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 큐레이터·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전시장 한 모퉁이, 작가가 없는 현장에서 작가의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있다. ‘DEAR CABINET’(서정아트 서울) 전시에 참가중인 나난(Nanan Kang)은 본인의 작업실을 실시간 녹화하는 카메라 장치를 연결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실시간 라이브로 중계되는 작가의 모습은 완성된 형태로 작은 캐비닛 박스에 담겼지만, 그 작업을 탄생하게 한 작가 본인은 현재도 움직이고, 그 활동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재해나 전쟁, 누군가의 삶에 급작스레 닥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견하며, ‘나에게 있어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천착했다. 주어진 환경과 소유한 물질적인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온전히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라는 존재라는 생각에서다.

‘DEAR CABINET(서정아트, 2023)
‘DEAR CABINET(서정아트, 2023)

특정 기간 동안 전시된 작업이 다양한 군상과 관계 맺기를 실현중이라면 그것은 현재 진행형일까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일까. 나난은 ‘온전한 나의 존재’를 보여줌으로써 그 답을 찾았다. 정적인 공간에서 양방향의 소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작가 본인은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노출되지 않는 순간에도 영원히,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남아있음을 암시한다. 현장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예술로서의 가치를 획득한 작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돌아보게 한다. 눈앞에 펼쳐진 사건의 면면들을 인식하는 반면 우리는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동안 행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인식할 수 없게 되곤 한다. 나난의 <I'm in the Studio Today>(2023)는 타인이 ‘우리’로 묶일 수 있기까지, 개인의 산물이 공용 장소에 존재하기까지 모든 건 현재로부터 파생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의 후속작과도 같다.

◆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기

언젠가부터 예술 작품의 공공성은 감각과 경험보다는 직관성을, 작업에 내재된 내러티브보다 심미성을, 지속적 조화보다는 일시적 효용성에 초점을 두는 듯하다. 정해진 장소에서 행하는 예술의 모든 행위, 그리고 시간-관계성 안에서 멈춰있는 작업의 성질은 모두 움직이며, 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제약에 따라 가치는 한시적으로 여겨진다. 그 안에서 어떤 이로움을 택할 것인가는 온전히 바라보는 자의 몫이 되었다. 보이는 방식에 따라 유의미한 기억과 가치를 생산하기도 하는 반면, 표피적 개입에만 멈추어 그 장소를 떠나 소멸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작업의 굴레 안에서, 예술가는 전자를 위해 끊임없이 예술이 처한 미학적 한계와 실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외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여러 사례를 통해 예술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우리는 접해왔다. 전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휴대용 태양광 조명을 보내주는 ‘리틀 선(Little Sun) 프로젝트’(2013)를 실시했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1967-), 7천 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어 콘크리트로 뒤덮인 카셀을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시킨 요셉 보이즈(Joseph Beuys, 1921-1986)의 프로젝트(1982). 이 모든 행위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이로움을 기여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 대중의 참여도,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 그리고 가장 모태(母胎)가 되는 공공의 이익. 이처럼 몇 가지 공공미술의 조건만 고려해보아도, 나난의 작업은 아래 두 가지 측면에서 장기적 공공 프로젝트로서의 보존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

나난은 페인팅, 퍼포먼스, 설치 등 어떤 형태로든 불멸(不滅)의 힘에 대한 비가시적인 믿음을, 도상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고 지속하려 한다. 작가의 전시가 시작되면 그 장소의 한켠에서는 ‘롱롱플라워 프로젝트’가 함께 열린다. 작가는 공공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종이꽃을 제작하고, 작업을 감상했던 많은 이들이 그 기억을 간직하며 개인의 공간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시들지 않는 영원함’을 위해 고안한 이 꽃에서 향기를 맡을 수는 없어도 시각적 향취를 음미하고 지속하게 하는 건 작가의 몫이었다. 어느 날 친구의 웨딩 촬영 때 사용한 부케가 시든 것을 보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꽃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는 꽃에 담긴 소중한 의미와 함께 영원한 꽃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추억을 선물하는 기능으로 가볍게 시작되어 점차 꽃의 행방은 각자의 공간에 뿌리내림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확장했다. 장소의 변화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고 생명력을 이어가는 꽃의 존재는 그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지속적이며, 정착한 터전에 맞게 변형과 변이를 거쳐 의미가 전이되고 비로소 모든 복합체로서 작용해 영원함을 획득할 것이다.

아트부산 나난 커넥트 부스(ART BUSAN, 2023)
아트부산 나난 커넥트 부스(ART BUSAN, 2023)

작품의 소유 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화이트 큐브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 또한 허물어지면서 동시대 한국 작가들이 소유의 개념이 전복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에디션-오브제 제작에 한창 몰두할 때가 있었다. 이때 나난은 ‘소유’라는 개념을 뒤집어 작업의 스케일을 확장했고,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광화문 광장을 장식했다. 작업은 그 어떤 목적성 없이도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우연함을 기회로 관계맺음을 시도했다. 특정 장소 및 상황에 의해 연출되는 방식보다, 생성되는 의미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작가의 작업은 미술계 시스템과 그것을 소비하는 관객 사이의 인과성 보다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불특정 집단군을 상정하여 공공의 이익, 즐거움, 개별적 존재보다는 군집, 군중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이는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에 초점을 두어 보이지 않는 것을 좇아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운명, 그로 인해 가져올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의 영향력을 고민하는 작가의 오래된 신념과 연결된다. 나난의 시선에 꽂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이 세상 그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은 없다”던 믿음을 굳건히 하는 실천적 행위에 가깝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후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나난의 꽃이 주는 사소한 기쁨과 행복은 ‘공유’와 ‘나눔’을 통해 희망의 파이를 키워가는 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개별적 존재, 더 나아가 한 집단, 특정 군중, 혹은 차후 인류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기여할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찾은 대안은 새로운 관계 맺기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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