영화는 잘 싸우며 버텼기 때문이다. VHS와 DVD가 나올 때도, 일본 문화가 개방 됐을 때도 영화 산업이 어려워질 거라는 말을 했었다. 심지어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던 90년대에는 누가 영화를 보러 나가겠냐는 걱정도 있었다. 오히려 그 후 휘청거린 건 블록버스터 같은 대여점이었다. HBO의 등장과 케이블 영화 채널의 다양함에 밀려났던 것이다. 혹자는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망했다고도 하기도 하는데 어찌됐든 영화를 빌려다보는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빌려다 보는 시대가 저문 후 영화는 멀티플렉스와 함께 천만 관객 영화가 흔해지는 시대를 맞이한다. 영화의 힘은 그렇게 센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시네마 천국>에서 알 수 있듯이 노스탤지어에 있지 않을까?

영화관 - 영화가 머물고 싶은 곳


어린 시절 잠시 쌍문동에 살았었다. 아버지는 대로변 건물 2층에서 태권도장을 하셨는데 그 건물 뒤에 천지 극장이 있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동광극장이 있었고,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대지극장이 있었다. 4대문 안에서 개봉한 영화들은 대지극장-동광극장-천지극장 순으로 내려 왔다. 개봉관, 재개봉관, 동시상영관을 거쳐 내려오는 것이었다. 의정부에서 십대를 보낼 때는 복합 상영관이 막 시작됐었다. 당시 의정부 극장, 중앙극장 등은 크지도 않은 공간을 둘로 쪼개 1관, 2관으로 나눴고, 20대를 보낸 평택에서도 작은 스크린 앞에서 수많은 영화를 봤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쯤 본격적인 대기업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고 그 이후 영화관과 서먹해졌다. 혹자는 영어 movie와 cinema를 구분하면서 무비는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 봐도 무비이지만 시네마는 영화관을 떠나면 시네마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주장에 공감한다. 오랫동안 내게 있어 영화관은 비어 있는 곳을 칸막이 쳐서 여러 영화를 상영하는 단순한 기능적 공간(空間)이 아니라 그곳에서 수행된 관객과 영화, 그리고 관객과 관객 사이에서 오간 수많은 이야기로 채워지는, 우리네 장터와 같은 장소(場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단관 영화관이 그립다. 스크린에 비가 내려도, 지정좌석제가 아니어도, 철지난 영화라도 삼류 영화관에서 수명을 연장하며 걸리던 시절이 그립다. 그 그리움은 단순히 영화나 영화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다. 그 그리움은 각기 다르게 생긴 단관 영화관의 풍채와 그 영화관이 버티고 서 있던 거리, 연인과 팔짱을 끼고 그 거리를 함께 걸었던 기억, 그리고 영화관에 들어가 꼭 붙어 함께 영화를 보던 둘만의 기억이 엉겨 붙어 만들어낸 콜라주 같은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영화가 사람과 장소와 합심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던 시절의 그리움이고, 단관 시절의 영화관만이 가진 아우라이자 노스탤지어다. 영화가 한명의 사람이라면 영화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영화 <더 레슬러>의 주인공 ‘더 램’이 심장이 안 좋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끝끝내 소도시 변두리의 링을 떠나지 않으려했던 것처럼, 영화도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다해 모든 도시의 모든 영화관을 떠돌고 싶지 않을까? 아무리 TV 화면이 커지고 돌비 사운드가 거실을 울려도, 리클라이너 소파가 삼류 영화관 좌석보다 백배는 편하더라도,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마지막까지 상영되며 수명을 다하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를 본 마지막 한명에게까지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길 바라지 않을까?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 토토는 신부님의 검열로 잘려나간 키스 장면의 조각 모음을 본다. 그 필름 안에 담김 파편적인 키스의 모음을 보면서 어른 토토는 운다. 조각난 키스들의 이음이 그가 잊고자 했던 시절의 추억, 덮어두었던 추억들을 순식간에 이어 붙여 선명한 조각보처럼 머릿속에서 펄럭였기 때문이다. 키스 장면을 보는 동안 그가 정말 보고 있었던 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영화관, 놓쳐 버린 첫사랑, 인생의 스승인 알프레도에 대한 추억, 그 모두가 어우러진 노스탤지어였다. 스마트 폰이나 VOD, 넷플릭스로 본 영화가 과연 십년 후, 이십년 후에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나부끼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본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영화
영화 "노스탤지아(Nostalghia, Nostalgia, 1983)" 스틸컷.

흐릿해진 기억, 선명한 노스탤지어


밑에 층까지 침범해오는 달달한 팝콘 냄새와 영화 시작 전에 쏟아지는 20여분의 광고에 지치곤 해서 멀티플렉스를 찾는 게 뜸해졌지만 어디 가서 영화를 싫어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으니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해 한다. 영화관과 서먹하면서 영화랑은 친하다고 말하는 게 영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영화관에 자주 가야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그 옛날 사람은 좋아하는 배우들의 옛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여전히 영화 채널을 즐겨 본다. 봤던 영화가 나오면 그 영화를 본 영화관과 그 영화를 함께 본 옛사랑의 얼굴이, 함께했던 어느 하루가 고스란히 함께 떠오른다. 영화와 영화관, 옛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나만의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저장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저장 된 이야기는 기억 저 뒤편에 묻혀 있다가도 어제 일처럼 불쑥 눈앞에 추억을 펼쳐 놓는 노스탤지어의 힘을 과시한다. 그 예고 없는 소환의 선명함을 위해 옛 영화가 리마스터링 되듯이 기억도 선명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이 요즘 부쩍 커져 간다.

시인 기형도는 영화관에서 죽었다. 심야동시상영관이었던 파고다 극장이었다. 스물아홉 살, 시인이자 기자였던 젊은이가 왜 하필 거기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 장소의 미스터리와 함께 그의 시는 <질투는 나의 힘>과 <봄날은 간다.>와 같은 영화 제목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의 시는 또, “꿈을 생포”하고 싶어 천국 같은 영화관을 전전했던 할리우드 키드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다. 그 키드는 여전히 <문학과 지성 시인선> 80번인 그의 시집을 간직하고 살면서 여전히 단관 영화관만이 영화의 노스탤지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으며 옛날 영화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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