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21세기 한국 방송의 좌표

글/申光植 신광식 편집위원(전 KBS 해설위원)

혁명적 환경변화를 주도할 디지털 기술

우리는 지금 사상 유례가 없는 변화의 급류 속에 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은, 누가 뭐래도 ‘변화와 개혁’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 만물은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지 않음), 불교에서 나온 말이지만 불변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며 그런데도 그 속도감을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특히 방송 환경의 변화는 쉽게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 핵심이 방송의 ‘디지털화’이다. 이 디지털이 방송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무도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특징으로 흔히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문화의 세기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가 우리 사회의 기존 가치체계를 급격히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가치체계를 형성케 할 것이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은 자연히 21세기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 기술이 결국 여타의 사회, 문화적 가치체계의 변화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이 특히 어떻게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변화의 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방송이 새로운 세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진정한 방송의 역할과 바람직한 위상은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히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 방송은 향후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기존의 방송개념으로는 다가올 21세기를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새로운 방송, 특히 멀티미디어가 서서히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방송의 개념은 기술 못지 않게 영향을 받고 있다. 즉 방송의 산업화가 그것이다.

여기에 인터넷 방송과 위성방송,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케이블 방송 등이 등장하면서 방송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방송환경 변화의 핵심은 다름 아닌 기술에 있다. 물론 이 기술이 어제, 오늘 새로운 기술로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방식의 기기가 소위 멀티미디어 형태로 발전하면서 디지털은 이제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아날로그 TV보다 화질이 3∼4배 선명하고 음질도 컴팩트디스크(CD) 수준에 이르는 디지털 TV 지상파 방송을 2001년부터 수도권에서 실시하고 그 외 전국적인 디지털 방송은 시험방송의 결과에 따라 늦어도 2005년까지 확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방송은 향후 몇 년간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의 TV가 병행하면서 방송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방송이 제공하는 환경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진 것일까? 우선적인 것은 다름 아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채널을 제공하게 됨으로써 치열한 경쟁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당연히 국내외 채널간 경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디지털 TV의 시작은 디지털 방송용 수상기와 송신기의 대규모 신규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프로그램 공급량 증가로 전자산업과 영상산업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기존의 케이블 방송과 지상파 방송 모두가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손쉽게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 놓고 시청은 물론, 편집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TV수상기가 컴퓨터 형태의 저장매체를 지닌 PVR(Personal Video Recorder) 형태로 발전하면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광고까지도 무시하는 형태의 시청 행태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기존의 방송 경영에 엄청난 경종을 울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간략한 상황적 변화 내용들을 통해 볼 때 과연 우리는 오늘 얼마나 새로운 세기에 대처할 새로운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독점방송 시대에서 종합경쟁 시대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의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적용과 경제적 지표의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변화의 내용은 다름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행태 변화가 디지털 방송이 지닌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듯 전환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변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따라서 기존의 시청취자들이 보여준 방송에 대한 단순한 오락적 여가선용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앞으로도 똑같이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더욱 그러한 상황을 예견 가능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조만간 실용화될 고화질TV(HDTV)나 액정판막 벽걸이형 모니터의 일상화, 레이저디스크 재생기나 비디오 게임기, 그리고 특히 디지털 압축파일 형태의 정보로 즐기는 MD플레이어의 보급 등을 본다면 향후 기존의 시청취자들의 행태는 보다 종합 시각정보 매체로서의 방송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방송이 지금까지의 방송 개념에서 벗어나 ‘생활정보 센터’로서의 기능을 고루 갖춘 방송으로 변신을 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부분적으로 쇼핑이나, 은행업무, 심지어는 우편업무까지 소위 멀티미디어라고 불리기 시작한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매스미디어로서 방송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으로서의 일방향적 정보전달 형태의 수동적 방식은 앞으로는 거의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도한 예를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다.

BBC의 경우에는, ‘BBC의 선택(BBC Choice)’ ‘BBC 의회채널(BBC Parliament)’ 그리고 올해부터 시작한 ‘BBC 지식채널(BBC Knowledge)’ 등 새로이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문채널을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이미 지난 3월 현재 8천만회 이상의 접속율을 기록함으로써 유럽내 최다 방문율을 기록한 ‘BBC 온라인(BBC Online)’을 통해 생활정보 창구로서의 기대를 서서히 만족시켜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방송의 궁극적 효과는 소비자들이 폭넓은 선택과 상호작용 기회의 제공에 달려 있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디지털 방송의 성패는 얼마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서비스 매체로서 손색이 없는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제 모든 방송 경영인들에게 향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름 아닌 진정한 경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통신사업자의 정보서비스가 기존의 방송 독점시대의 방송사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경쟁은 방송사간만이 아니라 통신사업자와의 이중적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특히 위성방송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금까지 위성을 통한 방송은 전통적인 개념 하에서 볼 때 당연히 지상파 중심의 정책적 배려가 요구될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현재 거의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위성은 이미 통신사업자의 범주에 속하는 형태로, 즉 위성사업자와 프로그램 제공업자로의 구분이 진행되면서 전혀 방송과 상관이 없어 보이던 기업들의 진출이 눈에 띄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경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과연 어떤 방송사가 어떤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기호와 욕구를 생활정보 매체로서의 방송을 통해 해결해 줄 수 있을지를 지켜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방송도 이제 울타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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