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의 은퇴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념패와 함께 신형 미니밴 교환권을 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작년 11월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의 은퇴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념패와 함께 신형 미니밴 교환권을 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감독의 지인 중에 산청의 지리산 바로 아랫마을이 고향인 이가 있다. 지인의 아버님이 그 산자락 끝에서 감 과수원을 하셔서 감독은 가을이면 수확을 도우러 가곤 했다. 얼마 전 감독이 그 지인을 만나고 오더니 “우리 은퇴하면 같이 산청 안 갈란교?” 묻기에, “세트인데, 당연히 따라가지.”하고 얼른 대답했다.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은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심난 해졌다.

선수들의 은퇴를 보며


이동국이 은퇴 했다. 축구 선수 한명 은퇴 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 싶지만 골키퍼가 아닌 최전방 공격수가 프로 리그 최고 레벨에서 20여 년 간 꾸준히 뛰다 마흔이 넘어 은퇴 했으니 그 은퇴를 되 새길만하다.

현재도 마흔이 넘어 현역으로 뛰는 선수는 전 세계 무대를 뒤져봐도 아마 서 너 명 안 될 것이다. 게다가 이동국은 은퇴하는 해에 팀과 두 번의 우승까지 해냈으니 아마추어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는 것과 비교해도 그 영광과 축하의 화려함이 뒤지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선수의 은퇴 뉴스를 봤다. 우리 또래가 다 그렇듯이 초등학교가 다닐 때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탄생을 목격하고 이십대 때는 농구대잔치를 겪어서 이래저래 좋아하는 프로 선수의 은퇴는 관심 가는 뉴스였기 때문이다. 그 후 바쁘게 살면서 스포츠에 관심 없이 살다가 우연히 국내외 프로스포츠를 다시 보다보니 세월 참 빠르구나, 실감하게 된다.

과거 좋아했던 유명 선수가 이미 감독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 그 선수의 자녀가 프로 선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2002년 월드컵 멤버 중에선 설기현, 황선홍 등이 감독을 경험했고 이영표가 강원FC의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요즘 예능에 열심인 허재의 두 아들은 프로에서 뛴 지 몇 년 됐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도 프로와 국가대표를 넘나들면서 몇 년째 활약 중이다. 세월은 흘러갔고 그 세월 속에 열광했던 선수들도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마 조만간 이동국도 테니스 선수인 딸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아빠로 카메라에 잡힐지 모르겠다. 다들 “뒷일을 부탁하네. 난 이만.”하고 잘도 총총히 다른 삶을 향해 떠나고 또 그렇게 잘들 살아가고 있다.

가야 할 때를 느낀 순간


사실 은퇴 이후의 삶보단 언제 은퇴를 결심했는지가 궁금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동국이 그 결심의 순간을 말한 적이 있다. 팀은 다음 시즌에도 뛰자고 했지만 선수가 먼저 은퇴 결심을 알렸다고 한다. 마지막 시즌 중 부상을 당했을 때 선수 생활 처음으로 초조함을 느꼈고, 몸이 노쇠해지는 건 견딜 수 있고 대책이 있는데 마음이 약해지는 건 참을 수 없었기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그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절로 생각나는 결심이다. 뭔가를 그만둬야 할 때를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그만두는 결심을 하는 건 질적으로 다르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필자도 두어 달에 한번 정도는 술 좀 줄여야할 때임을 직감하지만 여전히 잘도 마시고 있다. 우리 처남 같이 독한 사내는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단호하게 끊지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몸이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은 처서 이후 여름 이불 챙겨 넣듯 잘도 접어서 추억으로 쟁여놓는다.

축구와 농구도 그랬고, 마라톤도 그랬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평생 해도 될 만큼 정신과 신체 건강에 좋은 운동이어서 서른 중반에 접한 이후로 평생 운동으로 점찍었었다. 하지만 인공암벽 타다보면 자연 암벽 타고 싶고, 자연 암벽 타다 보면 험한 암벽 타고 싶지 않겠냐는 아내의 추궁에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딱히 반항도 못해 보고 그만뒀다.

