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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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진 경제부장 @이코노미톡뉴스]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있는 한 재래시장은 평일 오후 9시쯤이면 상가의 불이 모두 꺼진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시장 골목은 적막감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저녁 손님들로 북적였던 인근 식당들도 영업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대유행 시절에도 근근이 생업을 이어갔던 시장 상인들은 저녁 장사를 포기한 지 오래됐다. 간간이 이어지던 손님들의 발길이 아예 끊기면서 장사를 공치는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건어물 가게 상인은 "코로나 19 이전과 비교하면 하루 매출이 6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여파가 지역 상권에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상인들은 생업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서민층 경제가 한꺼번에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경제지표는 국민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기침체와 금리인상 여파로 가계대출부담이 소득보다 많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금융기관의 대출 연체율은 전방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자영업자들 역시 늘어나는 대출 부담으로 허덕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국내 가계대출 차주(대출자) 수는 1977만명, 대출 금액은 1845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가계 대출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3%로 추산됐다. 평균 연 소득의 40%를 금융회사에 빌린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가계대출 대출자 가운데 175만명의 DSR은 100%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차주의 9% 가량은 소득을 모두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소비여력은 전혀 없는 셈이다. 소득보다 빚이 많은 가계 대출자 비중은 2020년 3분기 7.6%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가계대출자의 대출상환 여력이 악화된 것은 생활고 등으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데다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은의 기준금리 금리인상 영향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료=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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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금융권의 연체율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전월말 대비 0.04%포인트 상승한 0.37%를 기록했다. 이는 0.42%를 기록한 2020년 5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34%로, 전월말 대비 0.03%포인트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전월보다 0.01%포인트 늘어난 0.21%를 기록했고, 신용대출 등 기타 가계대출 연체율은 0.08%포인트 상승한 0.67%를 나타냈다.

이는 금리인상 여파와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난 가운데 매출 부진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신용카드 업계의 연체율도 급등했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최승재 의원(국민의힘)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 등 7개 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 연체총액은 1500억원, 연체율은 평균 2.3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6조4000억원, 1.55%)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카드론 연체액은 총 7600억원, 연체율은 평균 2.13%를 기록했다. 카드론 연체액은 2021년 1분기 62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증가해 올해 1분기 7600억원으로 늘었다. 연체율도 1.79%에서 2.13%로 증가했다.

리볼빙 서비스는 결제 대금이나 현금서비스 대금 중 일부만 갚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해 갚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수수료율이 법정최고금리인 20%에 달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다.

리볼빙과 카트론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카드사의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카드사의 부실 우려 채권 비율을 뜻하는 고정이하채권비율도 2년 만에 처음으로 평균 1%를 넘어섰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업계 연체율도 급증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국회 정무위원회 오기형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국내 상위 대부업체 25곳의 연체율은 11.5%로 지난해 같은 달(6.7%) 대비 4.8%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지난 5월 12.9%로 전년 동월(3.6%) 대비 약 3.6배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령 10개월 연속 상승했다.

대부업계 주담대는 후순위 담보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경우 후유증이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금리인상과 고물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했다. 이는 2019년 말 684.9조원과 비교할 때 50.9% 급증한 것이다. 

자영업자대출 연체율은 올해 3월 말 기준 1.00%로 과거 장기평균인 1.05%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한은은 자영업자 대출이 취약차주·비은행권·대면서비스업 위주로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부채의 질도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취약차주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고용 부진 영향으로 경기 침체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금융권 부실이 서민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의 취약차주에 대한 세밀한 정책적 지원과 금융기관에 대한 부실 관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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