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지난봄에도 운동에 관한 칼럼을 썼다. 그때 운동의 동기를 말하며 한 단락을 시선(視線)에 할애했다. 그 분량의 아쉬움에 언젠간 이것에 대해 좀 길고 깊게 써보리라 다짐했었는데, 올 초 다이어트를 결심한 서른 살의 조감독과 대화를 하다 그 다짐이 생각났다. 마침 다이어트와 운동에 대한 결의를 실행할 계절, 봄이 코앞이니 겸사겸사 이미지와 시선이 운동 동기로 얼마나 중요한지 좀 더 상세히 써보기로 했다.

시선과 이미지


앞서 말했듯, 올 초 첫 출근 때, 갓 서른을 넘긴 조감독과의 대화 끝에 자기 개발 얘기가 나왔다. 조감독은 영화와 영상 이론을 더 깊이 알기 위해 관련 전문 서적도 읽고 다이어트(키 175 정도에 몸무게는 세 자리 수에 육박한다)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다이어트에 “또” 실패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거의 평생 운동을 해 왔고, 헬스클럽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1년 간 열심히 다녀 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이어트 실패의 여러 이유 중 명확한 하나를 말해줬다. 바로 자기 이미지와 시선이라는 동기다. 단언컨대 이 동기는 건강상의 이유로 살을 빼야만 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운동 동기다.

조감독은 애인이 없다. 하다못해 마음에 둔 이성이나 썸을 타는 사람도 없다. 꾸미는데도 관심 없다. 모임도 없고, 사교적이지도 않다. 보이고 싶은 욕망도,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봐줄 사람도 없는데 다이어트를 하고 몸짱을 향한 욕구가 있을까? 구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다못해 종교인, 영업인, 교사 등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사람도 아닌데 무슨 영화를 보자고 살을 빼고 꾸미겠는가?

이렇게 명백한 다이어트 실패 이유가 또 있을까? 당신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헬스클럽에 그렇게 한도 책정 없이 횟수 제한 없이 “기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살 빠진 자기 자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날씬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서이거나, 날씬했던 과거의 자기 모습을 회상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습이 오래되어 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더 나아가,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살 빠져서 멋진 몸매가 되도 보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헬스클럽과 필라테스 같은 운동시설에 거울 벽이 있는 것도, 은밀한 시간에 특화된 공간인 모텔에 거울방이 있는 것도, 고급 호텔 룸에 종종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욕실이 있는 것도,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보디 프로필을 예약해 놓고 운동하는 것도, 결국 사람은 보고 보여 지는 존재임을 웅변한다.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사진=공식 인스타그램)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사진=공식 인스타그램)

대중의 몸매, 대중의 시선


주체를 붙잡는 특정 시선이 없어도 몸매를 신경 쓰며 체형 관리를 하고 운동을 한다는 건 불특정한, 더 거대한 시선이 있음을 의미한다.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와 같은, 스크린으로 거의 모든 곳에서 연설하면서 감시의 눈길을 보내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총사령관 같은 시선 말이다. 이 시선은 사회와 미디어, 대중이 만들어낸 시선이다. 그 시선은 메두사의 시선과 같아서 마주치면 돌이 되어 사로잡히는 그런 시선이다. 다이어트를 욕망하며 고액의 PT를 끊거나 헬스클럽에 기부를 준비하는 사람 중 다수는 이 시선에 사로잡혀, 결론적으로 말하면, 딱히 보여줄 사람도 없으면서도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위해 몸을 가꾸려 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길에 돈을 뿌리는 셈 아닐까?

이렇게 정확히 지목하여 특정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 즉 사회의 시선에 내몰려 몸의 생김새를 만들려고 하니, 당연히 막연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샘플, 즉 견본이 있으면 편리하다.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 잘 팔리는 상품에는 대개 유행과 표본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의 모양새도 그런 게 있을까? 물론 기자의 모양새, 카피라이터의 모양새, 감독의 모양새의 견본이 미용실이나 성형외과에도 있을 리 없고 그 어떤 패션 카탈로그에도 나와 있지 않다. 결국 견본을 찾는 사람들은 요즘 유행하는 몸매나 유명인의 모양새를 본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성형외과에서 000의 눈으로 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미용실에서 무턱대고 원빈 스타일로 해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말이다.

