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정부개혁은 나라 앞날 지렛대

글 / 李啓民(이계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국가 경영 새 패러다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부조직 및 관료체제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불만은 늘상 대두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정부조직을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48차례의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고,행정개혁을 쉼없이 추진해왔다.그런데도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개혁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과제라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관료조직의 반발과 이익집단의 로비 등으로 당초 계획과는 달리 용두사미로 매듭지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경영의 새로운 틀을 새롭게 짠다는 기치 아래 역대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강도 높은 정부개혁 의지를 천명했고,많은 시책을 추진해 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해 행정에 시장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한편 정부도 민간 경제주체들과 경쟁하고 시민단체의 참여와 감시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국가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에 구성됐던 정부조직 개편심의위원회는 그 구체적인 기준으로 ①공급자 중심의 관료정부에서 수요자 중심의 시민정부 ②직접 노를 젓는 정부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정부 ③부패한 정부에서 깨끗한 정부 ④부처이기주의가 만연한 분절적 정부에서 국가이익이 우선되는 통합적 정부 ⑤크고 무력한 정부에서 작고 강력한 정부 ⑥중앙집권의 정부에서 지방분권의 정부 ⑦변화에 저항하는 경직된 정부에서 변화를 창조하는 유연한 정부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한마디로 ‘작지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구구절절이 옳고 공감이 가는 얘기들임에 틀림없다.새로운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선봉은 정부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기획예산처가 맡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그동안 두 차례의 정부조직 개편을 비롯 경쟁과 성과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 확산을 위한 여러 가지 시책들을 제시한 바 있다.과제에 따라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정부의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심지어 금융기관과 기업 등 민간 부문의 구조조정에 비하면 너무 뒤쳐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왜 그런가.

정부개혁이 정치적 타협이나 부처이기주의,또는 공직사회의 거부감 등으로 개혁의 강도가 이완되고 추진 속도 역시 느슨해진 탓이다.

대표적인 정부개혁 조치 중의 하나인 조직개편을 보자.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우선 중앙정부의 조직개편은 기능 중심의 통폐합이 이뤄지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 타산에 따라 어설픈 모습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조직개편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1차)와 경영진단 조정위원회(2차)의 초안이 정부안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질된 예는 너무 많다.통폐합이 거론됐던 해양수산부와 과학기술부 등이 정치적 이유로 그대로 존속하고 기획예산처가 국무총리산하로 옮겨지는 등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경제정책의 조율 기능이 미약해지고 유사 중복 기능의 통폐합은 커녕 오히려 다원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예컨대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한국은행 등으로 나뉘어졌고,국정홍보처가 신설되면서 국정홍보 기능이 청와대·문화관광부·국무총리실 등으로 흩어지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됐다.

그렇다고 ’작은 정부’라도 실현됐는가.그것도 아니다.

2차 조직개편에서는 장관급과 차관급이 각각 1명씩 늘어나 오히려 비대화시킨 꼴이 됐다.오는 2001년까지의 공무원 감축계획을 함께 발표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당초 기획예산처가 제시했던 민간인의 공직기용을 내용으로 하는 개방형 임용제도는 발표 직후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축소되고,늦춰졌다.관료들의 반발 때문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지방정부와 공기업은 어떤가.구조조정 지침을 내려보내긴 했지만 아직도 진통중이다.

관료, 국민 모두 변해야 산다

‘봉사하는 정부’의 목표에는 얼마나 다가섰는가.이제 겨우 출발선상에 들어섰다.정부개혁의 선봉장인 기획예산처는 그동안 공공 부문 개혁의 기본틀을 갖추는데 역점을 두었으나 이제부터는 일하는 방식과 운영시스템을 개선,국민들이 개혁을 체감할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민권리 구제 절차를 개선하는 등 고객 중심의 정부서비스 체제를 갖추고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얘기다.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정부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은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조직이나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보다 업무수행 방법과 프로그램의 개발 등 정부운영 효율화를 위한 소프트웨어의 개혁이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정부개혁의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기획예산처에 주어진 최대 현안이 아닌가 싶다.

정부혁신을 과감하게 실천하고,경쟁원리 입각한 국가경영의 효율성 제고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관건으로 보아야 한다.그런 점에서 정부개혁은 일과성 정치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그 동안의 개혁 추진 성과를 점검하고 보완하면서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느슨해진 정부개혁의 의지를 새롭게 다짐하고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도 21세기에 걸맞는 정부 기능을 재정립하고 그에 걸맞는 적합한 조직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다만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이상적인 제도를 한꺼번에 제시하고 추진하려는 욕심은 금물이다.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해결해가려는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관료조직이 스스로의 개혁을 게을리 한다면 누가 독려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국민의 대변자인 정치권의 몫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는 정부개혁을 독려하기는 커녕 발목 잡는 역할만 해왔다.때문에 정치권이 본연의 자세를 하루 빨리 가다듬어 정부개혁을 이끌고 재촉하는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급선무다.물론 자신들의 개혁도 동시에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만 정신차리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인가.

국민들의 의식과 각종 사회제도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일반 국민들도 자신들이 실천해야 할 의무는 게을리 하면서 모든 것을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스런 발상이다.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적극적으로 시정함으로써 모든 사회시스템이 함께 바뀌어 질 때 진정한 정부개혁의 효험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캡션2 : 과천 종합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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