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감 투철한 그 날의 팩트 중계 방송

"조선왕조실록 - 왕PD의 토크멘터리" 북커버.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조선왕조실록 - 왕PD의 토크멘터리" 북커버. (사진=이코노미톡뉴스)

[김윤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세조 5년 1월 15일, 세자 우정자 허종은 상소문에서 "…언로를 열면 국가가 평안해질 것이고, 언로를 닫으면 국가가 위태로울 것입니다"라고 상소하면서 임금은 '언론'에 귀를 열고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왕현철 KBS PD의 신간 "왕PD의 토크멘터리 조선왕조실록"에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바로 세조의 소통방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술자리'를 검색하면 총 1,205건 중에서 78.88%(577건)으로 14년간 재위한 세조 때의 일인 점이 매우 놀랍다. 이는 필자가 가진 세조의 이미지가 건조하고 위엄이 강한 군주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금주령을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던 세조는 즉위 5개월 차, 조정 대신들과의 술자리에서  술김에 어탑까지 올라간 종3품 사헌부 집의 이예를 다음 날에 벌을 주기는 커녕 선물까지 건낸 일화가 있다. 심지어는 새벽회의를 마치고 술자리가 열린 적도 있었다. 술주정 속에 묻어나는 때로는 진실된 신하들의 간언을 세조는 소통으로 이어갔고, 이를 정사(政事)에 참고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감 도는 그날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이제 복위(復位)는 없다." by 태종


태종 18년 8월 8일, 태종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개월 차 세자 충녕에게 대보를 전해주며,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이 또한 족하다"며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이 즉위했다. 한편,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은 부왕 태종에 의해 경기고 광주로 밀려났다.

조선 설계자, 정도전 이전 '조준', '남은' 있다


흔히들 조선의 설계자로 많이 알려진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에 의해 남은, 심효생, 박위, 유망수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도전에 대한 단점이 기술돼 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자칭 장자방 정도전은 태조에게 조선 건국에 뜻을 달리한 56명을 처벌해야 한다는 즉위교서 초안을 건낸 적이 있는데, 이에 태조는 그들의 처벌을 끝까지 거부하다 그들 일부에게 곤장 처벌을 내리고 섬 유배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은 정도전과 남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조선의 첫 설계자는 정도전이 아니었다. 남은(南誾)이었다. 남은은 이성계를 비밀히 왕으로 추대할 것을 논의하고 이방원, 조준, 정도전 등 모두 52명을 모았다. 사실, 고려말 정몽주는 이성계의 핵심 세력인 조준, 정도전, 남은 등을 탄핵해 죽이려고 했었다.

이처럼 고려말부터 조선 건국과 세조까지 이어지는 실록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말해주는 이야기 모두가 흥미롭다. 중간중간에 삽화와 사진이 많아 지루함이 전혀 없어 글이 술술 읽하는 매력이 이 책에 감겨있다. (왕현철 지음, 스마트북스 2021-11-10 발간, 328쪽, 소프트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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