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커버 이미지. (사진=이톡뉴스)
북커버 이미지. (사진=이톡뉴스)

[김윤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기록의 역사를 가진 조선의 진면목을 보려면, 현장감 있는 당시의 체험과 이야기만큼 확실한 건 없을 것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정벌한 영웅 남이는 세조의 후덕으로 27세에 병조판서까지 올랐으나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해임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감 도는 그날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다시 전해진다. 결국 자기 자랑이 심했던(?) 남이는 세조의 일등공신 한명희를 거론하고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을 당해 처형당했다.

"남이의 (반역)죄가 참인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김시양의 부계기문(涪溪記聞)에서.

조선 최초 수렴청정, 9대 성종의 정희왕후


어릴 때부터 족질(발병)을 앓았던 예종이 급작스럽게 승하하고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의 아들이자 예종의 조카 자산군(13세)이 차기 왕으로 추대되었다. 신숙주를 비롯한 신하들은 모두 동의했고, 신숙주는 자산군의 할머니인 정희왕후에게 정사를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정희왕후는 국정 운영 6일째 과감한 호패법 개혁을 들고나왔다. 성종 즉위년 12월 6일 호패법 폐지령이 떨어졌다. 또한 정의왕후는 가혹한 몽둥이 사용 형벌을 금지했고, 정책 기준은 백성의 눈높이에 맞추는 시행으로 섬세하고 백성을 헤아리는 정책을 펼쳤다.

성종 7년 그의 나이 20세. 정희왕후의 안정적인 수렴청정은 끝나고, 성종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같은 해 11월, 성종의 후궁이었던 숙의 윤씨는 중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원자 연산군을 낳았다. 조선 개국이래 경사였다. 그러나 윤씨는 6년 후 사약을 마셨다.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조선 최초 원자 '연산군, 어머니의 한을 풀고자


성종은 아들 연산군을 해할 수 있는 악을 미리 제거코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렸지만 25년 후인 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1504년)로 피의 보복을 불러왔다.

연산군은 생모의 폐출과 일생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한을 풀고자 수많은 선비를 죽였다. 피의 숙청이 이루어진 왕실 역사는 보복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계유정난(1453년)으로 단종 폐위와 죽음에 일조했던 훈구 대신들도 갑자사화를 통해 숙청을 당한 것이다.

흥미로운 조선 왕실의 이야기가 기록된 기록이 이책에서 마치 현장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말해주는 조선 역사가 참으로 흥미롭다. (왕현철 지음, 스마트북스 2022-10-28 발간, 328쪽, 소프트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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