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너 죽고 나 죽자’식에 국민 빈축

글/ 金喆秀 김철수 편집주간

할복 소동 부른 협동조합 구조조정

협동조합 구조조정을 위한 ‘농업협동조합법’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일파만파의 후유증을 낳고 있다. 국회 401호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이 법안이 최종 심의되던 12일 밤 9시 20분경 신구범(愼久範) 축협중앙회장이 40cm 가량의 할복을 기도, 축협인들의 결사반대가 연일 이어졌다. 국민회의측은 13일 이 법안이 농업분야의 대표적 개혁이라는 점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지만 앞으로 그 후유증이 어디까지 번질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법안의 통과로 2천년 7월 1일이면 ‘농업협동조합중앙회’라는 지금과 동일한 명칭의 협동조합이 새롭게 탄생되고 현재의 축협과 인삼협중앙회는 없어지게 된다. 이들 두 조합은 농협이 모태가 되어 새로 발족하는 ‘농업협동조합’에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협동조합은 기존의 5개에서 수협, 임협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족하는 ‘농업협동조합’ 등으로 개편돼 3개만 존립하게 된다.

농림부 축산국장을 지낸 축협중앙회장의 할복 자살 소동까지 낳은 ‘농업협동조합’ 관련법은 농림부가 협동조합개혁을 위해 정부안으로 마련,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해 제 205회 임시국회 회기 중이던 7월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처리되지 못하는 진통을 겪었다. 통합중앙회의 명칭과 법인통합 문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개혁의 주체 등 네가지 부문에서 농림부와 농협, 그리고 축협과 관련단체의 의견이 크게 대립됐기 때문이었다.

‘농업협동조합법’은 과연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이처럼 복잡한 것인가. 이 법의 주무당국인 농림부로부터 주요 내용과 추진배경을 먼저 들어보자.

농림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우선 농협중앙회와 축협중앙회, 그리고 인삼협중앙회를 통합해 ‘농업협동조합중앙회’를 구성하고 중앙회를 정점으로 농업경제 대표이사, 축산경제 대표이사, 신용 대표이사를 각각 두는 것으로 돼있다. 또 농업경제 대표이사가 회원농협을, 축산경제 대표이사가 회원축협을 관장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농림부가 이 법안을 마련하게 된 것은 “IMF 이후 모든 분야에서 과감한 구조개혁이 추진되는데 유독 협동조합은 손을 놓고 앉아 있다”는 외부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지난 4월 감사원이 농협과 축협의 금융비리를 발표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사정당국이 화살을 당기면서 농림부도 행동에 돌입했다. 농림부는 당초 농협, 축협 등 4개 협동조합이 자율적으로 공동개혁안을 수립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들 협동조합이 서로의 주장만 펴자 직접 개혁시안을 마련,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시안이 발표되자 당사자인 농협, 축협, 삼협은 물론 한농연, 농단협 등 관련단체들이 즉각 자기주장을 들고 나왔다. 의견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자 정부는 곧바로 협동조합 대표, 학계 전문가 등 27명으로 ‘협동조합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최종안을 확정하기 전인 올 7월까지 간담회, 공청회 등 1백70여회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농림부는 법 시안발표에서부터 최종안 확정 때까지 여론동향을 주시해 왔다. 그 결과 농협과 대다수 농업인, 시민단체는 통합법안에 적극 찬성하고 삼협은 개혁에 동참하는 입장이며 축협은 법안의 국회통과 저지를 위한 반대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정리했다.

결국 축협만이 극렬히 반대할 뿐 여타 단체는 찬성, 수용, 동참, 공감 등의 의견으로 정부안을 지지한다는 판단 아래 법개정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축협은 왜 반대를 했으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어떤 것이었나를 쟁점별로 짚어보자.

축협은 우선 중앙회의 명칭에서 축산이란 이름이 빠지는 자체가 못마땅하다. 따라서 신용사업을 분리하려면 아예 농축산은행이라는 특수은행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양 중앙회를 통합해 ‘농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두되 산하에 농협연합회와 축협연합회를 각각 두어 소속 회원조합을 관리토록 하자는 의견이다.

통합 반대 방식에는 문제

그러나 농림부는 중앙회 산하에 각각의 연합회를 두면 옥상 옥이 되는 격이며 통합으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농림부는 중앙회 통합으로 초기 3년간 2조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 자금 중 최소 8천억여원이 조합육성자금으로 지원되고 일선 조합당 30억~50억원 규모의 유통자금이 조성되는 이익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축협은 또 농·축협중앙회가 통합되면 일선조합도 농협위주로 통합되고 축산은 전문성이 없어져 결국 축산업이 말살된다고 우려한다.

이에대해 농림부는 축협중앙회는 어차피 축산농가나 일선 축협을 지원할 여력이 없고 신용사업도 소규모라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또 각각의 대표가 회원농협과 회원축협을 관장해 일선조합은 통합되는 게 아니며 설사 총회가 필요에 의해 통합을 결의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축협은 중앙회가 통합되면 일선 농·축협에서 동시에 대출받은 농가는 한쪽 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문제를 들고 있지만 농림부는 중앙회 통합으로 농가가 대출한도 등에서 불리해 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장담이다.

또한 축협은 조합원의 자율적인 통합에 정부가 왜 강제하느냐는 반발을 보이고 있지만 농림부는 농·축협 비리가 이미 사정 대상이 됐고 개혁에 소극적인 조합의 태도로 보아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축협이 제기한 통합의 위헌성, 재산처분의 자유 침해성 등에 대해서도 농림부는 원칙적으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농림부와 축협의 상반된 주장은 IMF 이후 숱하게 보아온 통합과정에서의 설전이란 느낌이다.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여러가지 시련과 혼란을 겪었다. 통합과정에서는 반드시 반대하는 입장이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클수록 지불되는 사회적 비용이 더 불어났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막바지 시기에 시작된 농협과 축협의 통합은 부작용과 후유증이 최소화 되는 쪽으로 마무리돼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기대이다.

또한 통합과정에서는 집단 보호주의가 표출되기 마련이나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투쟁방식을 선택한 점, 그리고 사태를 이처럼 악화시킨 정부의 미흡한 협상력은 모두 국민을 실망시킨 ‘문제’로 지적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통합마찰에 이제 국민들은 넌더리가 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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