특정 몸매를 추종하여 그걸 닮기 위한 노력의 역사는 제법 됐다. 대표적으론 케이트 모스 현상이 있다. 그녀는 한 청바지 광고로 유명했는데, 이 모델은 그 어떤 모델보다 더 깡마른 몸매로 유명했다. 그녀의 인기와 광고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결국 이 모델의 몸매를 흉내 내기 위해 미국의 여학생들이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해서 사회 문제가 됐다. 몇 년 전엔 타이 갭(thigh gap)이 유행했다. 타이 갭은 말 그대로 허벅지 사이의 공간을 말한다. 이 빈 틈은 다리가 휘지 않는 이상 하체의 살을 무지하게 빼야, 그러니까 허벅지에 거의 살이 없어야 만들어진다. 당연히 이 때는 하체 운동 열풍이 불었다. 이 열풍을 바로 잠재운 게 킴 카다시안이다. 킴 카다시안은 타이 브로우(thigh brow)를 유행시켰다. 앉았을 때 허벅지가 접혀서 골반에 큰 주름이 생기는 게 당연하고 아름답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때는 당연히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를 닮기 위한 여성들의 글로벌한 노력이 있었다.

SNS에 만든 시선들


모든 유행이 대중의 시선이 쏠릴 때 불이 붙듯이 몸매의 유행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명품이 없거나 쇼핑을 안 하면 불안해 지는 것처럼 흉내 내야만 할 것 같은 몸매들을 보다보면 주체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내 몸만 이런 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재차 단언컨대 저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그로인한 빈번한 결심과 운동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응시하는 특정 된 시선이 없으면 저 흉내의 절박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몸이 보여 지는 개체임을 당연시함과 동시에 누가보거나 시키지 않아도 그냥 밥 먹듯이 운동을 하는, 운동 그 자체를 일상의 반려 취미로 받아들이는 길 밖에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하는 여자>와 같은 책이나 이런 여성을 소재로 삼은 다른 책과 기사에서 부르짖는 ‘너 보라고 레깅스를 입는 게 아니다.’라는 투의 항변은 거짓말이다. 자신과 모두를 속이는 말의 겉치레다. 운동이라는 원초적이고 생존을 위한 노력에 거창한 철학과 명분을 갖다 붙이는 건 거추장스러운 포장일 뿐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유 중 하나가 “너” 보라고 사는 것이다. “너”보라고 세수를 하고 명품을 입고 큰 차를 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사람 붐비는 데로 휴가를 가고, 그리고 레깅스를 입고 운동을 한다. 페미니즘 시류에 편승해서 몸을 만드는 운동에도 심각한 젠더 문제를 끌어와 쟁점화 하는 건 개념의 낭비다. 오히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음흉한 남성들의 시선보다 천편일률적이고 이렇다 할 무늬도 없는 레깅스의 색을 문제삼아야하지 않을까? 우리의 청춘들에게 레깅스 색조차 자체 검열하게 하는 그 보이지 않는 시선을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좋게 말하면 청춘을 사회화 시키고, 나쁘게 말하면 길들이는 그 시선을 말이다.

나만의 조개껍질을 찾아서


어빙 고프만은 <자아연출의 사회학> 첫 페이지에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글을 인용했다. 그 글에서 조지 산타야나는 “말과 이미지는 조개껍질 같아서, 속에 든 내용물보다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잘 띄고 관찰하기 쉬운 자연의 본질적 성분이다.”라고 했다. 올 한 해, 다들 적당한 조개껍질을 찾아 만들어 입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외모에 신경 쓰고, 몸매에 신경 쓰는 것이 젊을 때나 하는 짓으로 치부되거나, 심지어 경박하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는 진즉에 끝나지 않았을까? 몸이 마르고 부하고와 상관없이 삶의 철학과 생각이 겉으로 표현되는 몸이란 얼마나 멋있는가? 발레리나의 동작이 그러하듯 우리 모습 또한 하나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환경운동가나 시민 활동가, 종교인의 소박하고 검소한 외모에 딱히 경외감을 가질 필요 없다. 외모에 초연함을 드러내기 위해선 그런 외모로 보여야만 하고,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선 그런 선언적 옷차림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들에 맞는 조개껍질을 찾아 입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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