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가 공익 캠페인을 하는 법

Heinekend의 "Cheers to all" 광고 갈무리. (사진갈무리=하이네켄 공삭 유튜브)
Heinekend의 "Cheers to all" 광고 갈무리. (사진갈무리=하이네켄 공삭 유튜브)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최근 하이네켄 광고가 재미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쉽게 한다. 예를 들어 젠더 문제는 어떻게 얘기해도 어렵다.

남녀에 대한 차별적 인식,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자는 메시지는 잘 해봐야 캠페인이고 대 놓고 지르면 프로파간다가 되어 버린다. 하이네켄은 이걸 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말한다. 맥주와 칵테일만으로. 딱 두 장면이면 된다. 남녀 커플이 앉아 있다. 웨이터가 쟁반에 맥주와 칵테일을 들고 온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맥주는 남자 앞에, 칵테일은 여자 앞에 놓는다. 커플은 웃으며 바꾼다. 다음 장면엔 다른 테이블에 남녀가 등지고 앉아 있다.

웨이터는 들고 온 맥주와 칵테일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 테이블에는 칵테일, 남자 테이블에는 맥주를 내려놓는다. 둘은 잠시 멈칫하며 둘러보다가 서로를 발견하고 주문이 엇갈렸음을 알고 어깨 한번 으쓱하고 서로의 잔을 바꾼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풀 버전에는 다른 장면도 나오는데 이번엔 화랑이다. 웨이터가 샴페인과 맥주를 든 쟁반을 들고 손님들 사이를 휘젓다가 한 여성 앞에 선다. 그리고 여성을 향해 샴페인을 내민다. 여성은 먼 쪽의 맥주를 집어 들고 지나가던 스티븐 시갈 스타일의 동양 남자가 샴페인을 집어 든다. 네 번째 장면의 바텐더는 무의식적으로 칵테일은 여자에게 맥주는 남자에게 건넨다. 카피는 간단하다. “men drink cocktails too.”

우울한 이 시대에 지켜야 할 규칙도 경쾌하게 보여준다. 바에서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바의 화장실에서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돌아오는 좁은 보도에서 마주친 사람과는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서로 먼저 지나가라고 양보하다 최대한 벽에 붙어 지나친다. 생일 파티 케이크는 작은 손거울로 끄고, 안주로 나온 감자튀김은 같이 먹지 못하게 말린다. 병을 마주치던 건배는 떨어져 살짝 드는 걸로 바뀌었고 바의 의자들은 거리두기 때문에 중간 중간 앉지 말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카피는 역시 간단하다. “There's one thing better than a night out.” 연결이 콘셉트인 광고에서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마시면서도 모바일 환경을 이용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카피는 더 멋지다. “It's not the best get-together, but it's the best way to get together.”이다. 비대면 시대의 이상적 술판을 위한 슬로건이다.

공공 캠페인의 어려움


심각한 걸 편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사람들이 지켜야할 공공 규칙을 우아하게 전달하고 정책 홍보를 쉽고 재미있게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걸 하이네켄이 용케도 해낸 것이다. 공익 광고의 주제를 맥주 회사의 언어로 유쾌하게 설명하는 일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맥주를 광고하면서도 공익적인 메시지까지 담는 다는 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자장면을 먹으려 했던 무한도전의 정준하의 시도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그 어려움의 사례를 전해 들었다. 인근 지역의 출산 장려 정책 캠페인 영상이 지역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 간지 며칠 만에 내려온 일이 있었다. 처음 그 영상을 우연히 보곤 사무실에 들어가 감독과 영상을 다시 봤다. 너무 가볍다 싶었지만 우리 감각이 요즘하고 맞지 않나 보다하고 웃고 넘어갔었다. 그 후 우리 일로 섭외 한 모델이 마침 그 영상에 나온 모델이어서 뒤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영상이 시내버스와 전광판 등에 나간 뒤로 시민의 민원이 들어왔고,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의도는 좋았을 것이다. 제작사의 설득도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미지수였을 뿐이다.

홍보 담당 공무원과 우리는 어찌 보면 같은 고민을 하지만 저쪽이 훨씬 고민이 많고 그 해결이 어렵다. 우리 같은 무리야 시민과 대중의 눈높이만 고민하면 되지만 저쪽은 윗사람의 안목과 취향도 고려해야 한다. 심할 경우엔 그 고려의 대상이 지역 단체장까지 단계를 밟아 올라가니 해결은 산 넘어 산이다. 문제는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면 애초 합의했고 동의했던, 주무관과 제작사의 제작 의도와 방향이 엉뚱한 산으로 가는 수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영상이 높으신 분만 만족시키고 시민이나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 의도했던 효과의 발생은커녕 종종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변하는 대중, 따라가는 메시지


대학원 시절,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 광고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지 그 정확한 비중을 알아내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마케팅을 위한 광고라면 구매량이나 브랜드 인지도 등으로 그 효과를 어림짐작 할 수는 있다. 설령 목표한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광고주와 광고회사만 고생할 뿐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그러나 보건 의료나 교통 분야 등의 공공 PR은 국민의 일상과 안전, 건강과 생명에 직결 될 수 있으니 그 메시지 구성과 표현 방법이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웃음기 싹 빼고 간단한 그래픽으로 행동 요령을 알리거나 단정적이고 확실한 구호 등으로 행동을 촉구한다. 또 공동체 의식과 시민 의식이 높은 국민에게 이웃 사랑과 가족사랑, 아이들의 미래와 국가의 발전이라는 당위성을 제시해서 정책 참여를 유도한다. 이 사이 어딘가에 유머를 넣거나 가볍게 말한다는 건 담당 공무원은 물론이고 나 같은 크리에이터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으레 꽂혀 있는 책 중 하나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다. 이 책은 첫줄부터 .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고 말하며 이 시대의 상식을 뒤집는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이 책을 탐독했다. 그래서인지 나치의 선전 장관이 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독일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라디오는 가격도 비쌌지만 크기 또한 어지간한 컴퓨터 본체나 작은 냉장고만 했다. 괴벨스는 이 라디오를 국민 라디오라 불렀다. 그 라디오에서는 오직 한 채널, 나치의 방송만 나왔다. PR용어로 말한다면 그야말로 쌍방이 불균형한 커뮤니케이션을 한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그로인해 독일 국민들은 연합군이 독일 내로 진격할 때조차 이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히틀러 최후의 날>이라는 책과 영화를 보면 이 일방적인 선전으로 인해 전장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일방적인 프로파간다의 시대는 한참 전이다. 그 사이 시대와 세상이 바뀌면서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달라져 왔다. 시민의 의식이 바뀌고 취향이 바뀌면서 거기에 맞춰 표현 방법도 변화했다. 관청에서 정책과 시책의 심각성을 아무리 말해도 좀처럼 시민이 움직여 주지 않을 땐 서로의 언어나 문화가 어긋나지는 않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일을 맡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고민해야하고 말이다. 하이네켄 광고처럼 심각한 문제를 진지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말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이건 그야말로 민관 합동으로 오랫동안 고민해야 될 오래 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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