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노태우 청와대의 국정실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북커버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북커버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6공 노태우 대통령 비서실장 ‘정해창(丁海昌) 청와대 일지’가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로 출간됐다. 실장 2.2년간(1990. 12. 27~1993. 2. 24)의 국정 실록과 같은 성격이다. 저자의 꼼꼼한 성격대로 기록해둔 8권 분량의 업무일지와 메모로 작성했다.

정 실장은 서울법대, 고시 행시, 사시 양과 합격으로 5공 및 6공 법무장관 역임 후에 비서실장을 맡았다. 노 대통령과는 경북고 5년 선후배 사이지만 별도의 사적 인연은 없었다.

실장직 제안받고 명경지수, 중용, 무욕의 마음을 다짐하고 비서실 직원들과 악수로 취임식을 대신한 후 “지금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개인 정해창은 없다”고 선언했다.

취임 첫날부터 잠시 여유가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늘 중요한 회의, 보고, 수행 등으로 개인적인 시간은 사라졌다.

취임 사흘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 769일 만에 연희동 사저로 귀환했으니 실장으로 막중한 책임을 맡아야 했다. 전 대통령과 인연 깊은 수석비서관과 함께 예방했지만 노 대통령과 관계가 꽉 막혔다. 5공 노신영 전 총리가 나섰지만 효과가 없었다.

전 대통령은 노태우 집권하에 국회 5공 청산 청문회에 출석했다가 초선 노무현 의원으로부터 호통 받고 의원 명패를 집어던지는 수모를 겪었다.

그 뒤 전직 대통령 청와대 오찬 행사에 초청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여 최규하 전 대통령 혼자 참석했다. 두 분이 평생 동지로 절친한 사실을 국민이 알고 있는데 가혹한 정치가 이토록 갈라놓은 사실에 인생무상을 실감했다고 기록했다.

노 대통령은 군 출신이나 남의 말을 듣는 귀가 크고 참는 인내심이 뛰어난 부드러운 카리스마 지도력이다.

북방정책에 따른 소련과 중국과의 수교, 미국 국빈 방문, 유엔 연설 등 화려한 외교에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 선언 대통령으로 국위와 국격을 드높였다.

반면에 여소야대 정국에 내치(內治)가 꽉 막히고 거리로 나온 노동권의 가투(街鬪)로 사회가 혼란되자 ‘물태우’라는 조롱이 퍼졌다.

이때 극적인 3당 합당으로 정국을 반전시켰다. 그러나 김영삼 민주계, 김종필 자민계, 박태준 민정계 등 ‘한집안 3식구’에다 YS의 내부 돌격정치가 극심했다.

끝내 YS를 차기 주자로 밀어 문민정부 출범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셈이지만 YS에 의한 5.18 소급 입법으로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형을 받은 사실을 국민이 지켜봤다.

임기 마지막 해 1월 14일, 청와대서 현승종 총리, 국무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윤성태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5년간 달라진 모습’을 보고한 6공 평가회가 있었다. 민주화, 자율화, 개방화를 통한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구현했다는 스스로의 평가였다.

저자는 노 대통령이 확고한 비전, 준비된 지적 대통령, 6.26 참전, 30년 군 생활로 확고한 국가관을 지닌 국가 지도자라고 평했다. 개인 성품은 인자, 신중, 순리와 유연성이라고 적었다.

청와대 일지 맨 끝장에 송원영 전 의원이 경향신문에 기고한 ‘비판할 때와 박수칠 때’ 칼럼을 실었다. 6.29로 등장한 대통령, 장면 총리 이후 처음 본 민주주의자, 라는 요지였다. (㈜나남출판, 83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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