너클볼의 절박함


자체적으로 이것저것 은퇴 시키며 살아왔지만 카피라이터나 작가 은퇴는 최대한 뒤로 미루려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이것저것 어수선히 공부하고, 하루 중 일정한 시간 동안 어떤 글이라도 쓰고 있다. 이런 절박한 노력에 구지 이름을 붙이자면 너클볼의 절박함일 것이다. 팔꿈치나 어깨를 다친 투수들은 수술 후에 종종 은퇴를 하곤 한다. 또 나이가 들어 구속이 떨어져도 은퇴를 고민한다. 그러나 가끔 다른 구종을 익혀 투수 인생 2막을 열기도 한다.

그중 너클볼은 거의 최후의 수단이다. 야구 칼럼니스트 백종인씨가 투수 노경은에 대해 쓰면서 <너클볼의 은총, 두 번째 야구>라는 제목을 붙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는 이 칼럼 막바지에 너클볼러들의 특별한 유대감을 말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왜? 너클볼러라서다. 그건 각별한 의미다.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뜻이다. 막다른 데까지 다다른 투수들이다. 더 이상 마운드에 설 수 없게 된 운명들이다. 팔이 아파서, 공이 안가서, 팀을 못 찾아서…. 유니폼을 벗느냐 마느냐. 실낱 같은 마지막 선택만 남긴 사람들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몇 년 전, 노경은은 은퇴할 뻔 했다. 그러다 옥스프링에게 너클볼을 배웠고 그 덕에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서른일곱이면 코치를 해도 될 나이인데도 그는 던지고 싶어 했기에 배움을 자청했고 그렇게 새로운 투수로 태어났던 것이다.

현역 생활을 최대한 연장하려 이것저것 애쓰고 마음 쓴다는 것은, 이동국의 표현을 빌리면, 분명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약해짐을 순순히 인정하고 일단은 당면한 것들을 착실히 하려고 애쓰고 있다. 작년 가을에는 감독에게 건강검진 받으라고 재촉도 하고 객기 부리지 말고 독감 예방 주사도 맞으라고 했다.

나 또한 아내 말을 순순히 듣고 두 가지 다 했었다. 요즘엔 아내가 돋보기를 하나 사보는 게 어떠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는데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모른척하고 있다.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아빠가 흰머리가 많은 게 그러니 염색을 해보라고 했는데 그 대신 네가 결혼할 때까지 배는 안 나오게 관리하겠다고 약속하고 흰머리를 지켜냈다. 덕분에 꾸준히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딸 등하교 길을 동행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많이 걷는다.

너클볼을 향한 투수의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뭔가를 습득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젊은 후배들 만날 시간을 내기 위해 애 쓴다. 요즘 같은 시국엔 이런 친구들의 SNS를 넘나들며 소위 트렌디 한 감각의 결을 읽어내려고도 한다. 현업과 은퇴의 경계선에 있는 많은 이들이 나처럼 자신의 선수 생명을 연장해줄 너클볼 같은 뭔가를 습득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절박하게 스승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 절박함으로 선택한 무언가가 나와 당신, 우리의 은퇴를 조금 뒤로 미루는 너클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현역 연장의 꿈


감독과의 술자리에서 은퇴 후 산청에서 뭐할 건지 궁리했다. 농사는 짓지 말자고 했다. 그건 평생 농부로 살아온 이들에게 죄스러운 짓이니. 장사도 하지 말자고 했다. 그건 둘 다 소질 없으니. 감독은 영상 일을 해 왔고 드론도 잘 띄우니 그 재주로, 나는 이렁저렁 글 써서 먹고 살아 왔으니 그런 잡다한 재주로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며 살자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십 몇 년 후의 일이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젊은 현역들은 관심 없는 너클볼 같은 생소한 분야까지 공부해가면서, 세월 덕에 익혀진 노련함과 유연함을 갖고 꾸역꾸역 광고 일을 좀 더 해야지, 이왕 할 것 잘 해야지 마음을 다잡고 있다. 좀 더, 현역 연장이다. 그 뒤, 너클볼도 못 던질 순간이 언젠가 오면, 그 은퇴의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산청이든 어디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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