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중간계층 설 땅이 없다

글/金潤坤 김윤곤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자본주의와 중간계층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경제’로 더 많이 불린다.

자본주의 경제라고 하면 마르크스주의가 비난했던 것처럼 ‘갈등’이나 ‘착취’등의 의미를 지울 수 없지만, 시장경제라고 하면 ‘상호의존’ 혹은 ‘선의의 경쟁에 의한 발전’등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부정적 의미를 희석하고 시장경제의 긍정적인 뉘앙스를 살릴 수 있는 합성어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일컫기도 한다.

자본주의경제이든, 시장경제이든 그 구조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서히 정착한다. 그것은 이전의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던 여러 계급을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으로 양극화하면서 재편하는 과정을 거친다.

옛날에 존재했던 자영농민과 같은 자영부분은 양극으로 분해되고, 양극으로 들어가지 않는 특수 전문업종 종사자 부류가 잔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중간계층이 형성된다. 새로운 중간계층이란 경제고도성장 결과 ‘평등한 풍요’가 달성됨에 따라 형성된다.

상층도 아니고 하층도 아닌 중간적 지위에서 생활양식이나 의식이 균질적인, 거대한 계층을 일컫는 것으로 근대적인 중산층과는 다르다. 중산층은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으로써 놀고 있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는데 비해, 중간계층은 계속적인 이가 없으면 생활상에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의 사회에서는 바로 이 새로운 중간계층이 경제-사회 질서 형성에 중대한 기능요인이 된다. 중간계층의 층이 두터우면 그 사회는 건전하고 안정된다.

중간계층은 큰 마음만 먹으면 상층이 상시적으로 드나드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하는 등의 허세도 부릴 수 있고, 때로는 하층마저 기피하는 3D업종에도 팔을 걷어올리고 뛰어들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중간계층은 상-하의 계층과 벽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벽을 허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간계층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더 많이 성취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경제-사회 발전에 중추적인 기능을 한다.

우리 나라에는 ‘중류의식’을 가진 계층의 비율이 매우 높다. 우리 경제가 한창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1977년 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부속 행정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미 스스로의 생활수준이 ‘중류’라고 한 응답이 87%로 나타나 의아케 했던 이래,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 비율은 조금씩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으니, 지금은 그보다 더 높을 것이 틀림없다.

한동안 세계 제2경제대국으로 불리며 ‘부(富)의 평등’이 고도로 실현되었다고 하는 일본에서 총리부가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그 비율이 94%전후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국민의 경제생활 만족도는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스스로의 생활수준을 ‘중’이라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중의 상’,’중의 중’,’중의 하’등으로 세분할 때 그 사이의 격차가 매우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재산을 ‘중의 상’수준으로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고, ‘중의 하’밖에 갖고 있지 못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다. 결국 사회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민의식 상의 ‘중류’는 굳이 더 이상 세분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중간계층을 위한 정치·경제 개혁

산업화이래 우리 나라는 국민 대다수의 ‘중류의식’으로 사회안전과 국가안보를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은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야겠다”는 경제적 집념에 못지 않게 사회안전과 국가안보 차원에서 추진되었다고 하겠다.

그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도시에서는 아침부터 다방과 극장에 실업자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우리의 사회상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북한과 중공이 경제계획으로 높은 생산목표를 달성했다는 선전 일색으로 ‘체제우위’를 주장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미처 경제개발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사회안전과 국가안보가 매우 위태로웠을지 모른다. 경제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가 잘 살아보기 위해 열심히 뛰는 바람에 실업자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불평-불만은 못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군사력에 있어서는 항상 북한에 뒤져왔지만, 북한보다 더 튼튼한 안보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 동력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경제구조를 조정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면서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퇴출됨에 따라 ‘중류의식’을 갖고 있던 계층으로부터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새로운 정부의 고용안정 정책에 따라 실업률이 달마다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되고 있지만, 고용의 질(質)이나 형(形)을 살펴보면 결코 고무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일하고싶은 사람에게 보람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당을 주기 위해 공공근로사업에 노동력을 동원함에 따라 예산만 낭비하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무슨 고용안정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예산을 할애하고 있지만 실제로 고용안정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임자 없는 돈’ 따먹기 풍조가 일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또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도 터져나오는 지도층의 부정, 비리는 중간계층으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나타난 부정한 돈의 액수를 듣는 중간계층은 스스로 돈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보화시대에는 부정-비리가 더 잘 터져 나오게 마련이나, 민주정부는 권위주의 정권과는 달리 그것을 물리력으로 덮을 수도 없다.

경제구조조정이나 정치개혁에서나 중간계층을 두텁게 함으로써 사회안전과 국가안보를 다지는 과제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국민 사이에 ‘중류의식’을 갖는 비율을 높이는 것은 인기와 홍보에 초점을 맞추는 미봉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부정-비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국가의 진로와 목표를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고도의 문제의식을 가진 정책이 요구된다.

사진캡션 : 인기와 홍보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는 진정한 민심을 얻을 수 없다.(사진은 선거 유세에 귀를 기울이는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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